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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역정당'을 원한다 ③

2024년 봄, 국민들이 또 회초리를 쥐고 섰다.

우리동네 대표선수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정치성향을 분류하자면 크게 2가지다. 아무도 못 믿거나, 아묻따 믿거나. 참고로 아묻따는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는다'는 요즘 은어다. 아무도 못 믿는 이들을 집계해보니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30%대를 기록하고 있다. 좋게 말해 어떤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 이정도면 무당층이 하나의 정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아묻따 믿는 이들은 아이돌 사생팬과 모습이 흡사한데 강력한 '팬덤'으로 무장한 극렬지지층으로, 이들 역시 양극단에 30%대씩 차지하고 있다.

기이한 현실을 두고 전문가들은 거대 양당 정치의 폐해라고 진단한다. 3김 시대보다 더한 극단의 정치를 만들어놓고는 선거철이 다가오니 정치인들도 양당정치가 문제라고 한다. 그러면서 '제3지대' '신당' 바람을 일으켰다. 제3지대가 성공하면 우리 정치가 달라질까. 정치가 우리 삶에, 내 피부에 와닿을 수 있을까. 경기도민이 겪는 고질적인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인천시민이 고통받는 쓰레기 매립장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우리동네 대표선수를 자처하며 표를 달라 구걸하던 이들이 선거가 끝난 후 '서울 여의도 후보선수'로 전락하는 현상이 끝날 수 있을까.

그래서 묻는다. 아니 따진다. 이준석 신당도 되고, 이낙연 신당도 되고, 하물며 허경영당도 되는데

왜 지역정당은 안되느냐고
총선 D-28, 지역 정치 없는 한국 정치 현주소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28일 앞둔 현재,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단어는 '전략공천'이다. 어떤 선거구에 특정 상대후보를 겨냥해 거물급 인사 또는 상징적 인물을 공천하는 것이다. 오직 '이기기 위해서'. 선거에서 이기는 게 최대 목표라면 주민은 잊혀지기 쉽다. 지역은 오직 쟁취해야 하는 '선거구'일 뿐, 인지도와 경력, 힘으로 무장한 후보를 내세운다.

선거철만 되면 등장하는 전략공천을 두고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어티 상임이사는 "불쾌하다"고 잘라 말했다. 

주민들 의사와 상관없이 갑자기 중앙당에서 지역에 지역과 관련없는 사람을 내려보냅니다. 주민들 입장에서 굉장히 불쾌해요. 이들에겐 공천권이 투표보다 더 중요하다 보니 유권자인 주민을 신경쓰는게 아니라 본인 정당 사람들 눈치를 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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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원희룡, 이재명

 

이번 총선에서 대표적인 사례는 '명룡대전'이라 불리는 인천 계양을이다. 현재 계양을을 지역구로 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맞서기 위해 국민의힘이 전략공천을 통해 후보로 지명한 사람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장관이다. 선거기사 중 보도량이 가장 많을 만큼 인물 면에선 화제성이 높은 지역이지만, 계양을은 없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쟁터'로 계양을을 빌려줬을 뿐, 주민도 없고 의제도 없다.

실제로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전략공천 지역은 전체 지역 중 약 10%를 차지해왔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253개 지역구 중 더불어민주당은 28곳에 후보자를 전략공천했다. 그 중 11곳이 경기도 지역구였다.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도 253석 중 23곳에 전략공천했으며 그 중 경기지역은 6곳이었다.

이번 선거도 양상은 비슷하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번 총선에서 전략공천을 의미하는 '우선추천 지역구' 선정 기준에 따라 경기지역 최소 34곳에 전략공천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선정 기준은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패배한 곳, 재·보궐 선거를 포함해 최근 국회의원 선거에서 3연패한 곳 등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경기지역 17개 선거구에 전략공천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발표한 전국 전략선거구로 현역의원 불출마 지역 7곳과 현역의원 탈당 지역 10곳을 선정했다. 그중 경기지역은 6곳이다. 이 17곳 외에 새롭게 추가한 경기지역 전략선거구는 12곳으로, 총 18곳이 경기도 전략선거구가 됐다.

지역정치에서 '주민'이 사라지고 '지역의제'가 실종되는 폐단은 비단 이 뿐이 아니다.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선 494명 후보자가 투표 없이 당선됐다. 이른바 '무투표당선'. 로또같은 행운의 주인공들은 그 이전인 7회 지방선거(89명) 때보다 4년 새 5배 이상 증가했다. 경기지역에서는 기초의원 50명과 기초의원 비례대표 4명이 투표없이 당선됐다. 7회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역 무투표 당선자는 4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10배가 넘는 증가다. 중대선거구제 하에선 기초의회의원의 경우 후보자 수가 선거구 당선인 수와 같으면 등록 후보자 전원이 당선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행운 역시 기성정당들이 독식한다는 점이다. 지난 지선에서 무투표당선자의 소속정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뿐이었다. 두명을 선출하는 지역구는 거대 양당에서 한명씩 공천하는 현상이 비일비재다. 지방자치의 꽃인 지방선거조차 거대정당 중심으로 치러지다보니, 특정 정당이 우세한 '텃밭'에는 소수정당들조차 출마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거대양당이 굳건히 자리잡은 탓에 무소속이나 군소정당에선 출마를 주저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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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공직선거법상 무투표 당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선거공보물과 명함을 받아볼 수도 없고 공약을 홍보하는 현수막조차 볼 수 없다. 이를 개정하려는 법안이 2022년 국회에 발의됐지만 계류중이다. 해당 지역구 주민들은 법대로 '깜깜이' 선거를 치를 수 밖에 없다.

