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기억법] 특수교실에 빌런은 없다


초교 인사업무 뒷짐지던 도교육청
사건 최초보도 5일만에 입장 발표
"교사 복직" 녹음 불법성 앞세우고
정작 시스템 개선 외면… 무책임


전쟁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동지와 싸우는 '내전'이 더 잔인하다. 장애아동 부모들은 특수교사를 사이에 두고 부모들이 서로 반목하는 상황이 적잖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학교의 환경, 교사의 처우가 제각각인 특수교육 현실에서 혜정씨처럼 협력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특수교사를 찾는 것은 '로또 당첨'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지적장애 3급인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한 부모는 "특수교사가 아이들에게 폭언·폭행을 일삼아 온 사실을 동료 교사의 폭로로 알게 됐고 결국 아동학대로 고소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일부 부모들은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교사를 도왔다"며 "오죽하면 부모들끼리 그러겠는가. 특수교사 한명 한명이 귀해서 부모마다 입장이 달라지는 게 큰 틀에서는 이해가 된다"고 토로했다.

■ 방치된 교실, 중재 없는 다툼…남은 건 혐오 뿐


사실, 원인은 교육당국의 무책임에 있다. 정교사 혜정씨의 빈 자리는, 장기간 안정적으로 맡을 수 있는 정교사인 특수교사가 충원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조치였다. 그러나 장기 휴직이었던 2022년 2학기와 직위해제 상태였던 2023년 1학기는 혜정씨가 정원에 포함된 상태였기에 다른 정규교사가 임용될 수 없었다.

때문에 A초교와 용인교육지원청은 기간제 교사 채용을 통한 충원이 절차상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용인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제도적 배경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조치하려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때까지도 경기도교육청은 일선 초교 인사업무는 관할 교육지원청 소관이라는 이유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이런 가운데 소송전이 일부 매체 보도로 대중에 알려졌다. 여론이 크게 끓어올랐다. 2년 가까이 잠자코 있던 도교육청은 사건 최초보도 이후 5일 만에 전격 입장을 발표했다.

"직위 해제된 경기도 한 초등학교 특수교육 선생님을 내일(8월 1일) 자로 복직시키기로 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경기도교육청 특수교육 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선생님들이 더 이상 혼자 대응하지 않도록 교육청이 기관 차원에서 대응하겠습니다.(임태희 경기도교육감 SNS 中)"

형사고소 이후 10개월여 지난 시점에 도교육청의 첫 공식 개입은 혜정씨의 전격적인 복직이었다. 교권보호의 관점에서 복직결정은 충분히 환영받을만하다. '특수교육 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걱정도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정작 시스템이 붕괴된 A초교 특수교육 시스템에 대해선 언급도 없고 달라진 것이 없다.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 혜정씨가 곧바로 교실로 돌아오기 어려웠고 어쩔 수 없이 휴직할 수밖에 없었다. 세간에 시끄럽게 사건이 알려진 후에도 혜정씨 없는 A초 특수반은 2023년 2학기 새로운 기간제교사 체제로 운영됐다. 결국 특수반 아동이 처한 상황은 변함 없었다.

■ 교실 안 녹음, 새로운 갈등의 불씨될까


대신 도교육청은 보다 쉬운 길을 택한 듯했다. 민수 부모와 혜정씨의 내전에 '불법 녹음 규탄'이라는 키워드로 연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건 초기, 중재 책임이 있었던 학교 관리자의 방치, 장애아동과 부모에 상처만을 남겼던 학교폭력 사안 처리 경과, 아동학대 신고를 부추겼던 교육당국의 안내, 부모 간 내분을 야기한 특수반 상황을 두고도 자기성찰과 개선의 의지는 언급된 바 없다.

이에 대해 묻자 도교육청 특수교육과 관계자는 "교육청 차원에서도 열악한 특수교육 시스템의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재판 진행 상황과 별개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특수교육 현장을 보완할 대책과 3개년 계획 등을 마련해 지난해 말부터 발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들의기억법-특수교육에빌런은없다 큐알코드
기사 전문 온라인
2024년 2월. 정기인사로 올해 1학기부터 A초에는 정교사인 새로운 특수교사가 배치된다. A초를 떠나게 된 혜정씨와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민수와 민수부모. 교실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1심 결과에 항소했고, '녹음의 불법성'을 주요 쟁점 삼아 법정에서 다툼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학교현장에선 교실 안의 녹음을 용인할 때 교실은 어떤 미래를 맞을지 고민과 걱정이 많다. 그래서 서로 깨지고 아프더라도 반드시 치열하게 다퉈야 할 쟁점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녹음기를 넣지 않아도 되는 교실을 만드는 일은 왜 고민하지 않을까. 이들의 내전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일까.

/공지영·김산·이영선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