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기억법] 특수교실에 빌런은 없다
용인 특수교사 아동학대 재판
법원서 혐의 인정돼 직위해제
교사 교체로 장애아동들 피해
학부모들은 신고한 부모 원망
2023년 7월13일 수원지방법원 403호. 특수교사 혜정(가명)씨가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되고 첫 증인신문 기일이었다. 이땐 세간에 이른바 '주호민 자녀(민수·가명) 사건'이 알려지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방청석이 가득 찼다. 대부분 민수와 같은 반 장애아동 부모들, 그리고 혜정씨 지인들이다. 혜정씨는 피고인석에 앉았다. 이윽고 민수 엄마가 증인석에 등장했다. 청중은 웅성였다.
판사는 덤덤히 신문을 이어갔다. 주고받는 질문과 답을 들으며 곳곳서 짜증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1시간30분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다. 신문이 끝나고 하나둘씩 방청석을 떠나며 민수엄마를 향해 말했다. "아이고 참, 저렇게 착한 선생님이 학대는 무슨", "정말 낯짝도 두껍네 두꺼워".
12월18일 수원지방법원 403호. 마지막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사건이 기사화되고 논란이 컸던 터라 구름 청중이 몰렸다. 일부 청중은 법정 벽면에 찰싹 붙어 참관해야 할 정도였다. 이번 재판에도 같은반 장애아동 학부모들이 왔다. 그리고 장애인 부모단체와 교사노동조합 관계자들도 모였다.
"당시 교사 발언이 아이 정서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했습니다." 용인시 아동학대 담당 공무원이 증언하자 방청석에서는 흐느낌과 헛웃음이 섞여나왔다. 혜정씨 변호사가 아동학대가 아님을 강조하자 일부에서 "그게 왜 아동학대가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다 제지를 받기도 했다. 재판이 끝나고, 한데 모였던 청중은 정확히 두 방향으로 갈라졌고 각각 반대쪽 출구로 향했다.
수사·사법기관으로 넘어간 민수 부모와 혜정씨의 갈등은 학부모 간의 갈등으로 번졌고, 기사화된 후 학부모 대 특수교사의 갈등으로 확전됐다. 비슷한 어려움을 공감하며, 동지처럼 손잡았던 이들은 왜 서로를 찌르는 싸움을 시작했을까. 아동학대 신고 이후의 용인 A 초등학교로 다시 돌아간다.
2022년 9월 학대 신고 이후 두달 뒤 혜정씨는 첫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12월 정서적 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검찰은 혐의점이 있다고 판단, 같은달 27일 법원에 공소장을 접수했다. 정식 재판에 넘겨진 혜정씨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지난해 1월 경기도교육청의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학대 신고 이후 혜정씨는 심리적 불안이 커져 병가로 휴직했다. A초 특수반은 유일한 특수교사였던 혜정씨 부재 이후 3번의 학기가 흐르는 동안 정교사를 배정받지 못했고 계약직 교사로만 충원됐다.
취재를 종합해보면 혜정씨가 휴직한 후 A초에 배정된 특수교사는 1년4개월 동안 '7명'이 거쳐 갔다. 교사 1명당 2.2개월씩 근무한 셈이다. 이마저도 2022년 2학기 동안 혜정씨 휴직 직후 이후 5명이, 지난해 1·2학기에는 각각 다른 기간제 교사가 특수반을 맡았다.
기간제 교사도 1년 이상 연속적으로 업무를 맡을 수 있지만, 중도에 갑자기 투입돼 장애아동과 관계를 맺는 것도 쉽지 않았고 교내외의 어수선한 상황들에 부담을 느껴 퇴직이 이어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반복된 교사 교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장애아동에게 돌아갔다.
특수반 부모들은 심하게 동요했다. 지난 2020년 혜정씨는 특수교실조차 없던 A초교에 발령 받아 직접 특수반 설립을 주도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특수반 부모들과 긴밀하게 소통했고, 누구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교사였다. 하루 아침에 귀인을 잃을 위기에 처한 부모들은 민수 부모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갈등이 번지게 된 배경에 학교관리자와 교육청의 방관, 교육당국의 시스템 부재가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 수도 없었고 알았다손 치더라도 늘 약자였던 부모들은 민수부모를 원망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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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김산·이영선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