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포기하긴 너무 젊었다… '황소' 잡은 힘센여자
연성중 1학년때 코치 권유로 유도 시작
인천체고 입학후 두각… '제주컵' 정상
"희망 크게 안보여" 졸업후 운동 그만둬
사촌오빠 '금강황제' 임태혁 "한번 해봐"
진로 고민하던중 씨름으로 종목 전환
2021년 추석 무궁화 장사 '황소 트로피'
지난해 다시 정상… "천하장사가 목표"
라이벌 이다현 선수와 '쌍다대전' 유명
"롤모델은 임수정, 제겐 영웅 같은 분"
여자씨름 활성화 소망 "유소년부 없어"
아직 20대 나이 "인천은 친구가 있는 곳"
지난해 7월26일 충북 제천체육관에서 열린 '2023 위더스배 제천의병장사 씨름대회' 여자부 무궁화급(80㎏ 이하) 장사결정전은 '쌍다대전'으로 치러졌다. 괴산군청 소속 김다영은 '우승 후보'인 거제시청 이다현과 대결을 펼쳤다. 김다영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다현을 되치기로 제압하고 황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21년 추석장사 씨름대회 무궁화급에서 꽃가마에 오른 뒤 두 번째 장사 타이틀이었다.
남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씨름에 입문한 김다영은 각고의 노력 끝에 전성기를 맞았다. 아임프롬인천 스물네 번째 초대 손님 김다영을 지난 2일 괴산군청 인근 체력단련장에서 만났다.
여자 씨름선수 김다영은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렸을 때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자가 운동선수를 하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소녀였다.
인천연성중학교 1학년 때 엄마를 따라 찾아간 체육관에서 유도를 처음 배웠다. 운동선수로서 김다영의 재능을 알아본 연성중 유도코치의 권유로 학교 유도부에 입부했다. 김다영은 "코치님이 먹을 것(빠삐코)을 주면서 권유해서 넘어갔다"며 "그때까지만 해도 운동선수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김다영이 입부하자마자 유도부 1년 일정 중 가장 소화하기 힘든 여름 전지훈련이 시작됐다. 동기들이 "왜 지금 유도를 시작했느냐"고 말할 정도로 1주일간의 전지훈련은 고됐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유도선수 김다영의 진로가 시작됐다. 성과가 바로 나오지는 않았다. "여러 시합에 나가긴 했지만 중학교 때는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고 했다.
인천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김다영은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인천체고는 인천을 대표하는 공립체육고등학교다. 1976년 개교 당시에는 인천 미추홀구(당시 남구) 선인학원 내 인천체육고등학교였다가 1994년 공립화됐다. 2012년 현재 위치인 청라국제도시로 이전했다. 육상, 수영, 다이빙, 복싱, 레슬링, 유도, 사격, 태권도, 양궁, 역도 등 다양한 분야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인천체고 유도부는 교내에서도 다른 종목과 비교해 규모도 크고 전국대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둬 '유도 명문'으로 불린다.
중학교 시절 1승도 따내지 못한 김다영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2015년 11월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제15회 제주컵 유도대회' 여고부 70kg급에서 정상에 올랐다. "국가대표가 돼 태릉선수촌에서 운동하는 꿈"을 이루게 될 생각에 부풀었다.
하지만 김다영에게 '엘리트 유도선수'의 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유도를 특별하게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미래에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크지 않아" 인천체고를 졸업한 뒤 유도복을 벗었다.
유도를 그만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가족들이 여자 씨름을 권유했다. '금강황제'로 불리는 씨름선수 임태혁(수원시청)이 김다영의 사촌 오빠다. 그는 "사촌 오빠가 씨름선수였기 때문에 너도 씨름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엄마가 권유했다"며 "당시엔 유도는 하긴 했지만 '여자가 무슨 씨름이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처음엔 거절했다"고 했다.
가족들이 여러 차례 권유하면서 '씨름'을 시작하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과 함께 충남 공주에서 생활하고 있었을 때다. 공주신관초등학교 씨름부 코치 도움을 받아 씨름을 익혔다.
씨름은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포츠이자 민속놀이다. 원시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조선시대까지 가장 활성화된 스포츠로 전해진다. 현대에 들어서도 씨름은 민족 고유의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다. 이만기와 강호동 등 정상급 씨름선수는 전 국민의 스타였다. 1990년대 이후 인기가 시들해졌으나, 여전히 명절 때에는 씨름대회가 TV로 생중계된다. 이는 모두 남자 씨름에 해당된다.
