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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미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분회장은 "기나긴 싸움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용 약자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 화성시 덴소코리아 화성공장 앞에서 집회를 갖고 있는 최윤미 분회장.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자동차 와이퍼를 만드는 '한국와이퍼' 안산 공장 노동자 200여 명이 회사의 일방 청산 통보를 받은 지 1년쯤 된 지난 7월의 어느 날, 장맛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 청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관계회사인 덴소코리아 화성공장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연 노동자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사측에 책임을 촉구하는 와중에 "꼭 비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여기 있다"며 농담도 주고받았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투쟁을 이어오며 지칠 대로 지쳤을 노동자들이 노래한 것은 절망보다는 희망, 비관보다는 낙관에 가까웠다.

낭보는 그로부터 며칠 뒤 전해졌다. 기나긴 싸움 끝 해고 노동자들의 재고용과 직업교육 등을 돕는 '사회적 고용기금'에 대해 사측과 합의하면서다.

일본 본사 앞 삭발식·44일 단식 투쟁
공장 복귀 꿈 이루지 못해 아쉬움
수많은 위기에도 조합원 이탈없어


그 중심에 최윤미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분회장이 있다. 일본 덴소 본사 앞에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삭발식을 진행하고, 국회 앞에서는 44일 동안 곡기를 끊고 정치권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23일 만난 그는 "기쁜 것보다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크다"고 싸움을 끝낸 소감을 전했다. 동료들과 함께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일을 하는 게 주된 목표였지만 이루지 못해서다.

그럼에도 사회적 고용기금이라는 합의를 이끈 것은 통상 사측으로 기울어진 노사 협상 테이블의 특성상 빛나는 성과라는 평가가 높다. 안산공장의 기계를 반출하려는 사측의 시도에 노동자 몇은 뼈가 부러지는 등 크게 다쳤으며, 교섭 국면은 진척 없이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는 등 위기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209명의 조합원은 1명의 이탈도 없이 자리를 지켰다.

최 분회장은 합의의 공을 동료들과 시민사회에 우선 돌렸다. 그는 "기나긴 싸움을 함께하는 조합원들과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고민이 컸다"며 "노동조합의 일원으로서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 고용기금이라는 대안을 만들 수 있었다. 지역 시민들과 조합원의 도움이 결정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고 짚었다.

투쟁기는 일단락됐지만 과제도 남았다. 마련한 고용기금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가 관건이다. 최 분회장은 해고된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을 돕는 데서 나아가 재단 설립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중장년층, 여성, 비정규직 등 고용 약자들을 뒷받침할 방안도 고민 중이다.

그는 "긴 투쟁기 속 공권력이 개입하거나 합의가 제자리에 멈춰있을 때 고통이 컸지만 옆에 있는 동료들과 안산 시민들, 언론의 도움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며 "이런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용 약자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