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기업 '한국와이퍼'의 일방 청산 통보로 대량해고에 놓였던 수백 명의 노동자가 '사회적 고용기금'이라는 결실을 이뤘다. 청산 개시 1년여 만이다. 그동안 외국계 투자 기업의 '기획 청산' 등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온 노동자들이 지역사회와의 연대로 유례없는 성과를 달성했다는 평가다.
다만 입맛따라 '들어왔다 철수하는' 외국계 기업의 행보를 막을 제도는 미비한 실정이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걸어온 길을 조명하고, 남은 과제를 짚어본다.
기업 강제해산 한국와이퍼에 맞서
사회적고용기금 이끌며 투쟁 종료
기업 강제 해산 절차에 나선 일본계 기업 한국와이퍼를 상대로 안산 공장 노동자들이 '사회적고용기금'을 이끌어내며 1년여 투쟁을 마무리한 가운데, 반복되는 외국계 기업의 '먹튀 청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관련 법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거세지고 있다.
22일 지역 정치권 등에 따르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국계투자(이하 외투) 기업이 무분별하게 노동자를 강제 해고하고 청산절차까지 밟는 이른바 '먹튀' 문제를 막기 위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세제 혜택 등으로 국내에 정착한 외국계 기업이 강제 청산 절차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할 시 혜택을 환수하는 내용 등이 개정안의 골자다.
우원식 의원실 관계자는 "인센티브를 받았던 외국계 기업이 갑작스럽게 대량 해고를 하는 식의 문제를 막고자 하는 취지의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며 "기업 심사와 규제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 간 회의도 실질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을 구체화해 오는 9월 중으로 입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입법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는 건 외투 기업의 먹튀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점에서다. 한국와이퍼는 지난 2021년 10월 노동조합과 고용보장 관련 단체협약을 맺었음에도, 이듬해 적자를 이유로 기업 강제 해산 절차를 진행해 수백 명의 노동자를 궁지로 내몰았다.
이에 앞서 한국게이츠(대구), 한국산연(창원) 등 외투 기업들이 공장 내 노동자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국내 자본을 철수하며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우원식 의원, 관련법 개정안 준비
계류 법안과 비슷해 통과 '미지수'
고용 안정성 보장 등 단서 달아야
다만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설지는 미지수다. 이미 지난 2021년과 2022년 각각 김정호(더불어민주당), 류호정(정의당) 의원이 중심이 돼 외국인 투자기업을 규제하는 외국인투자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계류된 채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류 의원 대표 발의안의 경우, 노동자 고용안정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을 때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 외투 기업의 평가와 심사 등을 맡는 '외국인투자위원회'에 노동전문가를 배치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는데 이 법안이 우 의원이 준비 중인 개정안과 큰 틀의 유사성을 띠는 점은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을 예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노동자의 실질적 권익 보호를 위해서는 외투 기업에 대한 규제뿐 아니라 제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장석우(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외국계 기업만 '핀셋' 규제하면 국제법상 투자자를 보호하는 조항들과 위배돼 국제분쟁으로까지 문제가 커질 위험이 있다"며 "국내외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적용받는 근로기준법과 상법 등에서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항목들을 외투법과 패키지로 묶어 개정하는 방향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관련 법에 '환수 조치'에 대한 내용은 담겨 있어 개정안에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며 "기업 유치에 혜택을 줄 때, '고용기금' 설치 의무를 단서로 다는 등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