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표 차이로 멀어진 지역정당, 지역엔 정치가 있을까 ②
2024년 봄, 국민들이 또 회초리를 쥐고 섰다
우리동네 대표선수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정치성향을 분류하자면 크게 2가지다. 아무도 못 믿거나, 아묻따 믿거나. 참고로 아묻따는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는다'는 요즘 은어다. 아무도 못 믿는 이들을 집계해보니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30%대를 기록하고 있다. 좋게 말해 어떤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 이정도면 무당층이 하나의 정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아묻따 믿는 이들은 아이돌 사생팬과 모습이 흡사한데 강력한 '팬덤'으로 무장한 극렬지지층으로, 이들 역시 양극단에 30%대씩 차지하고 있다.
기이한 현실을 두고 전문가들은 거대 양당 정치의 폐해라고 진단한다. 3김 시대보다 더한 극단의 정치를 만들어놓고는 선거철이 다가오니 정치인들도 양당정치가 문제라고 한다. 그러면서 '제3지대' '신당' 바람을 일으켰다. 제3지대가 성공하면 우리 정치가 달라질까. 정치가 우리 삶에, 내 피부에 와닿을 수 있을까. 경기도민이 겪는 고질적인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인천시민이 고통받는 쓰레기 매립장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우리동네 대표선수를 자처하며 표를 달라 구걸하던 이들이 선거가 끝난 후 '서울 여의도 후보선수'로 전락하는 현상이 끝날 수 있을까.
그래서 묻는다. 아니 따진다. 이준석 신당도 되고, 이낙연 신당도 되고, 하물며 허경영당도 되는데
왜 지역정당은 안되느냐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1년여 앞둔, 2021년. 보수와 진보, 진영정치를 넘어 마타도어가 난무하는, 역대급 '비호감' 대통령선거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K-팝 아이돌에서 보아온 '팬덤'정치가 도를 지나쳐 서로를 물어뜯기만 하는, 참인지 거짓인지도 알수 없는 정보들이 난무했다. 정작 우리 삶과 직결된 정치적 비전과 정책의 구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시기, 지난 지방선거의 '참패' 이후 과천풀뿌리도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2016년 지방선거에서 시의원을 배출한 이후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재편됐던 조직 체계도 시의원이 사라지면서 버팀목을 잃었다. 공교롭게도 이 즈음 과천은 재개발이 본격화되며 새로운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됐고, 구도심 주민이 중심이었던 공동체 활동도 침체기를 맞았다.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그러다, 그들을 만났다.
'지역정당네트워크'. 전국 각지에서 과천풀뿌리처럼 지역자치 공동체를 운영해 온 40여개 단체들이 결성한 연합체다. 이들이 뭉친 목적은 지역에만 정당하지 못한 '정당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 지역정당을 향한 공동체들의 움직임은 과천풀뿌리만이 아니었다. 서울 은평구와 영등포구에서, 경남 진주에서도 지역정당을 향한 갈망이 컸다.
이들 지역자치 공동체를 모아 지역정당네트워크를 결성한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임이사는 "과천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풀뿌리 정치 활동들이 활성화돼있지만, 벽에 가로막힌 이유는 지역정당을 금지하는 정당법의 위헌적 조항 때문"이라며 "지역정당 합법화라는 하나의 목표로 지역자치공동체의 활동에 물꼬를 틀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네트워크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들 단체들은 머리를 맞댔다. 정당법의 불공정함을 제대로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방법으로 '헌법 소원'을 선택했다. 2021년 10월 가장 먼저 과천풀뿌리가 '과천시민정치당'을 출범했다. 현행법상 뻔히 등록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 접수를 했고, 반려 회신을 받았다. 연이어 서울 은평구·영등포구, 경남 진주에서도 '지역정당'으로 출범해 선관위에 창당접수를 했지만 "서류는 완벽하신데, 안되는 거 아시면서 왜 이러세요"라며 역시 반려됐다.
'지역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정당법은 위헌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정당법은 역설적이게도 정당활동을 제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독재정권에서 만들어 낸 법의 틀을 끌어안은 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는 어땠는가. 중앙정치가 단단하게 움켜쥔 독점 권력을 휘두를 때마다 지역정치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의 선거운동원 선출 선거에 다름아니지 않았는가. 지역민의 인정을 통해 지역에서 선출되는 지역의 민주적 정치인이 아니라 중앙당의 지지도와 공천에 따라 중앙정치에 줄대고 줄서는데에만 급급한 중앙정치의 하수인에 불과하지는 않았는가. 이러한 현실에는 '중앙정치가 지역정치를 식민화했다'는 표현도 과하지 않다.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역정당의 거센 바람의 앞에서,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사회는, 한국정치는 처절히 반성해야 한다.'
