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와이퍼 김은숙 (4)
지난 24일 오후 7시 안산시 단원구의 한국와이퍼 조합원 김은숙씨 자택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은숙씨가 여성노동자로서 겪었던 그간의 일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가 키우는 반려견 '꼬맹이'(왼쪽)와 '탄'(오른쪽)도 인터뷰 내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2023.8.24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노동조합' 누구는 몰랐고, 누구는 싫어했다. 모두 눈앞 생계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이 노동조합에 발을 디뎌 생활한 경험을 이제 '보물'이라고 한다. 살아갈 길을 찾게 해줘서다.

자동차 와이퍼를 만들며 밥벌이를 했던 '한국와이퍼' 안산 공장 노동자 209명이 회사의 일방 청산 시도에 맞서 싸운 뒤 일어난 변화다. 그들은 외국인투자(외투)기업의 이른바 '먹튀'에 대항해 해고된 이들뿐 아니라 지역 고용 약자를 위해서 쓰일 '사회적 고용기금'이라는 전례 없는 결실을 맺었다.

 

알지 못했고 부정적 선입견의 노조
벌이 끊길 지경 이르자 눈에 들어와
1년간 투쟁 이어올 수 있던 원동력
소중했던 시간… 고용 약자 돕고파
 


한국와이퍼 김은숙 (1)
투쟁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김은숙씨의 모습. 현재 집안 일을 하는 동시에 구직활동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는 지난 2003년 9월 한국와이퍼에 입사해 20여년 동안 일을 해왔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노동조합의 끈을 잡기로 했다
김은숙(54)씨는 지난 2003년 한국와이퍼 안산공장에 입사한 20년차 '베테랑' 노동자다. 그는 둘째 아이를 가진 뒤 네 가족이 살 만한 집을 찾아 서울에서 안산으로 왔다. 국가 공단이 즐비한 안산이 수도권 신도시로 각광받던 시기였다.

그는 "맞벌이를 해야 살 수 있었다. 큰 기술이 없는 일자리를 찾다 집 근처 반월공단에 한국와이퍼 공장에 들어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동료들과 노동조합(이하 노조)을 만든다는 것을 그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최저시급 언저리 임금을 받으면서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노조활동은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김씨와 10년째 같은 공장에서 일한 강명지(51)씨도 노조와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다. 그는 "직장 일도 고된데 집안일까지 도맡다 보니 노조에 대한 관심은커녕 그런 (노조) 활동하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 시절을 강씨는 "빨간 날 규칙적으로 쉬고, 정년까지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게 그저 좋았던 때"라고 짚었다.

벌이가 끊길 지경에 닿자 노조가 눈에 들어왔다. 회사의 '기획 청산' 로드맵이 수면 위로 올라온 때다. 지난 1월부터 209명의 공장 노동자가 '우리는 우리가 지킨다'며 공장 바닥에서 본격적으로 농성을 시작했다.

김씨는 "회사가 갑자기 떠난다고 했을 때, 뒤통수를 누가 세게 때린 기분이었다"고 했고, 강씨는 "이후 대책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노조와 거리를 두던, 강씨가 '떠밀리듯' 노조 조직부장을 맡은 것도 그 무렵이다. 이들은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라며 노조를 믿기로 했다.

 


강명지씨
비관하기보다는 긍적적인 마음가짐으로 투쟁을 이어갔지만, 강명지 조직부장은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그때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던 건 아들과 함께한 에버랜드 일일 여행과 '언니'들이 보낸 응원 메시지 덕분. 2023.8.26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투쟁 속, 웃음꽃이 피었다
긴 투쟁기 속 지난 3월15일을 모두 잊지 못한다. 회사가 새벽부터 공장 기계설비를 꺼내려던 날이다. 강씨가 "경찰 버스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진을 치고 회사의 기계 반출을 방치하는 것을 보고 비참함을 느꼈다"던 그날이다. 이를 막아서다 조합원 몇은 뼈가 부러졌다.

굳이 그날을 떠올리는 건 아픔 때문만은 아니다. 한바탕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났을까, "치킨 시켜먹고 힘내자"는 한 조합원의 우스갯소리에 이내 열패감에 휩싸인 공장의 공기에 활기가 돌았다.

강씨는 "즐겁게 웃으면서 하자는 얘기가 처음에는 농담처럼 나오다 농성장에서 윷놀이도 하고, 가위바위보도 하며 즐거운 분위기가 됐다"며 "1년여간 투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

한국와이퍼 강명지 (2)
지난 26일 오후 1시, 안산시 상록구 인근 카페에서 만난 강명지 한국와이퍼분회 조직부장이 지난 한국와이퍼 투쟁기를 돌아보며 소회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힘든 시기였지만 '즐겁게'를 외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관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2023.8.26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나도 변했고, 우리가 변했다. 다른 변화를 만들고 싶다"
한국와이퍼가 일방적으로 기업 청산을 개시한 지 1년여 만인 지난 16일 노조는 사측과 해고 노동자의 생계지원은 물론 재고용·직업교육 등을 돕는 사회적고용기금에 합의했다. 생계에 짓눌려 노조를 몰랐거나, 애써 거리를 두었던 이들이 노조라는 남은 하나의 끈을 부여잡고 만든 결과다.

"노조 활동이 큰 경험이고 보물인 것"을 알게 됐다던 김씨와 강씨는 노조에서의 경험을 지역사회 고용 약자를 위해 쓸 생각이다.

강씨는 "노조에서 일하면서 '오지랖'같은 게 생겼다. 나를 지키는 데서 나아가 남을 돌보려고 하는 점에서 선한 오지랖이 아닐까. 따뜻하고 소중한 시간을 겪었듯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고용 약자들을 돕고 싶다"고 다짐했다.

/조수현·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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