윤현식 노동정치사람 연구위원은 "무투표당선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획일화됐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잘라 말했다. 윤현식 연구위원은 지난해 '주민에게 허하라 지역정당'을 공동출간한 데 이어 '지역정당'을 출간한 지역정치 전문가다. 

무투표당선자들 현황을 살펴보면 거대 양당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군소정당에서 후보를 내봤자 떨어질 것을 아니깐 나오지 않아요. 따라서 정치적 다양성이 말살됐고 선거법상 무투표당선자는 선거 운동을 할 수 없어 유권자의 선택권과 통제권도 박탈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30년이 흘렀다. 자치는 둘째치고, 지역에 주민의 목소리를 담은 정당 하나 못 만드는 지난 30년 동안 지역의 정치는 '실종'됐다.
왜 지역정당인가

OECD 회원국 중 정당 설립 요건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하는 국가는 한국과 독일 정도다. 정당법이 아예 없는 국가가 상당수며 있더라도 설립요건을 정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독일의 경우도 정당의 개념과 목적에 대해서만 규정할 뿐, 중앙당의 위치·시도당의 갯수와 같은 구체적인 설립 요건에 대해서 제한을 두지 않는다. 특히 다양한 지역정당 활동을 보장하는 유럽 분위기로 인해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등은 지방선거에서 지역정당이 20%대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가까운 일본도 지역정당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은 정당조성법 등에 따라 정치단체 중 국회의원 5명 이상이 소속된 단체, 최근 실시한 중·참의원 선거에서 전국 유효투표 수 중 2% 이상의 득표를 한 단체를 정당 설립 요건으로 규정한다. 이같은 요건만 맞출 수 있다면 지역적 제한이 없기 때문에 지역정당이 가능한데, 실제로 일본의 지역정당은 지역의 자율성 회복을 위해 기존 정당정치가 반영하지 못한 다양한 의제를 설정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윤현식 연구위원은 "우리같은 정당법을 갖고 있는 나라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당법을 비교할만한 나라가 어디냐는 질문을 많이받는데 선진국 중에 정당법이 있는 나라는 거의 없어요. 특히 민주국가에는 더욱 그렇죠. 복수당적금지규정 정도만 있습니다. 정당의 존립 자체가 유권자의 권리로 결정하는 게 자연스러운 생리인데, 법으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죠. 1962년 군사독재정권에 만든 법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게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정당법의 탄생은 사실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독재정권이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 연고의 경쟁자를 억제하기 위해 만들었다. 지역정당을 막는 '전국정당조항'은 1962년에 제정될 당시의 체계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당 설립 요건을 일부 완화했지만 여전히 정당법은 정당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작동되고 있다. 군사독재시절, '독재'를 공고히 하는데 악용된 정당법이, 민주주의가 무르익은 지금은 기득권 양당정치를 공고히 하는 데 쓰이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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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법이 개정된다면 지역정당은 물론, '의제정당'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다양한 색채의 정당들이 생기고 국회의 구성 자체가 다변화되면 현재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받는 거대 양당정치를 타개할 수 있다는 것.

 

 

윤현식 연구위원은 "지역정당이 가능해진다면 특별한 의제를 기치로 내건 단일의제정당도 가능해진다. 유럽에는 노동당, 페미니즘당도 있고 해적당도 있는데 이 당은 지적재산권 등 정보통신분야를 주로 다루는 정당"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정당 운동은 정치의 체계를 더 크게 확장시켜보자는 데 그 힘이 있다"며 "대구가 국민의힘의 아성이라고 하지만 대구시민 모두가 국민의 힘이 좋아서 찍는 게 아니고, 광주광역시 역시 민주당이 마냥 좋아서, 옳아서 찍는 게 아니다. 20대 총선에 국민의힘이 호남을 휩쓸었던 현상도 민주당에 실망한 상황에서 대체재가 등장하니 가능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라 지금 87년 이후에 양당 이외에 정권을 가져간 당이 없다"고 꼬집었다.

지역정당 창당을 목표로 달려온 주민들은 다시 도움닫기에 나섰다. 이용희 직접행동영등포당 대표는 대중에게 관중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뛰어보자고 적극 제안할 생각이다. 이용희 대표는 "지역정당 단체들은 그간의 활동을 통해 지역정당이 무엇이고, 대한민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영등포당은 '청소년 정치학교'를 계획하고 있는데, 청소년이 생각하는 첫 정치란 무언인가를 고민하고 청소년들이 기득권의 정치 모습과 다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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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지방선거 과천풀뿌리 주민후보 선거운동. 2014.5.
 

과천풀뿌리가 지역정당을 선언하고 만든 '과천시민정치당'은 헌재 판결 이후 구성원이 2~30명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활동이 축소됐다. 하지만 남은 이들은 다시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2026년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조직을 재정비 중이다. 지난해 열었던 주민 현안 토론회 '정치살롱', 영화상영회, 하계 정치학교 등 기존 활동과 함께 바뀐 시대에 따라 시민사회 활동에 전략을 세워 과천의 새로운 바람을 꾀고있다. 이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과천에 살면서 수의사로, NGO 출신 활동가로, 회계사로, 지역활동가로 생업에 몸담으며 내가 사는 지역을 함께 책임지고 변화시키기 위해 수년간 애써온 평범한 이웃이다.

지역정당은 현재 정치체제를 깊게 고민하며 지역에서부터 정치의 변화를 이뤄가자는 시도이고, 차근히 그 경험을 해보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손흥민 선수의 플레이를 보기만 하지말고, 매주 동네 조기 축구회에 나가서 우리도 직접 우리만의 플레이를 하며 세상을 바꿔보자는 것입니다

/공지영·김산·이영선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