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


학교·출퇴근 근접성 매력적인 조건들
전재산 잃고 새출발 여력 없어 골머리

전세사기 거미줄

법정에서 '건축왕' 남헌기(62) 일당 재판을 지켜보던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2단지 주민 호준(43·가명)의 입술이 바짝 말라갔다. 그의 가방엔 다시 시작된 경매를 미뤄달라는 탄원서가 들어 있었다. 재판이 끝나면 곧바로 법원 경매계에 낼 생각이었다.

'징역 4년'. 이는 호준을 속여 전세 계약을 했던 속칭 '바지' 집주인에게 내려진 형벌이다.

"애가 곧 100일인데 열흘만 시간을 주세요." 호준은 전 재산은 물론 삶의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간 가짜 집주인이 재판장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보니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전세사기로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이혼했다는 분도 있다는데….
- 호준
호준은 행복마을로 처음 이사 온 날을 떠올렸다. 10년 전 작은 원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호준 부부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차곡차곡 모은 돈을 보증금에 보태며 조금씩 집을 넓혀가는 게 부부의 행복이었다.

희소병을 앓는 아내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큰 병원이 근처에 있는 집. 부부의 종잣돈 7천만원 정도로 구할 수 있는 집. 그렇게 부부는 2017년 행복마을 2단지에 전셋집을 마련했다. 행복마을이 부부의 종착지는 아니었다. 아내의 건강이 회복되면 아이를 낳고 큰 집으로 이사할 계획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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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마을에선 수도권인데도 보증금이 1억원을 넘지 않는 아파트 전셋집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에서도 행복마을 아파트와 빌라 등은 인기였다. 직장이 서울에 있더라도 충분히 출퇴근이 가능한 위치다. 주변에 아이를 보낼 학교도 많다. 지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건물이 깔끔하고 주차 공간도 넉넉한 편이다. 엘리베이터가 있어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이 살기도 좋다. 

조건을 맞추다 보니 오게 된 거예요
'거미줄'에 걸린 거죠

호준은 그런 행복마을이 못된 사기꾼들이 쳐 놓은 거미줄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주민들은 은행에서 대출받아 마련한 전세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집에서 내쫓길 처지다.

전 재산을 잃어 다른 곳에서 새 출발을 할 여력도 없거니와 이를 악물고 행복마을을 떠날 작정을 해도 쉽게 떠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사를 가면 아이 학교를 옮겨야 한다. 어린 자녀에게까지 전세사기 피해의 짐을 나눌 수 없다. 인천에 터를 잡으려고 행복마을에 입주하며 직장을 새로 구한 주민도 적지 않다.

거미줄에 걸린 행복마을 주민들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지쳐가고 있다. 경매 유예는 이들에겐 '생명줄'과도 같다.

호준이 상념에 잠긴 사이 재판은 끝이 났다. 나이 마흔이 훌쩍 넘은 그는 예전에 기자에게 아내를 닮은 예쁜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었다. "이런 상황에 아이를 어떻게 낳겠어요…." 호준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 법정을 빠져나온 호준은 법원 1층 경매계로 향했다. '한 번 더 경매를 미뤄달라'는 탄원서를 손에 꼭 쥔 채.

/기획취재팀


→8편에서 계속 (세입자 등치는 세상… 희망은 등지지 않는다)


※기획취재팀=변민철·백효은기자(인천본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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