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2)] 새 보금자리 찾아주는 우청숙 공인중개사
"전재산 잃어 도와달라" 요청에
복잡한 실타래 해소 '전문성 발휘'
명의 수탁자, 동의서 받아 풀고
대출 대신 근저당 승계처리 도와
이번 시작으로 도움 손길 이어가
전세보증금 6천만원에 방 3개, 욕실 2개…. 지난 5월 우청숙(45)씨가 운영하는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 '신세계부동산'에 한 손님이 찾아와 이런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불법 건축물이나 사기 매물이 아니라면 찾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우씨는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 어렵다. (있더라도) 하자가 있거나 불법 건축물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우씨의 솔직한 대답에 손님은 "도와달라"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속칭 '건축왕' 남모(61)씨 피해자였다.
믿을 수 있는 부동산 공인중개사를 찾던 손님은 같은 처지의 전세사기 피해자인 재외동포 고홍남(41)씨의 여섯 식구가 살 집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우씨는 전 재산을 잃고 거리에 나앉게 될 고씨 가족의 딱한 사연을 외면할 수 없었다.
고씨는 목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국토교통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을 받았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전세사기 특별법'을 통한 저금리 주택 구매 은행 대출금이 적었다.
이런저런 방법을 찾다 우씨는 남씨 측과 접촉했다. 남씨의 대리인인 그의 딸에게 고씨가 돌려받아야 할 보증금 5천만원을 제외하고 남씨 소유의 집을 구매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설득했다.
해당 집은 실제 집주인인 남씨와 명의 수탁자(바지 집주인)의 권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집이었다. 이때 우씨의 전문성이 빛을 발했다. 그는 두 사람의 동의서를 받아 해당 계약이 법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했다. 또 대출 대신 집의 근저당을 승계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중개 수수료를 받지 않으려던 우씨는 수수료를 받아달라는 고씨의 간곡한 요청에 법정수수료보다 적은 금액을 받았다고 한다.
고씨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날(10월19일)을 떠올린 우씨는 "이번 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들 때문에 피해자들이 공인중개사를 신뢰하지 못하는데, 피해자가 안전하게 계약하도록 도와 뿌듯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우씨는 고씨를 시작으로 다른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들이 새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우씨는 "주택이 아닌 사무실(근린생활시설)과 불법 증축한 주택에서 산다는 등의 이유로 전세사기 특별법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피해자가 많다"며 "대부분 불법 건축물인지 모르고 계약한 세입자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씨는 최근 불법 건축물에 입주한 세입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인중개사들이 결성한 '전국 소규모주택 정상화 모임'에 가입했다. 이 모임은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안' 시행 등을 정부와 국회에 촉구하고 있다.
그는 전세사기 특별법 보완과 함께 건축물 관련 법령도 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씨는 "피해자들이 경매에 참여해 전셋집을 떠안더라도 불법 건축물 과태료 등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의 주택이 한시적으로 합법 건축물로 승인을 받는 등의 접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