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저어새 번식지'에 찾아온 위기
전세계 80% 인천·대부도가 고향
대부분 매립 송도갯벌, 개체 급감
배곧대교 건설로 남동유수지 위협
강화·영종도 서식환경 점점 악화
배출 생활하수 처리기준 없어 몸살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와 남동구 남동국가산업단지, 승기천 하류 사이에 있는 남동유수지에는 매년 봄 어느 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검은색 긴 부리와 하얀 털을 지닌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저어새들이 유수지 내 인공섬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는 모습을 멀리서도 관찰할 수 있다. 저어새는 부리를 좌우로 '저어'서 먹이를 찾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전 세계 저어새 최대 번식지 '인천'
남동유수지에서 멸종위기종 저어새들이 번식을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전 세계 저어새 80% 이상은 인천 갯벌과 안산 대부도 갯벌이 고향이다. 특히 인천은 갯벌이 넓게 형성돼 있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지역이다.
감각이 발달한 부리로 얕은 물을 휘저어 물고기와 새우 등을 먹는 저어새가 번식하기엔 인천이 최적지다. 오늘날 인천은 전 세계 저어새의 최대 번식지로 주목받고 있다.
인천에서 매년 4~7월 번식하는 저어새는 남동유수지를 비롯해 영종도 수하암과 저어도, 강화도 각시암과 끝섬, 연평도 인근 무인도인 구지도, 세어도 인근 매도 등에 머물다 10월 중순이면 월동지인 일본이나 대만, 홍콩으로 날아간다.
■ 송도 갯벌 매립과 배곧대교 건설… 서식지 축소
안타깝게도 저어새들의 '인천 살이'는 매년 어려워지고 있다.
남동유수지 저어새들의 주요 먹이터인 송도갯벌은 상당 부분 매립됐다. 최근에는 인천 신항 인근 송도국제도시 10공구 매립과 워터프런트 공사가 이뤄지면서 저어새 개체 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저어새NGO네트워크'가 모니터링한 결과를 보면 2019년 5천885마리에 달했던 송도갯벌 저어새는 2021년 3천351마리까지 줄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와 경기 시흥시를 잇는 배곧대교 건설사업이 계획돼 있는 것도 저어새들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배곧대교가 건설되면 송도갯벌과 남동유수지를 오가는 저어새들이 먹이잡이에 영향을 받아 개체 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보툴리눔'(botulinum)이란 세균도 저어새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다. 보툴리눔은 여름철 흙 속의 산소 농도가 낮아지고 기온이 오르면 증식해 독소를 내뿜는다. 긴 부리를 물속으로 넣어 먹이를 찾는 저어새가 보툴리눔을 먹고 폐사하는 일이 매년 벌어지고 있다.
■ 육지 생활하수 등 갯벌 오염도 문제
송도갯벌뿐 아니라 강화도 갯벌, 영종도 갯벌도 갈수록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 영종도 갯벌은 인천국제공항 확장과 준설토 투기 등으로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강화도 갯벌은 육지에서 나오는 오염 물질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양환경관리법에는 육상 부문에서 바다나 갯벌로 배출되는 생활하수 등에 대한 처리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강화도가 개발될수록 저어새들의 먹이터인 갯벌 환경은 더욱 나빠지는 것이다.
저어새NGO네트워크 오흥범 모니터링팀장은 "태어나는 저어새의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월동지로 향하는 개체 수는 특별히 증가하지 않고 있다"며 "저어새들이 안정적으로 서식할 여건이 조성돼야 개체 수가 꾸준히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