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당은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上)] 말 안듣는 머슴, 주민이 직접 정치 나섰다

2013년 지역내 '과천풀뿌리' 뭉쳐
자발적 봉사 의지 시의원 2명 배출
꼼꼼한 의정 지적 '모의 시의회'도


산발돼 있던 과천 주민 모임들이 '과천풀뿌리'라는 빅텐트로 모였다. 2013년 11월. 과천풀뿌리는 창립준비위원회 출범과 동시에 이듬해 6월에 실시하는 지방선거 대비에 착수했다. 목표는 시의원 당선. 10명으로 시작한 조직원은 공개토론회와 회원모집 등을 거쳐 금세 세 자릿수로 불어났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데서 암초를 만났다. '지역정당 불가(不可)'. 과천풀뿌리는 정당으로 등록되지 못했다. 중앙당을 서울에 두고 전국단위 당원 규모를 충족해야 한다는 정당법 창당조항에서 발목이 잡혔다. 과천은 '서울'이 아니라서, 한마디로 서울이 아닌 지역에 중앙당을 만들면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어쩔 수 없이 무소속 후보가 됐고 많은 제약이 따랐다. 집회를 개최하는 일도, 정치후원금을 모금하는 것도 금지됐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봉사에 많은 부분을 의지해야 했다. 2014년 1월부터 총회를 열고 공천 절차, 주민후보가 지켜야 할 원칙 등을 확정했다. 3월에는 '시민공천파티'를 열어 2개 선거구에 각 1명씩, 시의원 후보 2명을 최종 확정했다.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선거운동본부가 5월에 출범됐다. 주민들은 본인들의 차에 주민 후보를 홍보하는 스티커와 공보물을 붙였다. 지하철역 앞, 사거리마다 20~30명 주민들이 연두색과 분홍색 옷을 맞춰 입고 율동을 곁들인 선거운동도 했다. 민선 6기 과천시의회 당선결과는 새누리당 3석·새정치민주연합 2석·무소속 2석. 무소속 2석은 간호사, 회계사로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과천의 '주민후보들' 몫이었다.

주민후보에서 주민'의원'이 된 이들은 의정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주민일 때는 잘 볼 수 없었던 깜깜이 예산심의도 회계사 출신 주민의원의 꼼꼼한 지적 앞에선 꼼짝하지 못했다. 본예산은 물론 추경안까지 심의때마다 앞서 주민을 대상으로 '모의 시의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이 증액·삭감한 예산들은 매 심의마다 주민의원이 직접 전달했다.

2018년 지방선거가 도래하자 과천시장 후보까지 내기로 결정했고 정의당, 녹색당 등 소수정당과 연대도 주도했다. 여전히 정당법은 지역정당을 금하고 있어 '과천시민정치 다함'(이하 다함)이라는 소수정당 연합을 결성해 제3지대 단일후보를 내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암초'가 등장했다. 선거를 불과 한달여 앞두고, 11년만에 남과 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군사분리선을 오가는 남북정상회담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말 그대로 선거판에 민주당 바람이 불었다. 과천시정 20년 만에 민주당 시장후보가 과반 지지로 당선됐다. 시의회도 더불어민주당이 5석, 자유한국당이 2석을 차지했다. 주민후보는 단 한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현재의 정당법이 계속되는 한, 주민들의 지역정치는 여전히 '무소속'일 수밖에 없고 자치를 쟁취하기 위한 분투도 어쩌면 결말이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

/공지영·김산·이영선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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