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3)] 상처 보듬는 '인천 미추홀구 정신건강복지센터'
간호사·사회복지사 등 24명 상담사
피해 가구 전체 우편·400명에 전화
다수 외부 노출 꺼려 조용히 진행
하루아침에 전세보증금을 잃었다는 충격에 청년들은 삶을 포기하고 잇따라 세상을 등졌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를 벌인 속칭 '건축왕' 남모(61)씨 사건에 연루된 피해자는 확인된 것만 530여 가구에 달한다.
'인천 미추홀구 정신건강복지센터'(이하 센터)는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기 위해 어떻게든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자 했다. 센터에는 전문 교육을 받은 간호사, 사회복지사, 작업치료사 등 24명의 상담사가 있다.
올해 2월 28일 전세사기 피해자 30대 남성이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 4월 14일과 17일 20~30대 청년 2명이 생활고 등에 시달리다 끝내 세상을 등졌다.
부센터장인 간호사 박수미(46)씨는 "첫 번째 사망자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줄 몰랐다"며 "불과 사흘 사이에 두 명의 청년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긴급 지원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잇따른 비보에 센터 직원들은 서둘러 피해자들을 만나기로 했다. 처음에는 연락할 방법이 없어 인천미추홀경찰서 정보과 도움을 받았다. 경찰 도움으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접촉한 센터는 도움을 주고 싶다며 각종 지원 방안을 안내했다.
당시 대책위는 조심스럽게 "조용히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박씨는 "전세사기 피해자 대부분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를 꺼렸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센터의 상담 활동이 지역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다.
센터는 전체 피해 가구에 우편을 발송했다. 우편물에는 온라인으로 5분 정도 소요되는 자가 심리검사 링크와 센터의 연락처 등이 담겼다.
센터는 이 검사에서 우울감 등이 높게 측정된 피해자 400여 명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진행했다. 센터 직원들은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언론 보도 등을 보며 전세사기 사건을 공부했다.
센터는 알코올 의존, 불면증 등 상태가 심각한 피해자들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치료비도 지원했다. 박씨는 "대책위에서 이웃을 지키기 위해 먼저 상담을 받아본 후 자체적으로 홍보에 나서줬다"며 "최근 정신건강의학과 대기자가 많은데, 인천사랑병원에서 피해자를 배려해 우선적으로 상담받을 수 있도록 협조해줬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지난 5월부터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되고 정부의 대책이 하나둘씩 나오면서 센터를 찾는 피해자들의 상담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센터는 피해 회복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만큼 언제든 다시 피해자들을 도울 준비를 하고 있다.
박씨는 "전세사기 피해자 대부분은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다. '나 때문에 가족이 피해를 입은 것 아니냐'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며 "절대 피해자들 탓이 아니다. 부디 홀로 싸운다고 생각하지 말고 도움받을 곳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세사기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시민들도 피해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시고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
※ 인천미추홀구정신건강복지센터(032-421-4045~7), 24시간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0),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보건복지콜센터(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