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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김정희씨 “잠 푹 잔적 없다”

정신적 질병 얻고 건강도 무너져

한달간 간병인 이용하면 300만원

초고령사회 국가 대안 마련할 때

‘누구나·언젠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 장사는 없습니다. 젊은 시절의 건강한 신체는 나이를 먹을수록 쇠약해지고, 질병에 취약한 몸이 됩니다. 신체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누구도 없습니다. 그리고 내 가족도 노쇠할 수밖에 없고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픈 가족을 간병하는 일의 1차적인 책임은 늘 그 가족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누구나, 언젠가는 가족 간병의 책임을 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자녀를 간병하는 1편의 김은희(가명·40대초반)씨와 초등학교 1학년부터 20대가 된 지금까지 어머니를 간병하는 2편의 이정민(가명·20대초반)씨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 기사를 읽고있는 당신의 ‘현실’에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겪지 않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3편에 소개한 60대의 최명숙씨와 80대 중반의 김정희씨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현실로 다가옵니다.

특히 이들 가족간병인은 중장년층·노년층이 노년환자를 돌보는 ‘노노(老老) 간병’이라는 점에서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시급하게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적절한 태도일 것입니다.

내 가족도 노쇠할 수밖에 없고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픈 가족을 간병하는 일의 1차적인 책임은 늘 그 가족입니다. /클립아트코리아
내 가족도 노쇠할 수밖에 없고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픈 가족을 간병하는 일의 1차적인 책임은 늘 그 가족입니다. /클립아트코리아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자료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의 노년층 인구는 2022년 기준 전체의 17.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예상이 맞다면 2025년에는 노년층이 전체 인구의 20.3%를 달성해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가 되고 2050년엔 40.1%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렇게 노년 인구비율이 늘어나면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간병 현상은 더욱 일반화될 것입니다. 노노간병은 독특한 특징을 가집니다. 부양부담을 오롯이 홀로 짊어지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로인해 일상이 무너지고 경제적·사회적 고립의 위기에 처해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어딘가에 도움을 청할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난 명숙씨와 정희씨도 직접 간병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무장돼 있었습니다. 피할 생각조차 없어보였습니다. 아마도 명숙씨와 정희씨가 살아온 그간의 한국사회에선 당연한 이치일 겁니다. 내 가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면 이렇게 헌신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 역시 노노간병인의 헌신에 기대, 이들의 일상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간병 환경조차 지원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안정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운 노년층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만으론 간병과 생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개인이 오롯이 책임지는 구조 속에서 최소한의 휴식조차 보장받지 못해 정신적 스트레스는 물론 신체적 고통까지 더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땅한 소득이 없는 명숙씨의 경우 신용카드 돌려막기와 대출을 통해 부모님의 간병비를 조달했습니다. 병원비 일부는 국가의 지원을 받았지만 간병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가 없고 빚만 늘었습니다.

한국리서치 <‘부양 부담’과 ‘불안한 노후’, 진퇴양난에 빠진 한국의 중장년층>의 조사에서는 월평균 200만원 미만 저소득층의 부양비 총액이 80.6만원으로 집계됐는데, 700만원 이상 고소득자 부양비인 153.9만원의 절반 수준에 그쳤습니다. 얼핏 보면 저소득층의 부양비가 고소득층의 부양비보다 적어 보이지만 저소득층 중장년이 수입의 40% 이상 부양비로 지출하고 있는 반면, 700만원 이상 고소득층에서는 수입의 약 22%를 차지하는 수준이라 체감 정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분위기 탓에 노부모를 부양하는 789명 중 57%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월평균 부양비

80대 남편을 간병하는 정희씨도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부가 교사로 재직한 덕에 한 달에 200만원 가량의 연금이 들어오지만 남편의 건강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 또한 200만원 이상이라 남는 돈은 없습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제9차(2021년도) 중고령자의 경제생활 및 노후준비 실태’ 결과를 보면 노후에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월 최소 생활비는 부부의 경우 198.7만원이었습니다. 노년부부의 표준적인 생활 유지를 위한 적정 수준의 생활비는 277만원입니다. 김정희씨 부부는 연금으로 월 200만원 이상의 최소 생활비는 매달 받고 있었지만, 남편의 간병비로 최소 생활비 이상을 고정적으로 지출했습니다.

