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종사자, 인간 바리케이드
"빵과 장미 아무도 주지 않았다"
"용주골 여성들에게 빵과 장미를", "성 노동자 지켜라".
세계여성의 날인 3월8일, '클리셰'는 이곳에서 사치였다. 이날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농성 중인 여성 노동자들에게 빵과 장미를 선물하는 퍼포먼스는 '일반적인 여성' 노동자만을 위한 연대의식이었다.
지난 8일 파주 용주골의 여성들은 칼바람과 함께 찾아온 '용역'에 맞서야 했다.
담벼락 위로 여성들이 다닥다닥 붙어 꼼작하지 않았다. 담벼락 아래 6명의 여성은 서로 팔짱을 끼고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이날 오후 1시30분께부터 벌어진 대치는 파주읍 관계자 등이 용주골과 연풍교 사이로 300m가량 뻗어 있는 가림막 형태 펜스를 철거하려 나오면서 시작됐다.
펜스가 노후화돼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철거는 이미 지난해 예고됐으나, 집행은 이날 처음 이뤄졌다.
펜스는 세월이 흘러 낡아버렸지만, 용주골에서는 단순한 구조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국가가 암묵적으로 성매매 영업을 용인한 동시에, 성매매 종사 여성을 사회로부터 격리했던 일련의 과정이 담긴 이중적인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는 '국가에 의한 방치'(2월20일자 3면 보도=인권 아닌 자본의 편에 선 국가… 도구로 쓰여진 존재 '성 노동자')라는 상징성이 깃들어 있다.
1990년대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마다 '청소년통행금지구역' 팻말이 들어서던 때, 용주골에도 바로 옆 갈곡천 주변으로 펜스가 설치됐고 이후 '금단의 구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울러 이곳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보호막'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그간 연풍교 옆의 유리방은 펜스 덕분에 하천 건너편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아 불법 촬영 위험을 낮췄다.
그렇기에 펜스가 사라지는 건 본격적으로 용주골을 밀어내고, 이곳 여성을 한순간 세상에 낱낱이 드러냄을 뜻한다.
주민들이 펜스 철거를 '용주골 지우기'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이곳 성매매 종사 여성과 연대단체 시민을 포함한 인근 주민까지, 100여명이 강하게 항의하면서 이날 철거는 진행되지 않았다.
1시간가량 대치한 끝에 용역이 떠났지만, 용주골 여성들은 웃음을 짓기보단 허탈해했다.
담벼락에 올라가 시위하던 여성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치기도 했다.
인천에서 용주골까지 출퇴근한다는 B(40대 중반)씨는 이날 휴무였지만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기꺼이 나왔다. 그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8년째 '성 노동'을 하는 굴곡진 사연, 펜스 철거가 왜 부당한지 등을 담담하게 들려줬다.
그러나 '여성의 날'이란 단어를 꺼내면서는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도 분명 시위를 하고 있는데 '빵과 장미'를 아무도 주지 않은 게 (용역이 온 것보다) 더 충격적이에요. 정말로 눈물 나요. 오늘 아가씨 한 명이 다치기도 했잖아요. 철거 인력이 물러갔지만 성공했다는 기쁨보다는 그냥 마음이 너무 아파요."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