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의 기도… 참사를 마주할 용기는 평화를 향한 의지


평화기념공원내 추도관 자리잡아
중심에는 희생자 추모 연못 조성
사망자 상징한 벽돌 14만개 빼곡
분위기 경건, 사진촬영조차 조심

"온전히 기도할수 있는 공간 필요"
세월호 유족들 염원하는 곳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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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히로시마 평화기념 희생자 추도관에서 한 관광객이 추모하고 있다. 일본은 2002년 8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에 평화기념 희생자 추도관을 개관했다. 추도관은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원폭 당시의 모습과 피폭된 마을 이름이 벽에 새겨져 있다. 2024.4.12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8시 15분. 큰 부채꼴과 작은 부채꼴이 어긋난 모양의 연못은 원자폭탄이 투하된 시간을 나타낸다. 국립 히로시마 평화기념 희생자 추도관은 1945년 8월 6일 8시 15분에 멈춰있다.

중심에 있는 연못은 원자폭탄의 폭심지를 상징하며, 물을 찾다가 죽어간 원폭사망자를 추모하기 위한 연못으로 희생자들에게 물을 바친다는 의미다.

지난 12일 찾은 국립 히로시마 평화기념 희생자 추도관은 사진을 촬영하는 소리조차 추모객에게 방해될까 우려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지상 1층에서 추도 공간인 지하로 내려가는 길엔 원폭이 투하된 시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가 상세히 적혀있다. 원폭이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발하면서 지표면 온도가 섭씨 4천도에 이르러 14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처참한 피해 상황과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메시지들이 벽면을 따라 쓰여져 있다.

벽에서 천장을 떠받드는 12개의 기둥은 원폭의 희생이 있었던 슬픔과 현재의 연결을 의미한다. 기둥 앞에 나무 의자를 둬서 추모객들은 의자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도를 하거나 생각에 잠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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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히로시마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에서 관광객이 연못을 바라보고 있다. 일본은 2002년 8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에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을 개관했다. 작은 분수를 중심으로 원폭 당시의 모습을 벽에 새겼다.2024.04.12/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국립 히로시마 평화기념 희생자 추도관은 지난 1994년에 제정된 '원자폭탄 피폭자에 대한 지원에 관한 법률'에 기초해 조성됐다. 법안은 원자폭탄 투하 후 50년을 맞아 피폭자에 대한 보건, 의료 및 복지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원폭사망자 추모 시설을 빠르게 설치하도록 결정하고 피폭자와 사망자의 유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설이 되도록 추도관을 만들었다. 추도관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설계한 단게 겐조가 설계해 곳곳에 디자인적 요소가 스며들어 있다.

연못을 중심으로 벽면에는 피폭 후 거리의 모습이 생생하게 벽화로 새겨져 있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원폭돔(구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처럼 피폭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원형을 유지하는 건물들도 있지만 대부분 황폐해진 모습이 담겨있다.

벽화 밑으로는 희생자를 의미하는 14만개의 벽돌에 피폭 당시의 마을 이름이 새겨져 있어 추모객들은 마을 이름을 어루만지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

이처럼 추도관은 평화기념공원 내에 위치해 자유롭게 일상을 보내면서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된다.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도 일상적인 추모 공간을 원한다는 의미에서 세월호와 히로시마 추도관이 연결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인 강지은 씨는 "4월 16일 하루에만 와서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설을 반기진 않는다"며 "1년 365일 언제든지 가족 단위나 청소년들이 와서 소풍을 즐기면서도, 기도하고 싶을 때 온전히 기도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큐레이터이자 역사학자인 코야마 료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슬픔에 공감하고자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 방문한 적도 있다.

그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역사적인 관점에서 기억적인 요소를 공부하기 위해 단원고를 방문했다"며 "단원고 교실엔 희생된 학생들의 책상이 놓여 있었고 빈 책상에 꽃이 놓인 광경을 보면서 너무 슬펐다. 많은 책상 위에 희생의 흔적들이 놓여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평화기념자료관이 세워질 때도 실제로 살아계신 분들의 목소리가 우선시 됐다"며 "세월호가 배라는 관점에서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누가 어떻게 (추모 공간을 위한) 열의를 발산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히로시마/고건·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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