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는 서늘한 진실… '끝없는 증언'으로 새겼다
독일 정부 제안, 메모리얼 지하에 정보관
바닥엔 희생자 일기·편지 등 이야기 가득
4가지 공간 따라가며 공감 "가슴 미어져"
애도 방명록에 한글로 "기억하겠습니다"
2천710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지하의 정보관은 희생자의 이야기로 메워져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관람객에게 닿아 분노와 슬픔으로 표출되고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다짐이 된다.
"두세살 남짓 되는 어린 아이들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야외 캠프용 침대에 누워 끊임없이 울고 또 울고 비명을 지른다. '엄마, 엄마, 뭐라도 좀 먹고 싶어요'. 군인들은 끊임없이 총을 쏘고 그 총소리는 잠시나마 아이들을 침묵시킨다."
"나는 그 옆에 쓰러졌고 그의 시체는 이미 뒤집혀 있었다. 목에 총을 맞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너도 그렇게 끝날 것이야'. 이제 죽음 속에서도 인내가 피어난다. 진흙과 섞인 피가 흘러 내 귀에서 마르고 있다."
지난 14일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정보관을 찾은 관람객은 바닥에 있는 희생자의 일기와 편지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쪼그려 앉곤 했다. 곳곳에선 나지막이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지상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과는 사뭇 다른 무거운 분위기다.
정보관은 유대인 학살의 역사를 소상히 서술하는 공간으로 시작해 희생자와 그 가족의 사적인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이어진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의 만행과 유대인 학살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관을 지나면, '차원의 방', '가족의 방', '이름의 방' ,'장소의 방'이라고 이름 붙여진 네 개의 방이 차례로 등장한다.
관람객은 '차원의 방'의 손글씨 편지와 일기를 통해 희생자의 공포에 공감한다. '가족의 방'에서 소개되는 유대인 15가구의 해산·추방의 기록을 따라가며 안타까움은 극대화된다.
'이름의 방'에서는 학대받은 유대인들의 이름·출생연도·사망연도가 동시에 네 개의 벽에 투사되며 그들의 짧은 일생을 내레이터가 담담하게 읽어준다. 이는 생존자 혹은 목격자의 증언과 역사적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재구성된 정보들로, 모든 희생자의 이야기를 읽는 데에만 꼬박 6년7개월 가량이 걸린다고 한다.
이날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방문한 독일인 부부 루코브스키(71)씨와 훌세부쉬(64)씨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종종 찾지만 지하 정보관은 처음 와봤다"며 개인의 편지나 일기의 내용들을 전시의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으로 꼽았다.
그들은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며 "가족이 있고 아이가 있고 직장에 다니던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모든 게 사라지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독일이 반성해야 마땅한 부분"이라고 관람 소감을 전했다.
정보관을 나오는 길에 마련된 방명록에도 안타까운 희생을 애도하는 글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적혀 있었다. '정보관의 설명을 보고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에 동정심을 느꼈다. 제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영어로 적혀 있기도 하고, '기억하겠습니다'라며 자신의 이름을 같이 새긴 한국인 관광객도 있었다.
정보관은 당초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계획된 공간은 아니었다. 공모전에서 당선된 피터 아이젠만의 설계 디자인에는 정보관이 없었다. 정보관은 당시 독일 정부가 지상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조형물과 함께 추모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제안했다고 한다.
정보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벽면에 크게 적혀 있는 프리모 레비(이탈리아 레지스탕스로 체포됐지만 살아남은 인물)의 문구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존재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
"그것은 일어난 일이다. 그러므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점이 우리가 꼭 말해야하는 핵심이다(It happened, therefore it can happen again: This is the core of what we have to say)."
베를린/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
※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