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5)] 이웃 호소 담긴 현수막 제작 서영섭씨
미추홀구 숭의동 한 아파트 구석구석
서씨가 제작한 현수막·포스터들
경매 늦춰보고자 제작하기 시작
이웃들 비용 함께 부담 손 내밀어
힘들었던 정신건강 작업 통해 위안도
"우리 함께 이겨냅시다" 말하고파
"우리 함께 이겨냅시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한 아파트 입구에는 '미추홀구 전세사기 건축왕의 소유 건물' '승강기 수리, 주차타워 수리 모든 것을 임차인들의 사비로 해결하는 중입니다' 등이 쓰여 있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속칭 '건축왕' 남모(61)씨로부터 보증금을 떼인 채 쫓겨날 처지에 놓인 피해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건 현수막이다. 이런 현수막을 비롯해 엘리베이터 내부, 가구별 문 앞에 붙어있는 포스터에 이르기까지 서영섭(40)씨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서씨 역시 전세사기 피해자다. 지난해 2월 서씨가 사는 아파트 전체 60가구에 대한 경매가 한꺼번에 시작되면서 경매에 참여하려는 이들이 불쑥 찾아오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서씨와 이웃들은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현수막을 제작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전셋집들의 경매를 조금이라도 늦춰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담겼다.
직장에서 인쇄물 편집 디자인 업무 등을 하는 서씨는 사비로 첫 현수막을 제작했다. 이를 안쓰러워한 이웃들이 그에게 고마워하며 비용을 함께 부담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서씨는 "이웃들 사이에 단합이 잘돼 현수막을 모든 가구의 베란다에 걸고, 건물 입구에도 부착할 수 있었다"며 "현수막이 떨어졌거나 훼손되면 알려주고 같이 수리를 도와주려는 이웃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세입자 입장에선 건물에 작은 흠집이라도 날까봐 현수막을 내거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유리문엔 자국 없이 탈부착하도록, 벽면에는 줄로 묶는 방식을 택했다"고 했다.
서씨는 같은 처지의 이웃들과 함께하면서 큰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이전엔 마주쳐도 인사조차 어색했던 이들과 이제는 둘도 없는 진짜 이웃사촌이 됐다.
그는 "피해 사실을 알고 난 뒤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에 들 정도로 정신건강이 무너지고 술에 의지하는 일도 늘었지만, 현수막 작업을 하면서 이웃과 가까워졌고 위안을 얻었다"며 "이웃들에게 '우리 함께 이겨냅시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