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으로 대표되는 경기도 1기 신도시는 1989년 4월 27일 정부가 분당·일산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91년 9월 분당 시범아파트 단지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1기 신도시들이 차츰 신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는데, 개발에 걸린 시간이 고작 2년5개월이다.
정부 1989년 분당·일산신도시 건설계획 발표… 개발에 걸린 시간 고작 2년 5개월
토지수용방식 결정에 삶의 터전 빼앗긴 주민들… 서울 베드타운화 현실로 나타나
'先개발·後계획' 주택건설 빠르게 진행됐지만 교육·의료·상업시설 제대로 못갖춰
'사람' 생각하지 않고 졸속으로 짓는 방식, 2·3기도 이어져 각종 사회문제 '골머리'
■ 원주민이 사라진 1기 신도시의 마법
개발계획이 발표된 직후부터 5개 지역에 조상 대대로 살아온 원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신도시 건설계획이 발표된 다음날인 1989년 4월28일자 경인일보에는 '기대 크지만 걱정도 태산'기사가 실렸다.
기사에는 "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자 대상지 주변 및 현지주민들은 대체로 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뜬 표정이었으나 이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이주해 오거나 토지수용량이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며 현지 농민들과 원주민들은 오히려 난감해 하는 실정이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우려는 금세 현실이 됐다. 정부가 신도시 건설을 '토지수용방식'으로 결정하자, 농사·축산업 등 땅을 근거로 생계를 이어온 원주민들의 반발이 커진 것이다.
발표 이후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분당과 일산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농민 시위가 일어났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데 땅 주고 보상금을 받아든들, 농사를 천직으로 살아온 자신들(원주민)이 무엇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가냐며 항변했다.
1989년 5월 26일자 경인일보는 신도시 건설 무엇이 문제인가 기획 시리즈를 통해 '서울 사람 위해 왜 우리가 쫓겨나나'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일산지구 신도시는 30개 마을 4천52세대 1만7천800여주민이 살고 있는 전원적인 농촌지역에 세워지게 된다… 정부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특혜도 필요없고 오로지 '우리가 여지껏 살아오던대로 내버려달라'는 게 전부다. 농지수용에 따른 대체농지 마련을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생활해온 농민들에게 보상금으로 현금이 수중에 들어와도 근본적인 생계대책과는 거리가 멀고 땅만 빼앗긴다는 의식이 팽배해있다."
뚜렷한 대책 없이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으며 이들 신도시 개발지역의 주민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발생했다. 1989년 5월 20일자 경인일보에는 "일산 신도시 개발계획으로 집과 땅이 모두 수용대상지로 결정되자 이를 비관해오던 50대 일산주민이 극약을 마시고 음독자살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신도시 개발 반대 시위에 참여해 왔다는 그는 숨지기 전 "평생 모은 재산이라곤 땅 조금과 집 한 채뿐인데 신도시개발 보상비를 제대로 못 받으면 어떻게 하느냐. 아파트 입주권을 받더라도 우리 형편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한탄했다고 전했다.

1992년 실제로 분당을 필두로 입주가 시작된 이후 원주민들 상당수는 원래 살던 땅에서 쫓겨났다. 1992년 4월 30일자 경인일보는 '신도시 건설 3년, 무엇이 문제인가' 시리즈를 통해 특히 원주민이 철저하게 외면받은 정부의 잘못된 대책을 꼬집었다.
"주택난 해소와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예방을 위해 신도시건설계획을 발표했으나 막상 아파트 분양현황을 보면 37평 이상의 중·대형 아파트가 절반을 넘어 그만큼 무주택자들의 내집마련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분당 신도시의 이같은 중·대형 아파트 편중과 함께 삶의 터전을 빼앗긴 현지주민들의 우선 분양이 외면돼 서울의 베드타운화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당초 아파트의 지역주민 우선 공급률을 20%내지 30%까지 확대할 계획이었으나 신도시지역 특례와 청약 가입연수에 지역주민들이 서울 거주자들에 밀려 현재 분양현황으로 보면 지역주민들이 1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서울시민을 위한 개발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실정이다."

결국 1기 신도시에 '사람'은 없었다.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살아온 원주민이 사라진 그 자리에 새로 건설된 신도시는 새로운 사람들로 구성됐다. 1989년 11월27일자 경인일보 '부유층 위한 신도시 우려'기사에는 이때의 풍경이 잘 묘사됐다.
"분당 시범단지 모델하우스 공개 첫날인 26일 15만명의 인파가 몰려 인근 도로가 마비, 아수라장이 된 채 또다시 투기장화할 조짐을 보여…공개 첫날인 26일 하루 오전 7시부터 몰리기 시작한 분당행 행렬은 서울과 분당을 잇는 모든 도로를 마비시키며 밤늦게까지 계속됐고 10분 간격으로 운행키로 한 셔틀버스는 몰려드는 자가용 행렬로 운행이 중단되는 등 일반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길이 더욱 멀게 느껴진 하루였다."
또 1989년 8월9일자 경인일보 '분당·일산 신도시 이주 희망자 주거규모 30~31평 선호' 기사에는 국토개발원이 이들 신도시의 입주 희망자를 조사했는데 소득이 높은 중산층 이상, 전문직 또는 관리직의 직업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 입주를 희망했다.
