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의 우울증 수치는 감정노동이 심한 직군이나 폐쇄 사업장의 노동자, 해고자 집단 등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 허윤제 상담활동가는 경인일보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5월 11~17일 진행한 한국지엠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 정신건강 설문조사 데이터를 검토한 다음 이렇게 설명하고 "업무상 정신질환에 따른 산업재해를 유발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인천 부평 2공장에서 창원공장으로 파견된 노동자 362명(응답자 14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2명 중 1명이 불안·우울증을, 열의 여덟은 수면 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5명 중 1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는 등 이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심각했다.
의사 반영 안된탓 분노·좌절감 확대
업무상 정신질환 산업재해 여지도
경인일보는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 자료를 5월 25~26일 허윤제 활동가와 자살·트라우마 예방 전문가인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에게 전달했고 30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의견을 구했다.
허윤제 활동가는 유성기업, 갑을오토텍 등 이른바 '노조 파괴 사업장'에서 노동자 상담 활동을 12년째 벌이고 있는 전문가다. 그는 "회사가 노동자 의사를 충분히 묻지 않고 파견을 보내는 과정에서 이들이 느낀 분노·좌절감이 창원에서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우울감이 확대된 것"으로 설문 결과를 해석했다.
박지영 교수는 설문에 응답한 파견 노동자 평균 근속기간(24년 6개월)과 나이(49.8세)가 길고 많은 점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응답을 보면 정년까지 회사에 다니고 싶고, 현 직장이 자신에게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가 50%를 넘는다"며 "그만큼 회사와 본인을 동일시한다는 의미인데, 이번 파견 배치 과정에서 이들이 회사에 느낀 배신감이 매우 클 것"이라고 봤다. 장기근속 노동자 입장에서 창원 파견은 '회사에서 버림받고, 인생이 부정당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허윤제 활동가와 박지영 교수는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의 정신건강 상황을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보고 회사가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스트레스 해소 안될땐 악화 불보듯
물질보상보단 이해·설득과정 필요
허윤제 활동가는 노동자 집단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많다.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으면 노동자의 심리 상태가 개선되기보다 더욱 악화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는 "상담을 통해 노동자들이 더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최선의 방법은 이른 시간 내에 이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박지영 교수는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가 '물질적 보상'이 아닌 '인간적 호소'를 기대하는 것으로 봤다. "파견자 선정 과정에서 회사는 노동자를 굉장히 기계적으로 대했는데, 지금이라도 이해를 구하거나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지엠은 "회사는 파견 직원들의 건강 실태를 면밀히 살피고 있고, 필요한 경우 절차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경인일보에 보내왔다. → 그래픽 참조·관련기사 3면([한국지엠기획-GM부평노동자, 창원 파견 그후·(下)] '생산라인 가동 멈춘' 부평 2공장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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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김명래 팀장, 한달수 기자
사진 : 김용국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