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출발해 목포신항으로 향하는 관광버스 안은 적막감만 감돌았다. 고요한 버스의 탑승자는 안산 고잔동 주민들과 세월호 유가족 등 20여명이다. 이들은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 선체를 보기 위해 함께 기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4시간 내내 함께 타고 가면서도 누구 하나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조용히 각자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거나 눈을 감았다.
지난해 7월, 5년 전처럼 버스는 안산에서 출발해 목포신항으로 달리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출발지인 화랑유원지 주차장에서부터 유가족과 주민들은 서로를 반기며 인사를 나눴다. 버스 안에서도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으며 웃었다. 고잔동의 마을행사 일정이나 복지센터 프로그램 내용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들의 버스 여행은 ‘목포기행’. 주민들과 유가족 사이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 여행을 통해 주민들은 세월호를 두 눈으로 보고, 유가족들의 이야기도 직접 들었다. ‘봉안시설에는 가족이 아닌 희생당한 아이들의 유해만 들어온다는 것’, ‘4·16생명안전공원 부지는 화랑유원지 전체가 아닌 일부라는 것’. 주민들은 소문으로 듣고 마음 속에 품었던 의문들이 대부분 오해라는 것을 확인했다.
기행에 참가했던 조은정 학생의 엄마 박정화씨는 “생명안전공원을 무조건 반대했던 주민들이 막상 세월호 선체를 보고 대화를 나누면 우리의 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행의 분위기를 전했다.
- 목포기행에 참가했던 한 주민
목포기행을 기획한 건 단원고등학교 정문에서 30m 떨어진 곳에 있는 ‘고잔문화복지센터’다. 센터는 이름을 하나 더 갖고 있다. 힐링센터 0416쉼과힘. 2014년 9월, 명성교회와 연세대 대학원 상담코칭센터, 선부사회복지관이 협업해 문을 열었다. 세 기관이 힘을 합한 데는 이유가 있다. ‘공동체 회복’. 세월호 참사의 가장 가까운 목격자이자 간접적 피해자인 지역 주민을 돕기 위해서다. 더 깊게 들어가면, 유가족과 지역주민 사이에 생겨난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내기 위해서다.
이렇게 유가족과 지역주민들 사이에 접점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마을 곳곳에서 일어났다. 안산 상록구 반월동에 거주하는 이연우(48)씨는 2014년 4월, 어린이날을 맞아 동네 사람들과 ‘어린이 축제’를 기획하던 중 참사 소식을 접했다. 그는 몇 차례나 합동분향소를 찾아 추모했다. 하지만 당시엔 유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밥은 먹었냐는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두려웠다. 참사 1년 후 지역아동센터에서 진행한 유가족 간담회에서 유가족을 만난 후 마음이 바뀌었다. 보기 안쓰러울 만큼 마르고 기력없는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연우씨는 용기를 냈다. 먼저 다가가 “밥은 좀 먹고 다니세요?”라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튼 후 연우씨는 반월동에 사는 ‘엄마’들과 함께 매달 한번씩 분향소에 밥을 지어 보냈다. 또 엄마들은 유가족을 마을로 초대하기 시작했다. 마을 축제, 자치회 행사마다 유가족을 위한 부스를 마련했다. 마을에서 공방 수업을 열면 416공방에 부탁해 유가족들을 강사로 초청했다.
관계가 변화하는 바탕에는 유가족들의 노력도 컸다. ‘4·16가족봉사단’은 참사 후 유가족들을 도왔던 시민 자원봉사자들에 고마움을 전하고 보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봉사단 단장인 정화씨는 아이를 잃고 분향소에 망연자실한 채 넋이 나가 있었다. 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늘 누군가 다가와서 먹을거리를 챙겨줬고 필요한 물품도 가져다주었다. 또 누군가는 바다에서 올라온 유류품을 대신 씻어주었고, 늦게까지 정화씨 곁에서 분향소를 지켜주기도 했다. 경황이 없었던 터라 정화씨는 으레 그 ‘누군가’가 공무원들이라고 여겼다. 국민이 죽었으니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줄로만 알았다. 어느날 그 누군가가 고잔동 주민, 안산 시민, 전국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인 것을 알게 됐다.
