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4)] 이웃과 함께 거리로 나선 박순남 시민활동가
지자체장 등 만나 긴급거처 요구
시민단체서 산재 피해 도운 경험
정부, 사태 확산 뒤늦은 경매유예
"공동주택 대책 특별법 반영돼야"
하루아침에 전셋집에서 내쫓길 처지에 놓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인천시청, 인천시의회, 인천지방법원 등을 찾아가 기자회견을 열고 도움을 요청했다.
시민단체 '인천사람연대' 상임대표 박순남(49)씨도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건축왕' 남모(61)씨의 피해자다. 박씨 역시 여느 피해자와 같이 지난해 6월 받은 우편을 통해 남씨 일당 소유의 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같은 피해를 본 아파트 이웃과 함께 경찰서에 갔을 땐 이미 미추홀구 내 아파트 11곳의 고소장이 접수된 상태였다.
당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집 천장 누수나 기계식 주차장 고장, 쓰레기 방치 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박씨 등 모임을 구성한 일부 피해자는 공동주택 관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미추홀구청 문을 두드렸지만, 무료 법률 상담 외엔 지원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인 간 거래에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경매로 집이 넘어가는 피해자들에겐 하루하루가 급했다"며 "피해자 대표 자격으로 지자체장과 정치인들을 만나 '경매를 멈춰달라' '쫓겨난 사람들의 긴급 거처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해야 했다"고 말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그렇게 지난해 10월 출범했다. 피해자들은 그동안 기자회견이나 집회 등을 해본 적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전면에 나서야 했다. 시민단체 활동가인 박씨는 과거 '건강한 노동 세상' 소속으로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인정받게 도왔던 경험이 있었다.
대책위 부위원장을 맡은 그는 "스스로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산업재해 피해자와 전세사기 피해자는 닮았다"며 "노동자의 산재를 부정하는 기업에 맞서 인과관계를 입증해내는 것처럼 전세사기 피해자도 (건축주나 소유주가) 다수의 임차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짚어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지지부진한 정부 대책에 올해 2월28일 30대 한 피해자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박씨와 함께 대책위 활동을 하던 이웃이었다. 이어 피해자 2명이 더 목숨을 잃자 정부는 그제야 법원에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유예 조치를 했고, 국회와 함께 '전세사기 특별법'을 마련했다.
지난 6월 전세사기 특별법 시행 이후 상담을 받으려 대책위를 찾는 피해자가 많아졌다. 하지만 우선매수권, LH 공공매입 임대, 저리 대출 지원 등 피해자들이 무엇 하나라도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지원책이 없다는 것을 박씨는 체감했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온전히 반영된 특별법이 나와야 한다"는 그는 "경매에서 우선매수권을 써서 낙찰을 받으려다가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공동주택 관리 문제 때문에 우선매수권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가구가 늘었다"며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공동주택 관리 문제에 대한 대책이 특별법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현재 전세사기 특별법 보완 입법을 위한 시민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