■ '선(先)개발·후(後)계획'의 악순환
1기 신도시 건설이 시작부터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데는 '선(先)개발·후(後)계획' 방식으로 도시 개발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가 지도를 펼치고 개발에 필요한 선을 그리고 땅을 갈아엎어 건물부터 짓는 것이다.
당시 정권의 성격과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불가능한 방식도 아니었다. 아파트 등 주택건설은 급속도로 진행됐지만,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을 위한 교육시설, 의료시설은 물론 상업시설조차 제대로 구성되지 못했고 서울은 물론 도시 내부 교통망조차 구축하지 못한 채 1기 신도시는 첫발을 내디뎠다.
1기 신도시의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되면서 '선(先)개발·후(後)계획'의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1991년 하반기부터 입주가 시작된 분당의 경우 다음 해에도 교통체계가 정리되지 못해 출퇴근길 교통지옥이 계속됐다.
1992년 4월30일자 경인일보 '출퇴근 교통지옥 불보듯'기사에는 "분당신도시 교통망 확충을 위해 지난 90년부터 착공한 수서~분당 구간을 비롯한 12개 노선의 확장·신설이 늦어지고 판교~풍덕노선 등 3개 노선만이 완공돼 본격적인 입주를 앞두고 출퇴근 시 교통지옥현상을 면할 길이 없는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주택공급에만 매몰된 개발논리는 '자족기능'의 상실도 초래했다. 1992년 5월4일자 경인일보 '자족기능 확보 최대 문제'기사는 일산 신도시의 빈약한 자족기능을 우려했다.
"이같이 급작스런 인구증가추세에 비해 고양시 전체가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이전촉진권역으로 지정돼 시가지조성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데다 6개 택지 개발지구는 주택건설에만 치우쳐 인구 100만도시의 기능을 모두 일산신도시가 떠맡아야 할 실정이다. 따라서 일산신도시 건설에서 당국의 도시자족기능 향상을 위한 후속조치가 따르지 않는 한 '거대한 배드타운화'를 면키 어려운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될 전망이다."
이러한 우려는 실제로 현실이 됐는데, 2021년 LH 토지주택연구원이 발간한 '1·2기 신도시 종합평가 연구'를 살펴보면 일산 신도시의 경우 신도시 경제 및 생활기반부문 충족도에서 완공 초기인 1996년 0.59 였지만, 22년이 지난 2018년엔 0.94로 측정됐다.
해당 연구에서 설계한 2018년 충족도의 기준이 1인 것을 감안하면 '미달'이며 같은 시기에 지어진 분당이 0.57에서 1.51, 2기 신도시인 판교가 0.33에서 2.76으로 충족도가 올라간 데 비해서도 상당히 저조하다.
정부가 '선(先)개발·후(後)계획' 방식을 택한 건 경기도 신도시 건설의 주된 목적이 주택 양적 공급을 통해 서울 부동산 값을 제어하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 개발의 목적이 '사람'이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정주공간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당장 서울 부동산 가격을 방어하는 극약처방으로 신도시를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1기 신도시 주민 입주 등 신도시개발이 완료된 1996년까지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3.3%, -5.1%, -3.2%, -0.2%,-0.2%로 하향 안정화되었고 IMF를 겪었던 1998년에는 -11%까지 가격 하락하는 효과를 얻었다.
■ 도시개발의 나쁜 선례가 되다
문제는 1기 신도시의 개발방식이 2기 신도시, 3기 신도시와 같이 대부분 신도시들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먼저 주택공급 위주의 개발이 시작된 후 사회 기반 인프라들이 뒤늦게 계획하는 '선(先)개발·후(後)계획' 방식을 답습하면서 1기 신도시가 겪은 문제를 이후에 건설되는 신도시들이 그대로 겪고 있다.
실제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화성 동탄, 김포 등 2기 신도시는 도시가 확장하고 인구밀도가 높아진 데 비해 교통이 원활치 못한 문제가 계속돼 주민들이 현재까지도 고통받고 있고, 최근엔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정작 도시의 미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자족기능은 고민조차 못하고 폐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판교 테크노밸리가 있는 분당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1기 신도시들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울의 베드타운'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경우에도 베드타운에만 국한된 분당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개발계획을 세울 당시 경기도가 적극적으로 100만평(330만5천785.12㎡)의 땅을 당시 건설교통부에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못했고, 겨우 20만평(66만1천157.025㎡)의 땅을 얻어 시작한 게 그나마 지금의 자족기능을 갖추는 발판이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졸속으로 지어진 신도시의 유효기간이 고작 20~30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잘 살 수 있어야 도시가 '지속가능'해지는데 20년만 돼도 사람이 살기 힘든 도시가 돼버리는 것이다.
1기신도시 준공 20년이 지난 2013년 토지주택연구원이 연구한 '1기 신도시의 계획적 재생방안 연구'에서 수도권 1기 신도시에 거주하는 시민을 상대로 도시 만족도를 조사했을 때 복지시설, 문화시설, 치안 방범시설, 의료시설 등 생활 인프라 면에서 열악하다는 응답이 높았는데, 자족성 및 도시 서비스 등 질적 개선에 대한 요구가 상당히 컸다.
굳이 연구 조사를 말하지 않더라도, 선거때마다 경기도 1기 신도시 및 구도심 노후화 문제는 단골 문제로 거론되는 사회현상은 이 문제를 방증한다. 결국 사람이 빠진 도시개발은 도시의 유통기한만 단축 시킬 뿐이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