노노간병의 가장 큰 약점은 간병을 하는 이도 ‘중장년층’ ‘노년층’이라는 점입니다. 계속된 간병으로 우울과 같은 정신적 질병은 물론이고 신체적 건강까지 악화돼 질병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명숙씨 어머니가 그러했고, 명숙씨 또한 단 하루를 쉬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 놓였습니다. 80대인 김정희씨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치매환자인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고 어딜 가든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잠을 자는 동안 돌발행동을 할 수 있기에 남편의 미세한 행동에도 늘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정희씨는 마음놓고 잠을 자본 적이 오래됐다고 했습니다. 책임감으로 남편을 돌봤지만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는 책임감으론 감당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안정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운 노년층은 턱없이 부족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만으로 생계를 감당하고, 개인이 오롯이 책임지는 구조 속에 있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안정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운 노년층은 턱없이 부족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만으로 생계를 감당하고, 개인이 오롯이 책임지는 구조 속에 있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현재 우리나라 가족 간병의 환경을 바라보는 전문가의 문제의식도 위에서 드러난 문제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족 간병인의 정서적 건강관리를 위한 교육인 PTC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성희 케어기버 마음살림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부분 가족 간병인은 요양보호사를 부르는 데 제약이 많고, 인건비에 대한 부담도 있어요. ‘내가 전적으로 가족을 간병하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시간과 경제적인 것들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돼요. 특정 질병이나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편향된 돌봄이 아니라 일상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국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해요. 그래서 간병함으로써 취미생활, 만남, 건강, 사회생활 등 모두 잃는 사람들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죠”

명숙씨와 정희씨도 전문적인 간병서비스를 원합니다. 실제로 요양보호사의 힘을 빌려본 적도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포기했습니다. 이들이 겪는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정부의 제도는 있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제공 받는 ‘방문요양’과 ‘가족요양사’, 환자가 입원했을 때 보호자와 사적 간병인 없이 간호사·간호조무사·요양보호사 등이 환자에게 간병을 비롯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가 발표한 ‘간병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중 간병 경험자 1천 명 대상) 결과를 보면 정부의 제도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간병인 이용 시 가장 힘들었던 점 중 ‘비싼 간병비 부담’이 65.2%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해당 조사는 간병인 이용 시 지급한 하루 간병비(식사비 포함)도 조사했는데, ‘하루 9~11만원 미만’이 36.7%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하루 11~13만원 미만’(24.0%)은 그 뒤를 따랐습니다. 간병인에게 지급하는 비용을 하루 10만원으로 책정하고, 한 달(30일)간 간병인을 이용한다면 300만원을 지출하게 됩니다. 생계와 간병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족 간병인들에게는 숨이 막히는 막대한 비용인 겁니다.

간병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이렇게 아픈 가족을 간병하기 위해 일상과 재정 등 삶의 전반을 투입하는 가족 간병인들은 간병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7월 발표된 한국리서치의 ‘간병이 필요한 시대에 사는 우리 - 간병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가족 간병인들은 적극적인 국가의 지원을 바랐습니다. 가족의 간병 문제는 가정 내에서만 해결하기 어렵다는 질문에 82%가 ‘그렇다(매우+그런 편)’고 답했습니다. 개인의 간병을 위한 국가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물음에는 ‘그렇다(매우+그런 편)’의 답변이 89%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우리나라가 간병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미흡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간병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잘 이뤄져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74%가 ‘그렇지 않다(전혀+그렇지 않은 편)’라고 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족 간병인들이 바라는 국가의 지원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아픈 가족을 간병하는 이들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지원을 묻는 질문에 70%가 ‘생활비, 병원비, 간병비 등 경제적 지원’에 응답했습니다. 다음으로 41%는 ‘정부·지자체가 운영하는 전문 요양시설 확대’를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 확대와 요양보호사 연계된 재가보호서비스 지원도 25% 이상의 응답을 끌어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비추어 볼 때 가족 간병인들은 일상과 가족 간병의 공존을 위한 실효성 있는 간병제도의 마련을 시급하게 느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체의 노화를 막을 수 없는 인간은 ‘누구나·언젠가’ 가족 간병의 책임을 맡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초고령사회를 앞둔 우리 사회는 가족 간병이란 부담이 쓰나미 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노년층 인구가 늘어나며 우리 사회의 노인 부양과 돌봄에 대한 부담은 자연스레 가중될 것입니다. 생산연령인구(15~64세) 100명에 대한 고령인구(65세 이상)의 비율을 나타내는 ‘노년부양비’도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24.4명을 기록했던 노인부양비가 2024년에는 27.4명, 2050년에는 77.3명이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앞으로는 간병의 문제가 ‘노노(老老)간병’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미래세대에게는 간병의 부담이 지금보다 더 빨리 다가올 것입니다. 노년층만의 문제가 전세대로 뻗어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겪게될 ‘가족 간병’,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미래를 우리 모두가 준비해야할 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