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기도와 인천 지역에 단속된 마약사범 수는 전국을 압도한다. 지난달 세계 마약퇴치의 날을 맞아 대검찰청이 발표한 ‘2023 마약류 범죄백서’를 살펴보면 경인지역 마약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단속건수는 수원지검으로 4천133건에 달하고 인천지검이 3천484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의정부지검에서 단속한 1천833건을 합하면 경인지역에서만 9천450건에 이른다. 전국 총 단속건수의 약 34%로, 전국 마약사건의 3분의1이 경인지역에서 잡혔다. 숫자로 접하니 마약중독이 일상에 깊숙히 파고들었다는 걸 실감한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의 마약중독은 여전히 범죄일 뿐이다. 범죄로만 취급하니 해결법도 신고 뿐이다. 치료적 관점을 두고 사회적 고민이 없으니,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모가 자식을 신고하고, 내가 나를 신고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중독자도, 그 가족도, 경찰도, 검사도, 의사도 모두 단약치료 없는 교도소는 오히려 출소 후 마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고 만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난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들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때마침, 가장 많은 마약사범이 있는 경기도에 전국 최초로 공공마약중독치료센터가 설립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마약중독이 범죄이자 질병임을 인정하는 신호탄이다. 이제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치료하지 못한 마약중독은 전염병이다. 우리는 ‘범죄자’ ‘약쟁이’ ‘의지박약’으로 마약중독을 가둬놓을 수 있을까. / 편집자주
호주·태국·싱가폴… 도망가면 마약은 따라왔다
“변호사님, 제발 교도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불구속 입건은 안됩니다”
이선민씨가 꺼낸 뜻밖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선민씨의 아들 정호(가명)는 자수했다. 스스로 ‘마약’을 했노라 경찰에 자신을 신고했다. 정호의 엄마 선민씨는 아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변호사에게 더 강한 처벌을 부탁했다. 그래야만, 정호가 살 수 있어서다. 마약중독에 빠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엄마가 선택해야만 하는 극약처방이었다.
2년 전, 선민씨는 정호의 손을 붙잡고 비행기에 올랐다. 클럽에서 호기심에 마약을 접한 정호는 어느새 ‘중독자’로 돼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범죄, 교도소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먼, 아주 보통의 삶을 살아왔던 선민씨는 덜컥 겁부터 났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아들의 앞길을 망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교도소에 가는 것 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약=범죄’인 한국에선 도저히 난관을 헤쳐나갈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외국에 가면 정호가 마약을 끊고 다시 예쁜 아들로 돌아올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거란 절박하고 막연한 희망을 붙잡고.
지인들에겐 유학이라 핑계대며 호주에 갔다. 마약을 건넨 사람들과 떨어뜨려 놓는다면, 정호는 금방 마약을 끊어내고 다시 착한 아들로 돌아올거라 믿었다. 아들의 단약을 위해 아빠는 생업까지 포기하며 정호를 따라갔다. 하지만 선민씨의 판단은 얼마 못가 오판이 됐다. 호주에서 정호는 SNS를 통해 더 손쉽게 마약을 구하는 방법을 체득했다.
이번엔 태국으로 갔다. 태국의 마약재활시설에 가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극복할 수 있을거라 믿었다. 믿음은 한달을 넘기지 못했다. 재활시설에서 퇴소한 후 홀연히 사라진 정호는 다시 약을 찾았다. 겨우 찾아낸 아들은 자기가 왜 여기에 있는지 기억조차 못한 채 약에 취해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할 수 없었다. 태국에서 싱가폴로 정호를 옮겼다. 싱가폴에선 대학생활과 단약을 병행했다. 정호의 의지도 강했다. 성실하게 대학생활을 했고, 반년 만에 단약에 성공했다. 아니, 성공했다고 믿었다. 또 정호가 사라졌다. 선민씨가 아들을 다시 찾았을 땐, 믿음은 깨져 있었다.
“성실하게 잘 하던 아이가, 정말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버려요. 정호 사진을 들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수소문하며 찾아다녔습니다. 어떨 땐 정호가 스스로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달라 말해요. 가보면 이상한 쪽방같은 모텔에 토사물과 땀에 범벅된 채 계속 중얼거려요. ‘누가 나를 잡으러 와요’.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어요. 그걸 보는 부모 마음은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끌어안고 같이 울었습니다. 그땐 신을 원망했어요.”
선민씨는 정호 스스로 마약을 끊을 수 있다는 그 ‘믿음’을 버렸다. 정호를 데리고, 온 가족이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정호는 스스로 경찰을 찾아갔다. 교도소에서 강제로 약과 차단되는 방법 말곤, 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간절히 부탁했다. 제발 우리 아들, 교도소에 있게 해달라고.
자수와 입원을 수차례… 몸을 묶고 가둬도 마약이 있다
교도소 역시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선 중독자가 치료받거나 재활을 통해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교도소에 오래 있으면 정호가 약을 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때는 그거말곤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교도소 역시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마약 중독자에요. 범죄지만 병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중독자가 치료받거나 재활을 통해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선민씨의 말대로, 불행히도 교도소 수감은 치료법이 되지 못했다. 단약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2년 6개월을 수감됐다 출소한 정호는 다시 마약을 찾았고, 자수하기를 반복했다. 주기는 더 짧아졌다. 출소하자마자 마약을 했고, 병원에 입원해 몇개월 버티다가도 핸드폰을 받자마자 다시 약을 찾기도 했다.
정호는 그때마다 괴로워하고, 정신이 들면 스스로를 신고했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 정호와 선민씨는 교도소에 갇혀만 있다고, 약과 완전히 단절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게 됐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잡으러 온다’는 환각, 갈망으로 인한 고통, 그래서 다시 약을 찾고, 또 그래서 제발로 경찰서로 가도록 만들었다.
한국에서 마약중독자를 가족으로 둔 가정은 숨어버립니다.
범죄라는 인식만 있고, 재사회화에 대한 지원이 없어요.
현재 정호는 치료감호를 요청해 국립법무병원에서 단약 치료를 받고 있다. 퇴원하면 다시 사회로 나온다. 퇴원 후 정호는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재활센터에 입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선민씨는 여전히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그건 정호도 마찬가지다.
전쟁같은 ‘투병생활’에 끝은 있을까. 수년 간 아들의 단약을 간병해온 선민씨는 어느새 마약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활동가가 됐다. 기독교마약중독연구소를 설립해 숨어있는 마약중독자와 이를 ‘간병’하는 가족을 돕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마약중독자를 가족으로 둔 가정은 다같이 숨어버립니다. 범죄이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만 강렬하니까요. 마약중독은 병입니다. 범죄라는 인식만 있고, 단약, 재활 같은 재사회화에 대한 공적 지원이 없어요. 오로지 민간에만 의존하는 상황에서 (최근 논란이 불거졌던) 민간 재활시설인 다르크가 폐쇄되는 것도 안타깝지만 예견된 결말이자,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