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때는 여름 휴가다. 요즘은 연차를 사용하는 일이 비교적 자유롭고 여름휴가라고 해도 꼭 여름 성수기에 가야 하는 압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이 되면 슬그머니 생각나는 것이 휴가인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최근 경제가 악화되면서 여름 휴가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또 다른 한편에선 엔데믹 이후 처음 맞는 여름인 만큼 해외로 '보복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아 인천공항이 북새통을 이룬다는 말도 들린다. 상반된 풍경에 씁쓸함을 자아내지만, 경제가 어려울 때 양극화는 더 커진다. 25년 전, 대한민국을 뒤흔든 경제위기 'IMF'의 여름 풍경도 비슷하다.
휴가를 갔다 오면 자리가 없어질까봐 말도 꺼내기 어렵다
1998년 7월 15일은 그 전년도인 1997년 국가부도, 이른바 IMF체제 속에 처음 맞이한 여름이었다. 이때의 직장인에게 여름휴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언감생심이었다. 당시 경인일보 기사의 제목은 'IMF시대 [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여름휴가 눈치껏 반납'. 제목 아래엔 작은 삽화가 그려져 있는데, 날개가 달린 책상이 둥둥 떠 날아가고 이를 바라보는 직장인이 "휴가 달라 하면 혹시 내 자리가.." 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등장한다. '연말까지 5백명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S기업의 경우 올해부터 연월차 수당 없이 2주간의 휴가를 사용 해야 하지만 아직 누구도 여름휴가를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김모 과장은 "감원이 코앞에 닥쳤는데 무슨 배짱으로 1주일씩 휴가를 가겠다는 얘기를 꺼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민간기업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시 IMF로 인해 구조조정의 공포를 겪는 것은 공공기관도 마찬가지. 통폐합, 민영화 등 공공분야 구조조정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등장하던 시기, 휴가를 권장해도 서로 눈치를 보며 휴가원을 제출하는 사람이 없다고 묘사했다.
민간기업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시 IMF로 인해 구조조정의 공포를 겪는 것은 공공기관도 마찬가지. 통폐합, 민영화 등 공공분야 구조조정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등장하던 시기, 휴가를 권장해도 서로 눈치를 보며 휴가원을 제출하는 사람이 없다고 묘사했다.
한 공무원은 인터뷰를 통해 "정원감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불안해하면서 이런 때 휴가를 간다면 업무에 태만하다는 인상을 줄 것 같아 눈치를 보고 있다. 직원들이 대부분 이번 휴가만큼은 금기시하고 있다"고 살벌(?)한 분위기를 전했다.
같은 해 7월23일자 '피서철 근로자 우울' 기사 역시 부도·파산 등으로 중소업체들의 부도위기가 커지며 휴가철 특별상여금도 거의 끊겼다는 소식이 담겼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남동지원처에 따르면 최근 남동공단 입주업체 1백49곳을 대상으로 휴가 및 상여금 지급계획을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78개 업체가 상여금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잠정 휴업, 또는 휴가를 포기하는 업체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등장한 당시의 휴가 화두는 '알뜰 휴가'였다. 멀리 강원도, 제주도 등 대표적인 관광지를 찾기보다 경기도·인천 인근에 해수욕장에서 휴가를 보낸다는 것.
1998년 8월12일자 기사 '궂은 날씨에도 "지친마음은 달래야지" 해수욕장 인파 늘어났다' 제목과 함께 인천 을왕리해수욕장의 여름 풍경이 담겼다. '11일 (인천) 중구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15일부터 지난 8일까지 영종·용유도를 찾은 행락객은 모두 5만8천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가량 늘어났다.
구 관계자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알뜰휴가를 보내려는 시민들이 가까운 영종·용유도를 많이 찾은 것으로 조사됐다. 폭우와 흐린 날씨만 아니었다면 더 많은 행락객들이 몰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