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한 전세사기 피해 시선… '남의 절망' 앞에 '작은 희망' 건네다
지역사회 냉담한 시선과 대조적
'평범한 사람들의 손길' 돋보여
여야 약속 보완 입법 감감무소식
인천시·의회 지원조례도 미제정
"별로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어요. 피해자들이 앞장섰기에 가능했던 일들입니다."
경인일보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을 차례로 만났다. 절망 속에 빠진 이들과 함께하고자 발 벗고 나선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인천 미추홀구 등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속칭 '건축왕' 남모(61)씨 사건의 피해자들은 지난겨울 스스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러나 전셋집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날 처지에 놓인 이웃들을 향한 지역사회의 시선은 냉담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의 손길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던 이유다.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피해자들의 곁을 지켰다. 상담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거나, 생업을 제쳐 두고 앞장서 새 거처를 찾아봐주기도 했다. 저 멀리 포항에선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들에게 신발 수백 켤레를 보낸 이도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는 한 게 별로 없다"며 피해자들을 치켜세웠다. 간절한 그들의 외침에 작은 목소리를 더한 것뿐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일부 청년 피해자들이 세상을 등졌다는 비보가 지역사회에 전해지기도 했다. 벼랑 끝에 선 다른 피해자들은 이웃들의 따뜻한 위로에 다시 힘을 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그리고 곁을 지켜준 이웃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닿아 올해 5월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피해자를 위한 구제 방안도 하나둘 시행됐다.
피해자들은 자기 일이 아닌데도 묵묵히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건축왕 사건 피해자 조현기(45)씨는 "관공서, 은행 등에서 '안 된다'는 답변만 들었을 땐 누구한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참 막막했다"며 "주변의 도움 덕분에 좌절감에 익숙해지지 않고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 김병렬(44)씨는 "지금도 경매에서 낙찰돼 쫓겨나는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들이 생겨나고, 강풍에 외벽 자재가 떨어지는가 하면 관리업체로부터 단전·단수하겠다는 경고를 받기도 한다"며 "피해자들에겐 여전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들에게 관심과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외침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했다. 여야가 약속했던 전세사기 특별법 보완 입법은 소식이 없고, 인천은 미추홀구 등 전세사기 피해가 많은 지역인데도 정작 인천시와 인천시의회는 아직 관련 지원 조례조차 제정하지 않았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위원장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버티면서 피해자들은 지금도 많이 힘들고 쓸쓸하다"며 "대책을 촉구하려고 시청 등을 방문하면 직원들이 안 좋은 시선을 보낼 정도로 여전히 피해자들이 맞는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전세사기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사기꾼들에 의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세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서 발생한 사회적 재난"이라며 "피해자들을 따뜻한 시각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인일보는 다가올 새해에도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이들을 돕는 이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또 현행 특별법과 피해자 구제 방안 등에 사각지대는 없는지 살펴 나가려고 한다. 늘 그러했듯 위기 속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지역 공동체'의 따스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계속 전할 것이다.
/변민철·백효은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