여자 씨름이 본격화한 것은 2010년대부터다. 대한씨름협회에 따르면 국내 첫 여자 씨름단은 2011년에 창단한 구례군청 여자 씨름단이다.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여자 씨름단을 창단하면서 여자 씨름이 활성화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현재는 김다영이 소속된 괴산군청을 포함해 모두 7개의 씨름단이 운영되고 있다. 김다영이 씨름선수로 활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시기와 맞물린 영향도 있다.
그는 씨름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못다 이룬 꿈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의 롤모델은 여자 씨름 천하장사 임수정(영동군청)이다.
김다영은 "씨름을 시작할 때 정상의 자리에 오랫동안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아마 유도를 하면서 이루지 못한 걸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임수정 선수가 제 롤모델"이라며 "처음 씨름을 시작하면서 임수정 선수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저에게는 영웅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씨름선수가 되면서 가졌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된 훈련을 견뎌야 했다. 씨름 연습도 유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유도선수로 활동할 때 가장 많이 했던 것은 체력 훈련이었는데, 씨름도 체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는 "체력 훈련과 샅바잡기 등 기본기 연습을 가장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오전과 오후 2시간씩, 야간에 1시간30분 매일 연습한다는 그는 씨름을 시작한 5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정상급 선수로 올라섰다. 2021년 무궁화급 장사에 올랐고, 지난해에도 장사 자리를 꿰차면서 정상급 선수가 됐다. 그는 같은 급의 이다현 선수를 라이벌로 생각한다. 이다현도 무궁화급 장사 자리에 오른 경험이 있다.
그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이다현 선수를 이기고 장사에 올랐을 때가 가장 기억이 남는다"며 "앞으로도 계속 승부를 겨루면 좋겠고, 또 이기고 싶은 선수"라고 말했다.
그는 운동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운동하기에 좋은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에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지만, 타고난 신체 조건 덕을 입고 있다고 했다. 김다영은 다른 선수들보다 하체 힘과 탄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다영은 "씨름은 노력과 재능 모두가 필요한 종목이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꾸준히 노력하고 있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
여자 씨름 경기 시간은 1분이다. 그는 선수 간 승부는 경기가 시작하기 전 모래판에 올라올 때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김다영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기싸움이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있다"며 "저는 상대 선수의 행동 등을 신경쓰지 않는다. 제가 준비했던 것을 해나가는 것이 저만의 기싸움 방식"이라고 했다.
씨름 경기 시간은 1분이지만 승부는 찰나에 갈린다. 김다영은 "승자가 되거나 패자가 되는 건 1초도 되지 않은 시간에 이뤄진다"며 "이러한 점이 재미있고, 씨름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무궁화급 장사에 두 차례 오른 김다영은 전 체급을 아울러 최고의 자리인 천하장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여자 씨름이 더욱 활성화되기 바라는 마음도 크다.
여자 씨름단은 팀당 10명 안팎의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세 개 체급이 있기 때문에 체급별로는 한 팀당 3~4명에 불과하다. 7개 팀이 모두 모여도 3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선수층이 얇다는 점은 종목이 활성화되는 데 제약으로 작용한다. 그는 "선수가 더 많아지고, 더 박진감 있는 경기를 펼치게 된다면 여자 씨름에 대한 관심도 많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다영이 소속된 괴산군청 씨름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특히 여자 씨름은 초·중·고 씨름부가 한 곳도 없다. 이 때문에 괴산군청 씨름단 막내는 고등학생이다. 김다영은 "씨름은 우리나라 고유 종목인데, 여자 씨름은 유소년 씨름부가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우리나라엔 용인대·중원대·영남대 등 3개 대학에서 여자 씨름부를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고,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도 아직 인천에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인천을 찾기도 한다. 그에게 인천은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운동선수로서 첫발을 뗀 곳'이다.
20대 중반인 그에게 인천은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곳'이라는 기억이 강했다. 김다영은 "인천에 종종 가게 되는데, 대부분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했다. 특히 인천체고 다닐 때 친했던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는데 대부분 선수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김다영은 "인천은 제 어린 시절을 모두 보냈던 추억이 많은 고향"이라며 "지금 인천에 살지는 않지만, 새롭게 만나는 사람이 '인천사람'이라고 하면 친해지고 싶다. 인천에 대한 자부심이 큰 인천사람"이라고 자신을 알리기도 했다.
인천 출신 20대 청년 김다영의 꿈은 여자씨름 천하장사를 거쳐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애견카페'를 운영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