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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지난 11~17일 한국지엠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 362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생산직 노동자 2명 중 1명은 정신건강 상담이나 치료를 요하는 불안, 우울감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24일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출근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한국지엠 인천 부평 2공장 가동 중단 후 창원공장에 파견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경인일보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지난 11~17일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 362명(응답자 1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바일 설문조사 결과는 이들의 극단적 선택 위험 징후를 보여준다. 심리 불안 상태가 계속되면서 몸 상태까지 나빠지고, 신체 건강 악화가 다시 불안·우울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 표 참조
362명 중 143명 응답 설문 결과
극단적 선택 계획 9명·시도 2명

89.5%고립감 … 92.3% 피로감
운동·취미 줄고 음주·흡연 늘어
심리상담 지원 등 긴급대책 필요
5명 중 1명 '극단적 선택' 생각, 일반 정규직의 18배
설문에 응한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 143명 가운데 '극단적 선택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이는 26명(18.2%)으로 집계됐다. '극단적 선택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는 응답은 9명(6.3%),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이는 2명(1.4%)이다.

본인 의사에 반한 인사 발령으로 조사 대상자 다수가 불만을 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 수치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 질병관리청 제8기(2019~2021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최근 1년간 심각하게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4.4%가 '그렇다'고 답했다. '극단적 선택을 계획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1.3%, '시도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0.5%였다.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고려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연구진이 지난 2019년 발표한 '불안정 고용 근로자와 실직 근로자의 비교 가능한 자살 생각 위험 : 한국복지패널조사 자료, 2012-2017' 논문 결과를 보면, '극단적 선택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정규직 노동자의 1.1%, 비정규직 노동자의 3.0%, 실업자의 3.9%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보면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의 '극단적 선택 생각' 응답 비율(18.2%)은 일반 정규직 노동자보다 무려 18배가량 높게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립감·피로도 높아지면서 일상 무너지는 악순환 반복

gm창원
한국지엠 창원공장 기숙사로 쓰이는 남산동 대우아파트에서 부평공장 소속으로 창원에 파견된 한 노동자를 만났다. 1990년대 입사해 '고참급'인 그는 창원 근무 5개월이 지나도록 왜 자신이 창원에 오게 됐는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다. 근무를 마치고 기숙사에 오면 멍하니 바깥을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가족이 알게 될 것을 걱정한 그의 요청에 따라 그에 대한 세부 사항은 밝히지 않는다. /기획취재팀
 

'창원 발령 이후 고립감이 높아졌다'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128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89.5%를 차지했다.

실제 기획취재팀이 만난 창원공장 파견자 주철민(56·가명)씨는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완전히 진이 빠진 채 아무것도 못 할 때가 대부분"이라며 "주말에 인천으로 돌아가 가족이나 친구라도 만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회사와 노동조합에 부서 이동을 요청했지만, 현재 인사권은 창원공장이 갖고 있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며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는데 어떻게 할 방법은 보이지 않아 막막하다"고 했다.

주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의 고립감은 본인의 의사가 인사에 반영되지 않는 무력감,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고독감에서 비롯됐다. 고립감은 일상을 방해한다. 수면의 질을 떨어뜨려 다음 날 근무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역시 설문 결과에 반영돼 있다. '창원 발령 이후 피로도가 높아졌다'에 132명(92.3%), '창원 발령 이후 근무 강도가 높아졌다'에 129명(90.2%)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운동·취미생활 줄고 음주·흡연 늘어… "심리 상담 지원 등 긴급 대책 필요"
파견 노동자들은 창원에서 살면서 이전보다 취미 생활은 적게 하고, 음주·흡연이 늘었다고 답했다. '창원 파견 후 음주 빈도 또는 양이 늘었는가'라는 질문에 83명(58.0%)이 '늘었다'고 했다. '흡연 빈도 또는 양이 늘었는가'라는 질문에는 흡연자 88명 중 66명이 '늘었다'고 답했다.

반면 '창원 파견 후 운동 등 취미생활 빈도나 양이 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줄었다'고 응답한 사람이 89명(62.2%)이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이 크게 줄고, 음주와 흡연은 늘어 피로도가 더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조사를 수행한 최민(직업환경전문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잠을 청하지 못하고, 생활 터전이 바뀌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제한되니 고립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극단적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 (부평공장 복귀 등) 근무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심리 상담 지원 등 긴급 지원 대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가족과 떨어져 불안… 피말리는 강제 기러기

파견자 40명의 '자유 의견'

경인일보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한국지엠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자유 의견란'에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남겨달라고 했다.


응답자 143명 중 약 40명이 현재 자신의 처한 상황과 느끼는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파견 인사가 부당하게 이뤄졌다'라고 생각하고, '고립된 삶'을 견디기 힘들다는 호소가 주를 이뤘다.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본인이 부당하게 또는 억울하게 부평에 잔류하지 못하고 창원으로 보내졌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각자의 사정과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한 큰 비극이다" "파견자 선별 기준이 무엇인지 취재 좀 부탁한다" "백이 없는 파견자 조립부로 때려 박았다"는 말이 나온다.

오랜 기간 함께 지낸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고립 상태는 더욱 심화하는 분위기다. "급작스러운 가족과 이별, 낯섦, 음식·말투까지 생소한 머나먼 타지 생활은 사람을 외롭고 무력하게 만든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회사는 잘 모른다" "가족과 떨어져 있으니 매사에 힘이 나지 않고 불안하다"는 딱한 사정이 이어졌다.

이 밖에도 "언제 크게 터져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서서히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와 "피 말리는 강제 발령으로 직원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으니 관리 시스템, 심리 상담 프로그램 같은 것이 가동돼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취재 : 김명래 팀장, 한달수 기자
사진 : 김용국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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