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9)] 포항에서 위로의 마음 전한 허태성씨
신발 200켤레·햇감자 한 박스
현금 5만원까지… 편지와 동봉
안타까움에 손길 보태려 연락
정부·국회 적극적 조치 바람도
지난 5월 안상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위원장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미추홀구에서 수백억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속칭 '건축왕' 남모(61)씨의 피해자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지면서 대책위가 큰 슬픔에 빠져 있을 때다.
'다들 힘드시죠. 어려운 상황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길 기도 드립니다. 피해자들께서 더 이상 극단적 선택으로 뉴스에 슬픈 소식이 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웃음꽃이 충만하리라 믿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마세요'.
편지를 보낸 '포항의 소인'은 신발 200켤레와 햇감자 한 박스, 현금 5만원도 함께 보내면서 "많은 것을 보내지 못해 죄송하다"고 되레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경북 포항에서 신발 도매업을 하는 허태성(68)씨는 인천 미추홀구를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고, 어느 피해자들과도 일면식이 없는 사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멀리서나마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허씨는 무작정 미추홀구청에 연락해 대책위와 소통할 방안을 물었다.
허씨는 "인천은 여행을 몇 번 가봤지만, 미추홀구라는 동네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며 "피해자들이 뉴스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사연을 처음 접했다. 구청 도움으로 연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돕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던 허씨는 고민 끝에 신발과 함께 포항의 햇감자를 보내기로 했다. 허씨는 "피해자가 수백여명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이즈를 다양하게 해서 보냈다"며 "봄에 먹어본 햇감자가 맛있어 대책위에 물값(현금) 조금과 함께 감자를 보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는 어려웠던 청년 시절이 떠올라 미추홀구 피해자들을 돕게 됐다고 한다. 충남 논산에서 서울로 가서 반지하, 쪽방 등을 전전했던 서러운 날들을 다른 이웃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는 미추홀구 피해자들을 돕기 전에도 지역사회에 신발 등을 기부해왔다. 허씨는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 중에서도 특히 젊은 청년들 피해가 컸다"며 "세상을 등지기까지 하니 지켜만 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에 나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보며 정부와 국회 등이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허씨는 "전세사기와 관련한 정부 대책을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피해자들이 거리로 나와 목이 터져라 도와달라고 외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좋은 길을 갈 수 있게 사회가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허씨는 피해자들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 달라고 경인일보에 당부했다.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 너무 미안합니다. 그런데도 도움이 됐다고 말씀해주니 참 고맙습니다. 힘내시고,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길 바랍니다."
허씨는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데 피해자들이 차가운 방에서 지내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며 "기회가 된다면 따뜻한 실내화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