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8년을 맞은 경인일보는 그간 이달의 기자상을 64번 수상했다. 이달의 기자상은 한국기자협회가 1990년 9월부터 협회에 가입된 전국 언론사를 대상으로 보도 기사 중 가장 뛰어난 기사를 선정해 매달 1회 수여하는 상이다.

이달의 기자상이 시작된 지 33년이 흘렀는데, 산술적으로만 따져봐도 매년 2개의 수상작을 배출한 셈이다. 단순히 수상 실적이 중요한 게 아니다.

경인일보가 수상한 보도기사는 경기도와 인천의 살아있는 역사를 사실 그대로 기록한 '史'이다. 또한 지역 사회를 관찰하고 고발하며 어젠다를 던지는 '시대정신'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 했다. 창간을 맞아 특별판으로 준비한 '레트로K'는 경인일보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을 통해 독자와 함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우리를 고찰한다.
사회적 약자

인간사에 빈부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듯, 어느 시대에나 '사회적 약자'는 존재했다. 물자의 풍요를 누리는 현재에도 그건 유효한 진리다. 그래서 그 사회의 선진성을 보여주는 척도가 사회적 약자를 향한 대우다. 경기도·인천의 대표 지역지로서 경인일보가 우리 주변의 사회적 약자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싣는 이유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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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장덕동 비포장 도로변에 세워진 숨진 김씨의 0.5t 트럭. 김씨는 네식구의 생계수단이었던 0.5평 남짓한 공간에서 쓸쓸하게 숨졌다. 아래는 김씨 부부에게 전해진 피고인 소환장. /경인일보 아카이브

제 175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인 '어느 청각 장애인의 죽음'은 벌금 70만원을 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청각장애인 가장의 사연을 단독보도하며 시작됐다.

그의 아내가 화성시 궁평항 인근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던 중 화성시 궁평항 어항시설 주변정리사업에 의해 불법 노점행위로 단속돼 검찰에 고발됐다. 법원은 벌금 70만원을 납부하라고 통지했고, 벌금을 내지 못하자 "공판기일까지 법정에 출석하지 않을 때는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며 피고인 소환장을 발부했다.

아내가 구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딸들에게 지워질 멍에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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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장애인인 두 딸(13·10) 만큼은 자신들과 달리 키워보겠다는 일념으로 비좁은 트럭에 몸을 싣고 화성지역 구석구석을 돌며 호떡과 어묵, 떡볶이를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갔다. 힘겨웠지만 허리띠를 졸라맸고, 생활은 가능했다…한달 내내 일해도 목돈 100만원을 손에 쥘 수 없었던 부부는 주변에서 돈을 빌려보려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허사였다. 변변한 직업조차 없는 청각장애인 부부에게 100만원을 선뜻 건네 줄 자선가는 없었기 때문이다.(2005년 3월22일자 19면=노점적발 청각장애인 벌금 못 구해 애태우다 법원 소환장 받고 극단선택)

보통의 사건사고 기사를 두고 기자들은 사회면 '1단기사'라 부른다. 매일 어디선가 교통사고가 나고, 화재가 발생하며, 사람이 다치고 죽으니 사회면 귀퉁이에는 1단 기사 자리가 늘 자리한다. 그러나 3줄이 채 되지 않는 1단 기사를 유심히 살펴볼 때 우리 사회의 약점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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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불이 나 초등생 형제가 크게 다쳤다. 녹아버린 잠금 장치가 당시 대피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경인일보 아카이브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하며 모두 움츠러들었다. 특히 물리적 이동이 쉽지 않았다. '전염되면 끝'이라는 원칙이 지배하던 터라 빼앗긴 자유를 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비극의 현장에 있었다.

제 361회 이달의 기자상 '인천 미추홀구 초등생 형제 화재사고'는 10살과 8살 형제가 비대면 원격수업으로 학교에 가지 못해 집에 있는 동안 불이 나 크게 다치고 결국 사망한 사고를 조명했다.

"왜 그 시간에 아이들만 집에 있었을까"에서 출발한 1단 기사는 기초생활수급가정에서 엄마가 공공근로를 간 사이에 발생한 코로나 시대 돌봄공백을 고발하고 전염병 공포에 가려진 '어린이의 삶'을 사회적 참사로 인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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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살던 형제는 원래대로라면 학교에서 급식을 기다릴 시간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학교가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면서 일터로 나간 어머니 없이 집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인근 분식집 직원은 "최근 일주일에 1~2번씩 점심시간에 맞춰 늘 분식집에 와서 1천500원짜리 참치주먹밥을 두 세 개씩 포장해 갔다"며 "아이들끼리 와서 카드로 결제하고 나갔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어야 하면서도 돌봄 사각지대에 처한 상황이었다. (2020년 9월16일자 1면=라면 끓이던 형제 '날벼락' 코로나 시대의 비극)

부동산

기획부동산
기획부동산 사무실 내무 모습과 기획부동산이 밀집한 서울 강남 테헤란로 일대. /경인일보 아카이브

사회 이슈도 유행이란 것이 있는데, 부동산만큼은 수십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뜨거운 이슈다. 경인일보가 기자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기사 주제 역시 '부동산'이다.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경기도·인천 지역의 도시개발 역사는 투기와 투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대한민국 부동산 역사를 새로(?) 써왔다.