지역정당네트워크 정당법 위헌 헌법소원심판 청구 기자회견문 中
2022년 2월. 선관위로부터 받은 4개 회신을 근거로 지역정당네트워크는 헌법재판소에 '정당법 위헌'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동시에 시민공천절차를 거쳐 주민후보 1명을 후보등록해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치른 과천풀뿌리는 낙선했다. 지난 4년 양당에 치우친 시의회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음에도 전체 의석 7석 중 국민의힘 5석, 더불어민주당 2석을 채웠다. 거대양당 정치는 더 강고해졌다.
암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과천 주민들에게 헌법 소원은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심리는 예상보다 길어졌고 해를 넘기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지역정당을 꿈꾸는 공동체들은 피가 마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9월26일. 헌법재판소는 장고 끝에 '악수'를 뒀다.
헌법재판소 결정문
9명의 헌법재판관 중 5명이 위헌, 4명이 합헌의견을 냈다. 수치상으로 5 대 4, '이겼다'. 그런데 졌다. 위헌 정족수인 6명에 미치지 못해 기각당했다. 현재의 정당법은 결국 지역정당을 허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내용으로는 이겼는데, 형식에서 진 것이다.
위헌의견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정당네트워크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부분은 정당법에서 중앙당을 서울에 두고 5개 이상의 시·도당을 둬야한다는 전국정당조항이었다. 이에 대해 "전국정당조항은 정당의 등록 및 등록유지 요건으로 작용하는데 그러한 요건을 갖추어야만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직이 된다고 볼 뚜렷한 근거가 없다"고 했다.
또 "현재 존재하는 49개 정당 중 국회에서 의석을 확보한 정당은 6개에 불과하고 1945년 8월 15일 이후 설립된 정당의 평균수명은 3년도 채 되지 않는다. 참신하게 등장하는 신생정당이나 유력한 제3당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제3당이나 군소정당이 성공한 사례도 찾기 힘들다. 이처럼 거대 양당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지고 소수당이 사라져가는 정당정치의 현실에서 지역정당이나 군소정당, 신생정당이 정당등록요건을 갖추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거대양당의 그늘 속에 봉우리도 피우지 못하는 소수정당의 현실을 지적했다. 아울러 "이는 각 지역 현안에 대한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지방정치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정당의 출현을 사전에 배제하여 정당체계를 폐쇄적으로 만들고, 유권자들에게 다양한 정치적 관점에 대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차단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특히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전국정당조항에 대한 위헌과 합헌의 의견 중 '교집합'이 되는 부분이다. 바로 '지역주의'다. 합헌의견에는 "지역적 연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당정치 풍토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는 특히 문제시되고 있고, 지역정당을 허용할 경우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지역 간 이익갈등이 커지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든 반면 위헌의견에는 "지역정당의 출현으로 인한 지역주의 심화의 문제는 정당등록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정치문화적 접근으로 해결하여야 하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국 어디에서든 정치 참여가 가능하고 지방자치가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모든 정당이 중앙당을 수도에 두고 전체 국민의 의사를 균형 있게 반영하기 위해 정당활동을 수행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지역대립의 완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전국정당조항이 과연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실효적인 수단으로 기능하여 왔는지, 모든 전국정당들이 특정 지역의 민심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여 왔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건국이래 지역정당은 커녕, 소수정당조차 발디딜 틈 없이 거대 양당 중심의 전국정당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지배해왔는데, 합헌의 논리대로라면 어느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 국민의 다원적 정치의사를 균형있게 결집해온 전국정당들만 있던 우리 정치에는 애초에 '지역주의'가 성립될 수 없어야 한다. 지역주의가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현실을 돌아보면, 지역주의를 심화시키는 당사자는 오히려 현재의 '전국정당'인 셈이다.
구자동 과천풀뿌리 대표는 "재판부의 지역주의와 우리의 지역주의는 결이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지역정당네트워크는 정당이란 '의견을 모으는 그릇'이라고 규정했다. 지역정당은 전국정당이 담을 수 없는,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담아 지역을 위한 공론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의 참패에 이어 헌법소원 청구도 기각되며 지역정당네트워크는 동력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처음 풀뿌리를 시작했을 때와 달리 세태의 변화로 지역네트워크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사회 공동체는 어느 순간 와해수준에 이르렀다. 이웃사촌처럼 붙어다녔던 주민문화가 사라지고 '개인'만 남은 세상이 돼버렸다. 지역정당네트워크 중 가장 활발하다고 평가받던 과천풀뿌리도 세자리였던 조직원 수가 두자리로 감소했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며 조직 활동이 위축됐다.
"이겼지만, 진 결과를 받고나니 참 허망했습니다. 지역정당을 허용하는 결과를 받았다면 지역기반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탄력을 받았겠지만 제대로 브레이크가 걸렸죠. 그런데 말입니다. 지역에는, 양당이 담을 수 없는 목소리가 있어요. 이번 총선을 잘 보세요. 내리꽂는 사람으로 계속 지역 정치인이 바뀌면 자치력을 높이기보다 다음 공천 받는데 더 목을 맬거에요.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노력하지 않겠죠."
/이영선·공지영·김산기자 zer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