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속빈 전세들의 경고·(4)] 임대인도 전세사기 피해자?
HUG 보증금 상한 150%→126% 변경에 가입불가 사례 늘어
주거비 부담 상승 결과… "사기치는 것 아니냐" 오해 받기도
"합리적 산정기준 마련 시급"… 임차인까지 악영향 차단 필요
"안 그래도 사기범으로 오해받는데 정부 때문에 진짜 사기범 될 판입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연례행사처럼 나타나는 대규모 '전세사기'나 '전세피해'에 정부가 여러 정책으로 맞서고 있지만 정작 임차인은 물론 임대인들마저 불만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피해 지원을 위해 쏟아지는 정책들이 오히려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 악영향을 주는 측면도 적지 않다는 아우성이다.
■ 한 전셋집 두 기준… 격차만 3천700만원?
경인일보 특별취재팀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경기도 내에서 50채 이상 다주택자의 주택이면서 전세가율도 100%를 넘긴(2021~2022년 기준) 주택들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는 등 '전세피해 우려'가 있는 사례들을 취재했다.
그러면서 임차인 피해뿐 아니라 '다수의 무고한 임대인'의 입장도 충분히 듣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이들은 '소수의 전세 사기 임대인' 때문에 억울한 것도 물론이지만 피해 지원에만 "불합리하게" 치중하는 정부에 대한 원망을 더 크게 표출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게 '불합리한 비아파트(연립·다세대 및 오피스텔) 주택가격 선정'이다. 전세보증금을 지켜주는 대표적 제도인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하 보증보험)을 정부가 손보면서 임대인은 물론 임차인에게까지 직간접적 피해를 안기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평택시 장당동의 한 다세대주택(전용면적 18㎡, 2018년 10월 준공)의 경우 정부 공시가격은 4천500만원인데 KB부동산의 평균 시세는 8천200만원이다. 격차만 3천700만원이다. 큰 격차가 무슨 상관이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여기에 전세로 들어오려는 임차인은 이로 인해 보증보험에도 못 들고 원치 않는 월세 계약으로 전환해 방을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까지 생긴다.
잇따르는 전세 사기·피해사건에 따라 지난 5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임차인의 보증보험 가입 요건 중 '보증금 상한' 부분을 공시가격의 150%에서 126%로 낮춘 게 발단이다.
좁아진 전세가와 매매가의 '갭(gap·차이)'을 벌려 보증금 반환 안전성을 높이겠다(지난 6월 원희룡 국토부장관)는 건데, 이미 부동산 시세와 정부 공시가격 간 적지 않은 갭을 더 벌리는 격이 되면서 현장의 임대인과 임차인들만 부담을 떠안게 된 셈이다.
해당 기준을 위 다세대주택에 적용하면 5천670만원 이상의 보증금으로 전세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은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뜻인데, 이 주택의 현재 전세가 시세는 민간제공 시세에 가까운 최소 8천만원대에 형성돼 있다.
보증보험 가입 요건에 맞추려면 전세가를 수천만 원 내리지 않는 한 임대인이 월세나 반전세로 돌릴 가능성이 큰데 그러면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이 커진다.
■ 합리적 비아파트 가격 기준… "해묵은 공시가"
임대인 업계는 '비아파트 주택가격에 대한 (보증보험 요건 관련) 합리적 산정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과도한 부동산 시세와 공시가격 간 격차 때문에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안내하면 임차인들로부터 "혹시 전세 사기 치는 것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는다고 한다.
정부도 이에 공감해 지난 2021년 개선 조치에 나선 바 있으나 결국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또다시 늘리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자신을 공공기관에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다주택(소급적용 대상자 포함)자에게 보증보험 가입 의무를 부여하기 시작한 지난 2021년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단독주택의 경우 55.9%였는데, 올해 53.6%로 내려갔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공시가격에 부동산 시장 시세가 얼마나 반영되는지 비율로 나타낸 수치이며 국토교통부가 매년 발표한다.
임대인들은 이미 정부가 일부 활용한 적 있는 '프롭테크(Proptech)' 업체들의 정보를 공시가격 산정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프롭테크는 'Property(부동산)'와 'Technology(기술)'을 합친 말로, 부동산 산업에 빅데이터나 인공지능(AI) 및 블록체인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다.
정부는 지난 2019년 연립·다세대 및 오피스텔처럼 매매시세 정보가 부족한 비아파트의 주택가격 산정을 위한 혁신 금융서비스를 위해 일부 프롭테크 업체의 정보를 활용했었다.
이에 비아파트에 대한 합리적 주택가격 산정으로 임대인은 물론 임차인에게까지 돌아갈 수 있는 악영향을 차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객관적 시세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주택 유형에 대해 공신력 있는 시세 정보인 공시가격을 보완적으로 적용하는 건 불가피하다"면서도 "시세를 보다 유기적으로 반영하는 보완책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 회장은 "전세 사기를 방지하는 걸 목표로 한 보증보험 요건 강화가 역설적으로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키우고 있다"며 "비아파트 시장 혼란을 해소하고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의 신뢰와 주거안정을 회복하기 위해선 오랜 기간 해묵은 공시가격을 버리는 것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준석·김산·한규준·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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