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빨강·대만 파랑·홍콩 초록… 가락지로 함께 둥지 지킨다

2000년대 초 심포지엄서 부착 제안
보호활동가들 정보공유 분석 계기로
위험요소 제거 등 국제적 협력 온힘
전 세계 6603마리 관찰 '역대 최대'


저어새
한국물새네트워크 상임이사이자 조류연구가인 이기섭 박사(사진 왼쪽)가 올해 5월 인천 남동유수지 인공섬에서 부화한 한 아기 저어새의 다리에 'K63'이란 표식의 가락지를 달아주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저어새에게는 알파벳 'K'와 함께 빨간색으로 제작된 가락지가 부착된다. /저어새 생태학습관 제공


"혹시 렌즈 너머로 보이는 저어새 무리 중 다리에 빨간색 '가락지'(표식)가 있는 저어새를 발견했습니까? 그렇다면 그 저어새는 한국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11월1일 대만 타이난(台南)시 한 저수지에서 망원경으로 저어새를 관찰할 때의 일이다. 이날 동행한 대만야생조류학회(TWBF) 상임이사 필립 쿠오는 기자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하나 해줬다. 저어새 중 몇몇은 다리에 알파벳과 숫자로 구성된 '고유번호'가 적힌 유색 가락지를 달고 있는데, 그 색을 보면 어디서 날아왔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만, 홍콩 등 각국 저어새 보호 활동가들은 2000년대 초반 홍콩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 저어새에 가락지를 부착하는 방안을 생각해냈다.

저어새 개체 수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새에게 표식을 남겨 서식지와 이동 경로 등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분석해 보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가락지 부착 사업이 시작된 2002년부터 우리나라도 '한국물새네트워크' 주도로 저어새에게 가락지를 달아줬다.

한국물새네트워크 상임이사이자 조류연구가인 이기섭 박사는 당시 번식지가 워낙 적고 접근도 어려워 가락지를 부착할 수 있는 저어새가 5마리도 채 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그러던 2009년 인천 남동유수지에서 저어새 번식이 확인되는 등 개체 수와 번식지가 늘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는 50마리까지 가락지를 부착할 여건이 마련됐다고 한다.

최근에는 인천지역 환경단체 활동가와 학생들도 이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일부 저어새에게는 가락지와 함께 위성추적장치(GPS)도 부착하는데, 아직은 무게가 무거워 몸집이 큰 일부 개체에만 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아는 이 역시 그리 많지 않다.

저어새가 태어나는 한국(인천 등)뿐 아니라 월동지인 홍콩·일본·대만도 새끼 저어새 또는 환경단체가 구조한 저어새를 돌려보낼 때 가락지를 달아준다. 각 나라 활동가들은 저어새 가락지에 각기 다른 색과 알파벳을 쓰기로 약속했다.

한국은 빨간색(주황색 포함)과 K, 홍콩은 초록색과 A, 일본은 노란색과 J, 대만은 파란색과 T 등이다. 그 예로 타이난야생조류협회가 구조해 지금은 '타이난의 딸'로 불리며 현지에서 큰 사랑을 받는 저어새 'T69'의 가락지 색은 파란색이다.

우리나라에서 가락지를 부착한 저어새는 700마리 정도 된다. 개체 수가 많아져 E나 Y 등 다른 알파벳도 쓰기 시작했다.

가락지가 있는 저어새를 발견한 각국 활동가들은 대만저어새보전협회나 홍콩탐조단체(HKBWS)가 제작한 홈페이지에서 수시로 정보를 공유한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은 탐조인들이 저어새 가락지를 보면 각국 담당자의 이메일로 정보를 보내도록 안내하고 있다. 한국은 이기섭 박사, 홍콩은 홍콩탐조단체 총감독 유얏퉁 등이 담당하는 식이다.

이들 정보가 모이면 저어새의 이동 경로와 머문 기간은 물론, 저어새가 목숨을 잃었을 경우 그 시기와 장소 등을 토대로 그곳에 어떤 위험 요소가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기섭 박사는 코로나19 확산 전에는 각국 활동가들이 이러한 정보를 공유하고 분석하기 위해 자주 모였다고 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국외 방문이 어려워진 후에는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저어새 서식지 보호, 위험 요소 제거 등을 위해 협력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던 저어새의 개체 수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전 세계에서 관찰된 저어새는 6천603마리로 1년 전보다 441마리 늘어나는 등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기섭 박사는 "전 세계 저어새 개체 중 40% 이상이 가락지를 부착한 상태로 파악하고 있다. 저어새 서식지나 생존율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가락지 관찰 덕분"이라며 "EAAFP 사무국이 인천에 있어서 코로나19 여파가 남았던 작년과 재작년에도 어렵게 각국 관계자들을 초청해 인천에서 심포지엄을 열었다. 오프라인 교류가 다시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멸종위기 '저어새'와 공존 꿈꾸는 동아시아] 저어새를 지키는 대만·홍콩·일본 활동가들)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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