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기업 '한국와이퍼'의 일방 청산 움직임에 맞서 실직 노동자들이 생계지원과 재고용 등을 위한 '사회적 고용기금'을 쟁취한 것을 두고, 해고 위기 노동자 보호 방안에 대해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고용기금 재원이 청산을 단행한 한국와이퍼 측이 마련한 일회성 출연금에 그쳐, 향후 재단 설립을 통한 기금 운용이 지속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남는다.
실직노동자 생계·재고용 등 지원
일회성 출연 그쳐 지속 운용 의문
정부 지원 등 뒷받침 있어야 안착
23일 고용노동부와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 등에 따르면 노조는 지난 16일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이 마련한 자리에서 한국와이퍼와 '사회적고용기금'을 마련하는 데 합의하며 회사의 기업 청산 개시 1년1개월여 만에 투쟁을 마무리했다. 실직 책임이 있는 한국와이퍼가 기금을 재원으로 출연해, 실직 노동자의 생계지원과 재고용·직업교육 등을 돕는 게 핵심이다.
기금의 역할은 이뿐만이 아니다. 노조는 일부 재원을 통해 재단법인을 만들어 한국와이퍼 반월 공장 인근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재고용 등에 활용하기로 했다. 이밖에 기금 중 일부를 '차별개선지원금' 형식으로 실직 노동자를 지원하는 것도 눈에 띄는 지점이다. 퇴직금과 위로금 차이가 연차에 따라 크게 발생하는데, 지원금을 '연차가 낮으면 더 주는' 식의 '하후상박' 구조로 구상, 노동자별 지급 편차를 줄이고자 했다.
이에 대해 최윤미 한국와이퍼분회장은 "노동조합과 지역 시민이 중심이 돼 재단을 운영하게 되며, 산업전환 시기 일자리를 잃는 지역 노동자, 여성과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할 예정"이라며 "향후 정부와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온전한 형태가 될 수 있도록 조합원들과 사회적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노조는 오는 9월 중으로 기금 운영 준비위원회를 구성한 뒤, 관계자 간담회·사업연구 등을 통해 연내에 재단을 설립할 계획이다.
다만 재단이 장기적으로 지속·운영될지는 지켜볼 지점이다. 노조는 고용기금안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스웨덴의 '노사 자율 고용안전기금'을 참고했는데, 이 모델은 고용주가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기금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한국와이퍼 고용기금' 모델이 해고 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을 위한 선제적 모델이 될 수 있다면서도, 이를 사회에 안착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금을 계속 유지하려면 재원을 활용해야 하고, 출연과 후원이 뒤따라야 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와이퍼 노동자들과 유사 문제를 겪는 사례에 대한 긍정적인 모델이 될 수 있는데, 지속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관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영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와이퍼의 경우) 어느 정도 기업의 선의에 입각해 고용기금이 마련된 점에서 일반적인 사례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실업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소득과 생활안정을 보장하고, 다양한 재취업·창업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관련기사 17면([인터뷰] '사회적 고용기금 결실' 최윤미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장)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