정화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은 그 고마움을 꼭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어서 일일이 찾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웃주민들, 시민들에게 봉사를 함으로써 그 보답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해 3월 안산에서 주택화재로 나이지리아 국적의 남매 4명이 숨졌을 때 원곡동 다문화가정 150여곳을 찾아 소화기를 나누고 화재감지 경보시스템을 설치해주기도 했고, 강원도 강릉 산불피해 현장을 찾아 2주 동안 피해 주민들의 말벗이 되어주기도 했다.
유가족과 주민들이 스스로 관계개선에 노력한 건 피해자 보상, 기억교실 이전 등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지역사회의 갈등이 격화되며 공동체 회복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안산시민의 심리안정과 공동체 회복을 국가의 책임으로 의무화한 ‘세월호피해자지원법’을 제정했고 안산시도 2017년부터 ‘공동체회복 프로그램(희망마을사업)’을 본격 시행했다.
이런 노력 덕에 안산 내 마을공동체 사업은 확장되고 있다. 단순히 유가족과 지역주민들 사이를 연결하던 시도에서 나아가 기관 등을 만들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회복을 이어가려는 작업들이다. 참사 이후 주민들이 겪은 심리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이웃대화모임’이 지역 내 갈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주민갈등자율조정센터’ 설립으로 이어진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안산 공동체 회복프로그램은 지난해부터 사실상 종료됐다. 지난 2022년 말, 국무조정실은 2023년부터 올해까지 20억원을 투입해 사업 연장을 결정했지만 예산은 교부되지 않았다.
- 안산시청 관계자
안산 마을공동체 사업 대부분을 민관 공모사업으로 진행하던 마을공동체들은 회복의 흐름이 끊길까 걱정하고 있다. 고잔문화센터를 운영하는 선부종합사회복지관 장유진 팀장은 “센터는 공공기관이 아니라 사실상 운영비와 인건비 등은 전혀 지원받지 못한다. 그래서 사업에 대한 고민이 깊다”며 “주민들이 활동비조차 받지 않고, 나서서 후원 등을 연결해주고 있어 운영은 하고있다”고 부연했다.
지난 14일 단원고가 내려다보이는 고잔복지센터 옥상공원에서 향미씨가 말했다. 대안학교 ‘성미산학교’ 학생 20여명은 궂은 날씨에도 우비를 입은 채 귀를 기울였다.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아 8박9일 일정으로 안산을 찾은 학생들이다. 한 손엔 큐카드를, 다른 손엔 송신기를 든 향미씨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명성교회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 교회 교인 자녀 6명이 참사로 희생됐고 그 중 2학년2반 양온유 학생의 부모님이 십일조 기부를 하면서 옥상공원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곳에선 단원고가 잘 보인다. 일상 공간 곳곳에서 학생들을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마을해설사로 변한 향미씨는 고잔동 주민이다. 고잔동에선 마을걷기 프로그램 ‘같이걷자’가 운영 중이다. 사전에 프로그램을 신청한 시민들은 마을해설사와 함께 고잔복지센터·원고잔공원·단원고등학교·화량유원지 등 고잔동 곳곳을 돌며 세월호참사를 겪어온 고잔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해설사는 다름아닌, 주민들이다.
참사 직후부터 6개월간 단원고에서 급식봉사를 한 향미씨는 투어의 시작인 ‘온유의뜰’과 마지막인 ‘4·16생명안전공원’ 설명을 맡았다. 단원고에 줄지어 선 고속버스를 보고 ‘엄마들도 수학여행을 가나?’라고 했던 생각이 죄책감으로 남았다는 효진씨는 ‘원고잔공원’를, 참사로 아이가 죽은 지인과 아이가 구조된 지인이 모두 있는 용정씨는 ‘화랑유원지’랑 ‘화정천’을 설명했다. 기억교실 이전 갈등으로 시끄러웠을 때 아들이 단원고 재학생이었던 정진씨는 ‘단원고’를 설명했다. 이렇게 고잔동 주민 6명이 마을해설가로 나섰다.
이어 단원고등학교에서는 이호정 영어교사가 바통을 넘겨받아 설명을 이어갔다. 올해로 4년째 단원고에 근무 중인 그는 당시 동료였던 이해봉 선생님을 잃었다.