하지만 그 방식은 잔인했다. 임야는 파헤쳐지고 원주민은 쫓겨나는, 악순환이 계속되며 잠자고 일어나면 신도시가 건설되던 곳이 바로 경인지역이다.

특히 1기 신도시 개발 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고 더 이상 서울에 개발할 땅이 사라지면서 2000년대 들어 경기도는 '난도질'을 당하기 시작했다. 제 151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인 '공장 난개발 광풍-난도질당하는 국토'는 개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화성과 용인, 김포, 안성, 남양주, 광주 등 공장 개발을 이유로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도내 지역의 현실을 생동감 있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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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난개발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국토는 이제 공장건설이라는 제2의 난개발 광풍(狂風)으로 난도질 당하고 있다. 나지막한 곡선미, 그저 찻길을 지나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휴식 같았던 푸른 산들은 허리가 잘려나간 채 시뻘건 황토벌로 변해갔고,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 흙들은 영락없이 너른 논밭을 메워갔다. 그리고 두어달 뒤 생김새 비슷비슷한 공장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산과 들이 흉측한 공장지대로 변하는 과정은 약속이나 한 듯 어디든 똑같다.(2003년 3월17일자 1면=잘려나간 산 허리 시뻘건 속살 피멍)

무분별한 도시 개발로 인해 기사는 '이제 경기도는 아파트 반, 공장 반이 됐다'고 한탄했다. 이렇게 곳곳이 개발로 몸살을 앓으면서 동시에 '투기장'이 된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제169회 이달의 기자상 '돈돈돈… 땅땅땅(투기장으로 전락한 경기도)', 제 174회 이달의 기자상 '보상노린 무허건물 난립-생떼공화국' 등 잇따른 수상작도 당시 폭등하는 경기도 부동산 시장의 혼란을 보여줬다.

그 중에서도 제175회 이달의 기자상 '땅값 부추기는 기획부동산'은 기자가 직접 부동산 시장을 교란시키는 기획부동산 업체에 위장 취업해 그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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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6, 223, 305, 207… 다 받아적으셨죠? 오늘 우리가 처분해야할 물건입니다. 자, 그럼 시작합시다." 지난 18일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의 서울 강남 소재 한 기획부동산. 이곳은 각 부서별로 작업지시를 내리느라 부산한 모습이다. 기자가 속한 담당부서의 K부장은 오늘부터 2차 작업지에 대한 본격 판매에 들어간다며 분발을 강조한다. 앞에 부른 숫자는 작업지의 분할된 평수들로, 오늘부터 236평과 223평 등의 물건을 소화해야한다는 뜻이다. (2005년 3월21일자 1면=한탕거래 유혹하는 제2다단계)

노동

창간호를 준비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도 노동자 2명이 흙더미에 깔려 죽었다. 의왕에서 안양천 상수도 송수관 교체 작업을 하던 중 토사가 쏟아지며 매몰돼 숨졌다. 이 사고가 일어난 같은 날에 용인에선 근린공원 우수관로 공사현장에서 옹벽이 무너지며 노동자가 깔려 숨졌다. 그렇게 매일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다.

특히 사람이 많이 살고, 그래서 개발이 많고 공사현장이 많으며 공장이 많은 경기도·인천 지역에선 매일 누군가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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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국제공항 건설 현장 노동 인권 실태 기획에 추가된 사진 한장. 보기만 해도 위험해 보인다. /경인일보 아카이브
 

제 109회 이달의 기자상 '인천 국제공항 건설 현장 노동 인권 실태'는 IMF 시절, 적나라한 건설노동현장의 비극을 깊숙이 취재했다. 명예퇴직, 해고가 남발하며 노동의 값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그 시절, 밑바닥 노동자들의 현실은 비참했다.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지금의 인천국제공항이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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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건설 근로자식당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20~30대 근로자 5명이 라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전날 오후 3시께 콘크리트타설현장에 투입, 장장 17시간동안 꼬박 일을 했다고 밝혔다. "IMF만 아니면 누가 여기서 일을 하겠습니까? 그나마 오늘은 빨리 끝난 셈이에요. 타설현장 기술자도 월 180만원씩 주고 막 부려먹어요. 최소한 300만원은 줘야 하는데…. 정말 죽을 맛입니다."(1999년 9월13일자 19면="이렇게 고된일 처음해봐요")

1999년에 벌어진 비극적인 노동현장은 2022년 10월에도 재현됐다. 제 386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평택SPC 청년노동자 사망사고'는 SPC계열사 작업장에서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몸이 끼여 숨진 20대 청년 노동자를 단독 보도한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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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끼여 숨진 A씨는 평소 현장에서 같이 작업하던 가까운 동료에게 종종 "배합이 너무 힘들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힘들다"고 토로하며 강도 높은 작업 환경에 피로감을 호소했다고 확인됐다.특히 A씨처럼 동료 없이 홀로 물량을 소화해야 하는 배합기 작업자에게는 더더욱 힘든 환경이었다.(2022년 10월18일자 1면=청년이 죽을때 까지 SPC는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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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SPC그룹 본사 앞에서 여성시민노동단체들이 'SPL 중대재해 사망사고 추모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인일보 아카이브

이 사건이 보도된 후 해당 기업 등으로부터 취재 중단 등의 외압 및 회유에 시달렸다. 하지만 동료의 사고 다음날에도 출근해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단독보도하는 등 꿋꿋이 취재를 이어나갔고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 SPC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사회적 여론이 들끓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아카이브/김혜미 khmk8888@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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