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위기를 맞아 결정된 경기은행의 퇴출은 지역사회 전반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30년 가까이 지역경제를 지탱하던 대들보가 무너진 지 25년이 흘렀지만, 그 빈자리는 아직도 크다.
지역 중소기업들의 대출 문턱은 높고, 지역 내 금융 선순환도 원활하지 않은 실정이다.
BIS 8% 안돼… 대출 부조리 없어
중기 대출, 지방銀 유무 차이 커
예대율 '남 좋은 일' 해주는 처지
1998년 6월. 경기은행의 퇴출 소식이 발표되자 지역사회는 크게 술렁였다. 30여년 동안 개인 고객 190만여명, 중소기업 20만개 이상과 거래해 온 은행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리자 직원, 주주, 지역민들은 쉽게 믿지 못했다.
이후 퇴출 절차는 예고대로 진행됐다. 경기은행이 한미은행으로 인수되면서 임직원 2천200여 명 중 절반 정도인 1천200여명만 고용 승계가 됐다. 나머지 직원들은 다른 생계를 찾아 나서야 했다. 액면가 2천억원이 넘은 주식도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주주들은 은행을 찾아 거세게 항의했지만, 상황을 바꿀 순 없었다.
경기은행 퇴출에 따른 사회적 분위기는 1999년에 개봉한 영화 '해피엔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 서민기(최민식 분)는 6년간 재직하던 은행이 IMF 기간 퇴출되면서 실직하게 되는데, 이 영화 속 배경 은행이 경기은행이다. 당시 지방은행이었음에도 사회적인 파급과 영향력은 시중은행 못지 않았다.
김용중 경기은행동우회 회장은 "IMF시절 지방은행들의 상태는 다 비슷했으나 경기은행이 BIS비율 8%를 맞추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퇴출됐다. 대출 관련 부조리는 없었다"며 "당시 갖고 있던 주식이 휴지 조각으로 변하자 많은 지역민과 주주들이 실망했다"고 회상했다.
경기은행은 운영하는 동안 경인지역에서 지역 밀착 경영을 해왔다. 신용도와 담보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 중소기업 대출 비율을 70% 유지하면서 대출 문턱을 낮췄다. 또 인천시, 광명시, 의왕시, 과천시, 구리시 등 지자체 시금고를 오랜 기간 맡으며 지역 내 자금이 선순환될 수 있도록 역할을 했다.
경기은행협의회 관계자는 "지방은행의 설립 취지는 지역 중소기업을 뒷받침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있다. 당시 여러 지자체 금고를 맡으며 지역 공헌 활동을 진행했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금융통계시스템에 공개된 예금은행 지역별 대출금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지난 5년 동안 경기지역 예금은행의 전체 대출금 중 중소기업 대출금 비중은 2018년 42.4%(148조여원), 2019년 42.6%(160조여원), 2020년 43.3%(182조여원), 2021년 44.8%(202조여원), 2022년 46.9%(218조여원)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소폭 늘어났지만, 이는 지방은행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부산·경남·대구·경북·광주·전남·전북·제주)보다는 9~11%포인트 낮은 수치다.
같은 기간 해당 지역의 평균 수치는 2018년 53.9%, 2019년 53.9%, 2020년 54.3%, 2021년 54.7%, 2022년 55.7%로 나타났다. 지방은행이 있는 지역일수록 중소기업 대출 문턱이 낮은 셈이다. → 그래프 참조
지역 내 자금의 역외 유출 문제도 지적된다. 경기도의 높은 예대율 때문이다.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 높다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예대율이 높을수록 예금은행을 통한 지역 자금 중개 기능이 원활하다는 해석과 지역 내 금융기관이 공급한 자금이 생산, 소비, 투자 등으로 순환하는 과정에서 지역 내 예금으로 돌아오지 않고 역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지난 3년 동안 경기지역 예대율(예금은행·비은행예금취급기관)은 111.7%, 112.5%, 109.1%인데 이는 같은 기간 지방은행이 있는 지역(92.1%, 95.7%, 94.0%) 평균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김헌수 전략인재연구원장(경영학 박사)은 "지방은행의 유무에 따라 지역 중소기업 대출 여건도 차이가 크다"면서 "경기와 인천 지역 모두 예대율이 높다. 지역 내가 아닌 지역 외 은행을 통해 돈을 빌리고 있어서 그런데, 이건 오히려 다른 지역에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지역에 은행을 조성해 지역민들이 맡긴 돈을 예치하고 활용한다면 GRDP를 높이고 지역 내 금융 선순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건·김동한기자 d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