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개 가까운 점포, 7조원이 넘는 총자산을 운영하며 한때 전성기를 이룬 경기은행은 국가적 경제 위기와 정치의 '희생양'이 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순식간에 문을 닫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인수·합병을 거쳐 2012년 법인까지 청산되며 서류상으로는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은행이 됐다. 하지만 경기은행 구성원들은 여전히 장학회 활동과 교류를 지속하며 지방은행의 뿌리인 '지역 상생'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1969년 경기도를 연고로 하는 지방은행인 경기은행이 인천 구월동에 들어섰다.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한 1981년 이전에 설립돼 본점은 인천에 있지만 경기도내 29개 시군에 점포를 운영했다. 특히 시중은행이 등돌린 여주, 가평, 동두천, 이천 등 당시 도내 농촌 지역 곳곳에 지점을 둘 정도로 경기도 영업에 '진심'이었다.
부산·대구 이어 지역銀 3위 평가
'IMF' 직격탄… 한미은행이 인수
퇴출 직전 기준 운영한 총 193개 점포 중 경기도가 113개, 인천 76개였으며 서울에도 종로에 영업본부와 강남, 여의도, 영등포 등 주요 금융경제 거점 5곳에 지점을 운영하며 수도권 입지를 넓히고 있었다.
금융권은 당시 경기은행의 지방은행 업계 위치를 부산은행, 대구은행 다음인 3위 정도로 평가한다.
총자산 7조3천564억원, 자본금 2천억원, 총대출금 3조2천490억원, 영업수익 5천882억원, 임직원 2천300여명 등 나름 '단단한' 은행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직격탄은 피하지 못했다. 기업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면서 경기도 내에 중소규모 업체와 공장들에 사실상 최저 금리와 제한 없는 상환기간을 제공한 경기은행도 부실화된 채권이 급증했고, 신탁에 지급해 줄 이자가 늘다 보니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래도 경기은행이 무너질 것이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는 게 당시 업계의 설명이다. 88년 장학회를 세우고, 다음 해에 '경인리스금융'이란 여신전문 금융기관을 설립함은 물론 IMF 직전인 96년엔 경은경제연구소도 세우며 금융그룹 형성에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경제위기에 재빠른 대처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경기은행을 사실상 정치적 제물로 삼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8년 6월 금융감독위원회는 최초로 '대한민국 제1차 금융 구조조정'이란 이름의 정부 주도 은행 폐업을 단행하게 되는데, 경기은행을 비롯한 5개 은행을 퇴출하고 시중은행에 인수하도록 조치했다.
당시 부실은행은 12곳이 넘었지만, 경기은행은 함께 퇴출당한 지방은행인 충청은행과 지방에 본점을 둔 대동·동남은행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특정돼 정부의 시중은행 살리기에 희생됐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한미은행으로 인수된 경기은행은 본점을 인천영업부로 개편, 인력(1천200명)과 점포(104개)는 절반 정도씩만 편입했다. 한미은행이 2004년 한국씨티은행으로 출범한 뒤 경기은행은 2012년 법인 청산, 2017년 본점 폐쇄되며 자취를 감췄다.
장학회·해직자協 등 지금도 활동
그러나 경기은행의 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88년 세운 (재)경기은행장학회는 현재까지도 총 2천여명의 도내 중고교, 대학생들에게 20억원이 넘는 장학금을 전달했고, 동우회와 해직자협의회 등의 단체를 통해 지역 금융 발전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는 상황이다.
퇴출당한 지 25년 넘은 경기은행의 구성원들은 여전히 연고로 몸담았던 경기도를 애정하며 지역 환원과 성장에 동참하고 있다. → 관련기사 3면([경기도에 경기도 은행이 필요하다·(3)] 채워지지 않는 '지역 금융 빈자리')
/고건·김동한기자 gogosi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