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번식장과 경매장에서 왔습니다] 반려견 전성시대의 그늘·(上)
한국형 루시법 경매장 퇴출 요인
복잡한 이해관계 얽힌 유통 원인
관련 종사자들 "입법 살인" 반발
하얀 털에 마치 안경을 쓴듯 옅은 갈색 털이 섞인 귀여운 외모, 커다란 눈망울이 자랑인 시추를 두 손으로 안아 들었다. "강아지를 안은 게 맞나?" 싶을만큼 가볍다. 등 길이가 겨우 손 한 뼘 정도에 불과한 이 시추의 무게는 고작 3㎏대. 작은 몸집으로 '콩시추'로 불린다.
콩시추 '브린이'에게 입혀 놓은 옷은 가녀린 몸집 때문에 엄마 것을 입혀 놓은 어린아이처럼 헐렁했다. 다섯 살로 추정되는 브린이는 임신하고 낳고 임신하고 낳기를 반복했다.
번식장에서 태어난 브린이의 새끼들은 경매장에서 비싼 값을 매겨 사회로 보내졌다. 브린이 새끼들은 안경이나 휴대전화에 빗대어 촬영됐고, 사진에는 '작은 사이즈'를 강조하는 홍보 문구가 반드시 실렸다. 귀여운 반려동물이 우리 곁으로 오기까지 이곳, 번식장과 경매장에선 비윤리적인 '생산'과 판매가 이뤄진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 1천500만 시대, 가장 많은 반려견이 태어나는 경기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상황을 따라가 본다. → 표 참조·편집자 주
지난달 23일, '한국형 루시법' 토론회가 열린 서울시 마포구에선 때아닌 추격전이 벌어졌다.
루시법은 영국의 한 강아지 공장에서 착취당한 동물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법으로 6개월령 미만 동물 판매 금지 및 직접 거래 강제를 골자로 한다. 동물권행동 카라를 주축으로 토론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반려동물 산업단체 소속 회원 200명이 건물 앞으로 모여들었다.
소요를 우려한 토론회 주최 측은 인근 호텔로 장소를 바꿔 토론회를 열었지만, 현장에서도 동물단체-반려산업인 사이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한국형 루시법'에 담긴 '경매장 퇴출'에 큰 이견이 도출됐다. 반려산업 종사자들은 한국형 루시법을 '입법 살인'이라 부른다. 법이 시행돼 경매업이 퇴출된다면 직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동물생산업자와 '펫숍'으로 불리는 동물판매업자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온다는 의미다.
반면 동물단체는 번식업 금지가 아니라 자격을 갖춘 사람만 번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순기능을 강조한다. 한국형 루시법에 나뉜 양갈래 반응은 반려산업의 시작이자 기초라 할 수 있는 번식업 개선이 간단치 않은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반려산업의 유통구조에는 동물생산업자, 경매업자, 판매업자가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번식장-경매장-판매장으로 이어지는 유통구조는 이미 고착돼 자칫 나사 하나만 빼도 일부 종사자가 큰 경제적 타격을 입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무려 1천500만명에 이를 때까지 그늘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동물생산업장, 경매업장이 가장 많아 이러한 그늘이 가장 짙게 드리워있다.
→ 관련기사 (돈의 논리로 공산품 찍듯… 비윤리적 행태, 뒷짐진 국가·지자체)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