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석(81·사진) 전 청와대 건설교통비서관은 황해도 연백 출신인 인천 사람이다. 이 전 비서관은 한국전쟁 발발 후 어머님과 함께 내려와 인천에 정착해 성장한 피란민이다.
창영초·인천중·제물포고·서울대 독어독문학과에서 수학했다. 1969년 대한무역진흥공사(코트라)에 입사해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가 일어난 직후인 1997년까지 30년 가까이 몸담았다.
그는 인천에서 성장하면서 바다 건너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꿈꿨다. 국가 간 여행이 흔치 않던 시기였다. 그는 '외국을 경험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아 대학에 진학했고 취업 기관을 선택했다. 독문학을 전공한 것도 코트라를 택한 것도 그런 기준이 반영된 결과다.
프랑크푸르트·서베를린·취리히·함부르크·동베를린 등의 도시에서 일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바덴바덴에서의 서울올림픽 개최지 결정, 독일의 통일, 냉전체제의 종식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현지에서 지켜봤다.
독일 근무 중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맺은 인연을 계기로 국민의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로 자리를 옮겨 건설교통비서관으로 일했다. 이후 인천의 '싱크탱크'인 인천발전연구원(현 인천연구원) 원장으로 부임해 인천을 위해 애썼다.
퇴임 후에는 인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인천대 석좌교수 등으로 일하며 인천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했다. 그가 원장 재임 시절 내세운 '인천 재발견' '도시재생' '산업 재건' 등 방향성은 2000년대 이후 인천시 정책의 줄기가 됐다.
이인석 전 비서관은 앞으로의 꿈도 중요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꿈을 펼쳐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인천에서 근무하면서 늘 아쉽게 느낀 것이 있다. 전 세계는 인천을 손금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하지만 인천은 스스로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 늘 아쉽다"면서 "과거를 잊고 꿈에서 계획을 출발시킨다. 너무 오랜 기간 내용은 없고 꿈만 좇는 구호에 인천 시민이 중독되어 왔다. 정치인들이 각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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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