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공존'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험지 마다 안해 차 긁힌 흔적 가득
"염전·양식장 보호구역 지정 노력"
겨울 개체수 조사, 먹이터 유지
"새와 사람의 공간 구분, 존중을"
활동가 단체 꾸려 주민·학교 교육
"지자체·정부의 무관심 안타까워"
인천에서 나고 자란 저어새들이 무사히 겨울을 보내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려면 해외 월동지의 서식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천 등지에서 저어새를 연구하는 '한국물새네트워크' 상임이사이자 조류 연구가인 이기섭 박사는 대만과 홍콩 등 각국 저어새 보호 활동가들과 교류하고 있다.
이기섭 박사는 "저어새라는 하나의 관심사를 가진 각 나라의 활동가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월동지에서 저어새들이 안전하고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힘쓰는 이들을 소개한다.
■ 거친 수풀 마다않는 저어새 전문가
대만야생조류학회(TWBF) 상임이사 필립 쿠오는 매일 대만 남부지역 저어새 서식지를 찾아다니며 그곳에 머무는 이유를 분석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길이 나지 않은 수풀이라도 저어새가 있을 만한 곳이라면 최대한 근처까지 접근한 뒤 망원경 렌즈를 당겨본다. 그래서 그의 차량은 깨끗한 날이 없고 나뭇가지 등에 긁힌 흔적이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저어새가 대만에서 편하게 머물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그는 언제부턴가 서식지가 아니었던 지역에 저어새가 날아들면,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주변 환경부터 살핀다. 그리고 저어새가 선호하는 장소로 확인되면, 해당 지역이 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되도록 정부에 건의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타이난이나 가오슝에는 저어새가 서식할 만한 염전과 양식장이 많아요. 이런 곳들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쩡원(贈文)강 동쪽부터 태양광 패널 설치가 시작됐는데, 서쪽에는 설치하지 못하게 막고 있어요. 대만은 내륙보다 해안가의 산업화가 더딘데, 정부에 '꼭 지켜야 할 새들의 공간(IBA, Important Birds' Area)' 명단을 작성해 전달하는 등 서식지를 최대한 지키려고 합니다."
■ 최대 목표는 저어새만의 공간 지키기
홍콩탐조단체(HKBWS) 총감독 유얏퉁은 마이포 습지 등 홍콩에서 겨울을 나려는 저어새들의 개체 수를 조사하고, 최근 줄어드는 서식지와 먹이터를 유지하거나 확대할 방안을 찾는 일에 몰두한다.
전 세계 저어새 개체 수는 동아시아 활동가들의 보호활동으로 조금씩 느는 추세지만, 마이포 습지를 찾는 저어새는 줄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습지가 점점 마르고 맹그로브 나무가 급격히 자라고 있는 게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유얏퉁 감독은 "저어새와 사람의 공간이 분명하게 구분돼 서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년 전 마이포 습지 인근에 대규모 주거시설이 들어섰는데, 마이포 습지와 갯벌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다고 한다. 이 역시 저어새 생태계를 위협하는 요소인 만큼 유얏퉁 감독은 "시민과 관련단체, 정부 간 공감대부터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식지를 보전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현명한 계획을 세워야 해요. 환경단체들의 노력에 더해 정부까지 나서준다면 저어새 보호와 관리를 위한 인력·재정 확보, 저어새 관련 국가 간 협력 등에 훨씬 탄력이 붙을 거예요."
■ 정부 지원 없어도 저어새 사랑
일본 저어새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인 마츠모토 사토루는 이 단체의 2002년 창립 멤버다.
직업이 디자이너인 그는 후쿠오카 하카타만 갯벌을 매립하는 '아일랜드시티 조성사업'에 대한 반대 운동을 하다가 저어새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일본에서 저어새 보호 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받는 지원이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던 일본 저어새네트워크 활동가 20여 명은 자비를 들여 저어새를 조사하고, 서식지 인근 주민이나 초등학생 등을 위한 생태교육을 하고 있다. 저어새 둥지 재료를 공급하거나 서식지 주변을 청소하는 일도 모두 스스로 해낸다.
"한국, 대만, 홍콩은 그나마 정부나 지자체가 저어새에 관심이 있지만, 후쿠오카시나 일본 정부는 무관심해요. 여건이 어려운 탓에 생태교육마저도 정기적으로 하기 힘든 실정이에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후쿠오카·타이난·위안랑/김주엽·김희연기자 kjy8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