마을 투어는 화랑유원지 안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끝이 났다. 향미씨는 이곳이 단순히 애도와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적인 휴식공간이라고 말했다.
- 고잔동 주민 향미씨
실제로 안산시민들은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희망제작소가 지난 2020년 발간한 ‘세월호 참사 피해지역 재난극복 공동체 회복 모델 구축 연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안산시민 317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58.1%(180명)가 공동체 회복사업에 참여했다고 응답했다. 또 회복사업 참여자 67.9%가 ‘공동체 회복사업 이후 안산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전문가들도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선 자발적인 참여와 일상 속 추모가 가능한 거점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창기 희망제작소 전환정책센터장은 “공동체의 회복이 마치 어디까지 가야 회복됐느냐 했을때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외부의 예산을 계속 받아서만 근거하는 사업형태는 한계가 있다. 결국 회복의 끝이 없고, 특정예산에 근거하기보다 일상적인 형태로 사업을 전환하고 시민과 유가족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활동들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현재 조성 중인 ‘4·16생명안전공원’과 같은 거점 공간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면서 자발적인 활동들이 이어질 수 있게 하는 매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명식 신한대 실내디자인학과 교수는 “4·16생명안전공원이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지역주민부터 오고싶은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과 안전, 참사의 측면만 부각되면 특수성은 있지만 대중성은 잃게 된다. 엄숙함이 부각될 게 아니라, 추모공간이 ‘일상’의 공간임을 알 수 있게 디자인해야 하고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향”이라고 조언했다.
세월호참사 희생자 중 일반인 희생자가 많은 인천에서도 시민과 유가족이 함께 일상 속에서 추모하고 희생을 기억하려는 움직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 지역사회와 접점 넓혀가는 세월호 유가족올해 2월 1일부터 15일까지 부평아트센터 갤러리꽃누리에서는 ‘그날의 사람들, 오늘의 이야기’ 전시회가 열렸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하 추모관)이 주최한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념전시회였다.
세월호 생존자인 김병규 씨를 포함한 제주시 생존자 7명,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희생자 가족 14명이 만든 작품 63점(그림·사진·조형물 등)이 전시됐다.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견뎌온 고통의 시간들을 작품에 담았다.
이날 전시회는 지난해 12월 부평구문화재단과 추모관이 맺은 업무협약을 토대로 이뤄졌다. 두 기관은 “4.16의 의미를 성찰하고 생명 존중과 안전 문화 확산을 위해” 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추모관이 기관과 맺은 첫 업무협약이었다.
추모관은 개관 이후 지속해 지역사회와 호흡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안전포스터 공모전은 지난해 5회 행사를 진행했다. 같은 해 9월에는 ‘4·16’청소년 문화제‘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인천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미추홀구 학익동 일대에서 자원봉사자 350여 명과 함께 ‘사랑의 연탄나르기’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추모관은 부평구청소년수련관 등과 교류를 이어가는 등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추모관과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은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활동이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참사 당시 국민들에게 받았던 위로와 도움을 조금이라고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걸림돌로 작용하는 공간 부족추모관은 인천 지역에 있는 유일한 ‘추모시설’이다. 참사 2년 뒤인 2016년 4월 개관했다. 매년 1만~2만여명이 추모관을 찾는다. 전시실과 봉안당으로 구성된 추모관은 방문객이 쉬거나, 단체 방문객이 전시 관람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안전 교육이나 세미나 같은 활동도 할 수 없다.
이에 추모관 측은 인천시와 증축 등을 협의하고 있다.
추모관 전태호 관장은 “추모관은 방문객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도 없는 상황”이라며 “증축이 이뤄지면 방문객 편의가 좋아질 뿐 아니라 더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추모관 확대가 유가족들의 대외 활동을 늘릴 뿐 아니라 참사 희생자·피해자 연대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세월호 유가족은 이태원참사 유가족, 인현동 화재 참사 유가족 등과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이 중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만 추모관이라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전태호 관장은 “추모관을 확장하면, 교육공간과 전시실, 방문객 휴게공간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 뿐 아니라 다른 참사를 알리고 기억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은수·공지영·김동한·백효은기자 wo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