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下)] 미완의 이야기
경매에 넘어간 집 호수가 호칭으로
'201호' 건축왕 피해자중 첫 희생자
그가 간뒤 주민간 이름 부르기 시작
1주기 추모제 "당신을 잊지 않겠다"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주민들이 8단지 201호에 살던 세입자 요셉(38·가명)을 부르던 이름은 '201호'였다.
벼랑 끝에 선 주민들은 굳이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경매에 넘어간 '집'이 자연스레 자신들의 이름이 됐던 것이다.
주민들이 실제 이름을 서로 부르기 시작한 건 2023년 봄이 찾아오고서부터다.
앞서 그해 2월 요셉이 세상을 등졌다. '건축왕' 남헌기(62) 일당의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첫 번째 희생자가 바로 그였다.
한 주민이 끝내 삶의 끈을 놓았다는 비보가 행복마을에 전해졌다. 수소문해 인천 미추홀구 한 영안실로 이웃 주민들이 달려갔다. 하지만 영안실 모니터에 보이는 고인들의 이름을 보고도 숨진 이웃이 누구인지 주민들은 몰랐다. 영안실 직원한테 묻고 나서야 고인이 '8단지 201호'이고, 그의 이름이 요셉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괴로워하던 요셉의 얼굴이 떠올랐다.
요셉은 2021년 10월 행복마을로 이사왔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왕래하는 이웃이 적었다. 이듬해 가을 어느 날 요셉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법원의 통지서였다.
요셉은 이웃 주민들과 대책회의를 하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에다가 오랜 기간 연락이 끊겼던 부모에게 손을 벌려 겨우 마련한 전세보증금 7천만원은 요셉의 전 재산이었다. 답답한 심정에 임대인에게 연락해 윽박도 질러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요셉은 숨지기 20일 전에 국회에서 열린 '미추홀구 깡통전세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토론회'에 참석했다. 주민들은 국회가 나서니 곧 해결책이 나오리라 굳게 믿었다. 조금만 더 버티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하지만 요셉에겐 그 조금의 시간도 이겨내기 벅찼다. 너무 지쳤던 탓일까. 요셉은 토론회가 열린 지 불과 20일 만인 2023년 2월28일 세상을 등졌다.
요셉은 이런 유서를 남겼다.
요셉의 빈소는 차려지지 않았다. 가족과의 연락도 닿지 않았다. 그의 친구들이 겨우 찾아낸 먼 친척의 동의를 받고서야 요셉은 화장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길은 친구 몇 명과 행복마을 주민들이 지켰다. 요셉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숨진 지 하루 만에 한 줌의 재가 됐다. 유골은 인천가족공원 유택동산에 뿌려졌다.
"요셉씨, 제대로 이름 한번 불러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우리들은 이제 서로 이름을 부르고, 같이 밥이라도 한끼 더 하려고 해요."
요셉이 그렇게 허망하게 떠난 뒤 행복마을 주민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또 아이들이 커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이웃집 어르신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명절엔 고기나 과일을 건네기도 한다. 요셉이 남긴 변화였다.
2024년 2월2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요셉의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행복마을 주민들은 요셉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요셉의) 유언이 헛되지 않도록 추모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 9편에서 계속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희망 빠뜨리는 法도 있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변민철·백효은 기자(인천본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