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인천 부평 2공장에서 창원공장으로 파견된 노동자 362명(응답자 14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2명 중 1명이 불안·우울증을, 열의 여덟은 수면 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5명 중 1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는 등 이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심각했다.
업무상 정신질환 산업재해 여지도
허윤제 활동가는 유성기업, 갑을오토텍 등 이른바 '노조 파괴 사업장'에서 노동자 상담 활동을 12년째 벌이고 있는 전문가다. 그는 "회사가 노동자 의사를 충분히 묻지 않고 파견을 보내는 과정에서 이들이 느낀 분노·좌절감이 창원에서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우울감이 확대된 것"으로 설문 결과를 해석했다.
박지영 교수는 설문에 응답한 파견 노동자 평균 근속기간(24년 6개월)과 나이(49.8세)가 길고 많은 점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응답을 보면 정년까지 회사에 다니고 싶고, 현 직장이 자신에게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가 50%를 넘는다"며 "그만큼 회사와 본인을 동일시한다는 의미인데, 이번 파견 배치 과정에서 이들이 회사에 느낀 배신감이 매우 클 것"이라고 봤다. 장기근속 노동자 입장에서 창원 파견은 '회사에서 버림받고, 인생이 부정당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허윤제 활동가와 박지영 교수는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의 정신건강 상황을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보고 회사가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물질보상보단 이해·설득과정 필요

허윤제 활동가는 노동자 집단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많다.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으면 노동자의 심리 상태가 개선되기보다 더욱 악화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는 "상담을 통해 노동자들이 더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최선의 방법은 이른 시간 내에 이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박지영 교수는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가 '물질적 보상'이 아닌 '인간적 호소'를 기대하는 것으로 봤다. "파견자 선정 과정에서 회사는 노동자를 굉장히 기계적으로 대했는데, 지금이라도 이해를 구하거나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지엠은 "회사는 파견 직원들의 건강 실태를 면밀히 살피고 있고, 필요한 경우 절차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경인일보에 보내왔다. → 그래픽 참조
'생산라인 가동 멈춘' 부평 2공장의 운명은
생산물량 배정 '죽느냐 사느냐'… "지역 버팀목, 폐쇄는 안돼"

노조 "CUV 유치해야 미래 담보 가능"
전기차 설계·생산경험 해외보다 우위
기업투자 인센티브 적용 제외 비관론
생산직 줄이고 사무직 늘리는 기조도
홍영표 의원 "모든 수단 강구할 것"
문제의 발단은 부평 2공장 가동 중단이다. 글로벌 GM(이하 GM)이 부평 2공장에 전기차 생산 물량을 배정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한국지엠 부평 1·2공장은 인천경제의 큰 버팀목으로 노동자 수천 명이 이 공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생산 물량 배정은 오로지 GM의 판단 여하에 달린 게 현실이지만 지역사회의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기획취재팀은 그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섰다. 'GM이 멈춘 부평 2공장 생산 라인은 언제쯤 다시 가동될까.' '부평공장의 고용 유지·확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은 어떤 방식으로 구축돼야 할까.'

부평 1공장 생산(예정) 차종은 트레일블레이저, 뷰익 엔비스타 두 가지다. 트레일블레이저는 2026년 3월까지, 뷰익 엔비스타는 2029년까지 생산이 예정돼 있다. 부평 1공장은 2027~2028년 후속 생산 차종이 결정되지 않으면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진다. 부평 2공장 역시 후속 생산 물량을 확보해야 재가동 시점을 가늠할 수 있다.
GM은 2025년까지 25개 전기차를 개발·생산하는 계획을 갖고 있고 그중 7종을 올해 출시할 예정이지만, 현시점에서 부평 1·2공장에 대한 전기차 생산 계획은 없다.
한국지엠 노조는 "부평공장에 소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CUV) 전기차를 유치해야 한국지엠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지엠의 전기차 유치 전망은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린다.
낙관론은 한국지엠이 2013년 창원공장에서 쉐보레 스파크 EV를 생산한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이 차량의 후속 모델 볼트 EV는 인천에 있는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가 연구·개발과 설계를 도맡았다.
스파크 EV는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한계로 4년 만에 단종됐고 볼트 EV는 전량이 북미에서 생산됐지만, 현재 GM의 해외사업장 가운데 전기차의 설계부터 생산까지 경험한 곳은 한국지엠이 유일하다. 전기차의 상품성을 가르는 '조립 품질'에서도 한국지엠은 GM의 다른 해외사업장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천이 기업의 투자 인센티브 적용 대상 지역에서 제외된 현실은 비관론의 핵심이다. 정부는 5월 9일 국가전략기술·시설 투자 세액공제 대상에 전기차 분야를 포함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전기차 생산시설에 투자하는 대기업은 최대 25%의 세액공제를 받을 길을 열었다. 하지만 인천은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 묶여 있어 제외됐다.
GM이 사업 다각화 과정에서 생산직을 줄이고 사무직을 늘리는 기조가 한국지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GM이 부평공장 신규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2029년까지만 생산한 다음, 연구·개발의 GMTCK만 남긴 채 생산 공장을 정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대우차(한국지엠 전신) 생산직 출신 홍영표 의원은 국회에서 부평 1·2공장 생산 유지와 지역 일자리의 상관관계를 잘 아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지난해 부평 1·2공장 생산직은 약 2천700명이었지만 부평 2공장 가동 중단으로 약 600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홍 의원은 외국인투자기업이 첨단 산업으로 기존 공장시설을 교체할 때 현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정부의 '외국인투자촉진법 시행령 개정안' 마련을 이끌었다. 앞으로는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인 인천에 투자하는 전기차 분야 기업도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노동자에게 일자리는 인간으로서 삶이자 가족을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인데, 부평 2공장에서 창원으로 간 노동자의 고통을 담은 (경인일보) 기사를 읽고 가슴이 먹먹했다"며 "부평공장의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미 철수설 등으로 지역에 큰 고통을 안겼지만 이젠 다시 부평공장이 멈추지 않도록 마지막 노력을 집중할 때"라고 말했다. → 표 참조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취재 : 김명래 팀장, 한달수 기자
사진 : 김용국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