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희(가명)는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아이였다. 대학생이 되고서도 성적장학금을 타올 만큼 똑똑하고 모범적인 아이였다. 엄마 이경선(가명)씨와는 사소한 일까지, 스스럼없이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같은 사이였다. 그날 준희의 입에서 뜻밖의 단어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엄마 내가 마약이란걸 해봤는데, 기분이 정말 좋아져. 엄마도 이런걸 해봤으면 좋겠어”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마약’을 말했다. 아이를 너무 믿었기 때문일까.
“그때는 아이도 잘 몰랐고, 저도 정말 잘 몰랐어요. 성인이 되면 다들 호기심에 클럽도 가고 술도 마셔보고 그러니까, (저는) 마약도 그런 정도일거라 생각했었어요. 저도 잘 몰랐고 아이도 크게 개의치 않고 말하니까. ‘한두번 그러다 말겠지’ 하고 넘겼어요.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때가 골든타임이었는데..”
준희만큼이나 마약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었던 그 때를, 경선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지금도 할수만 있다면 경선씨는 준희가 마약을 말하던 그때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물론 마약이 나쁜건 알았어요. 하지만 저도 준희도 마약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굉장히 막연한 거에요. 영화에서 보면 중독돼서 덜덜 떨면서 괴로워하는, 그런게 마약이라고 생각했죠. 생각해보면 학교에서도, 매체에서도 마약이 구체적으로 왜 나쁜지 단 한번도 알려준 적이 없어요. 그래서 대부분 주변의 누군가 ‘좋은거 있다’고 말하니 ‘괜찮은가’ 싶어 호기심에 시작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심각한 수준이 되고나서 후회하죠. 예방교육이 얼마나 절실한지 우리 아이가 그렇게 된 후에야 알았습니다.”
마약 자체를 몰랐던 ‘첫번째 무지(無智)’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치고 결국에 준희는 마약중독이 됐다. ‘두번째 무지’는 상황을 악화시켰다. 경선씨는 준희가 당연히 마약을 금방 끊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준희는 결국 ‘마약투약’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어느새 경선씨는 준희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초범이라 벌금형에 그쳤지만, 그건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마약투약으로 법에 걸린 일이 ‘처음’이라는 것이지, 마약투약이 처음이 아니었다. 숱하게 마약을 투약해야, 법에 걸리는 수준에 이른다.
‘평범한 내가 마약사범이 됐다’는 충격은 준희가 단약 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준희는 정말 처절하게 노력했다. 경선씨도 옆에서 준희의 노력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벌금형으로 법망을 빠져나온 것이, 별다른 제재 없이 다시 사회로 나온 ‘불행 중 다행’은, 준희가 마약에 그대로 다시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걸. 준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얼마 못 가 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그제서야 경선씨는 자신의 무지를 탓했다.
“(벌금형으로 나왔을 때) 바로 갈 수 있는 병원이나 재활시설을 알았더라면, 준희는 마약에서 빠져나오지 않았을까, 결국 교도소에 가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매일 생각했어요. 그때까지도 제가 마약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구요. 아이가 다시 마약을 손에 댔을 때 국가가 지정한 마약전문병원 20여곳을 알아봤지만 ‘의사가 없다’ ‘2~3개월 대기해야 된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어요.”
마약이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문제는 주변에 도움을 청할 데가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매년 마약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을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중독전문의·병상 부족, 치료기피 등으로 전국에 딱 2곳 병원만 치료가 가능한 수준이다.
엄마, 마약중독 딸을 위해 마약을 공부하다
결국 경선씨는 직접 두 팔을 걷어붙였다. 준희를 위해 스스로 ‘마약 전문가’가 되기로 했다.
그때부터 경선씨는 ‘마약’을 키워드로 검색해서 나오는 모든 국내 서적과 논문을 뒤졌다. 이걸로도 모자라 미국이나 필리핀 등 해외 논문까지 찾아 마약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제 일상은 온통 마약치료를 공부하는 일 뿐이었어요. 번역기를 돌려서 해외 논문을 읽고, 잠들기 전까지 마약, 치료 관련 영상을 보면 하루가 끝나죠. 나중엔 제가 미칠 것 같은 지경에까지 이르렀죠. 그래도 어쩌나요. 부모가 알아야 도와줄 수 있다는 일념으로 미친듯이 했던 것 같아요.”
준희가 갈망이 올때면 도파민을 분출시켜 갈망을 이겨내도록 도와야 했다. 준희와 함께 낮이고 밤이고 뛰러 나갔다. 심하게 갈망이 올 때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땀범벅이 될 때까지 뛰어야 괜찮아지던 준희를 바라보는 일은 경선씨에게도 고통이었다.
말그대로, 이악물고 1년을 버텼다. 준희는 잘 이겨내고 있었다. 하지만 준희는 결국 교도소에 수감됐다.
“단약 치료를 하던 중 재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같이 마약을 했던 사람이 본인이 경찰에 붙잡히고 준희를 공범으로 끌어들였어요. 재판 당시 준희를 치료하던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며 이렇게 열심히 단약을 위한 재활을 하고 있다고 호소했지만..”
재판부의 시각에서, 준희는 이제 초범이 아니라 재범일 뿐이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준희는 1년 실형을 선고받았고 복역 후 최근 출소했다. 경선씨는 이때를 떠올리는 일을 몹시 괴로워했다.
“순간적으로 해리가 올 만큼 충격을 받았어요. 아이도 저도, 이렇게 열심히 치료를 했는데 치료과정을 보지 않고 어떻게 실형을 줄 수 있나 싶었어요.”
비록 좌절했지만, 준희는 지금도 열심히 단약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법이 판단한 죄는 끝났지만, 단약으로 가는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아서다. 마약중독은 언제든 재발이 가능해서,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재발이 반복되면 가족이 지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마약중독자 가족을 위한 자조모임 등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에요. 실제로 가족 모임에 가보면 단약치료를 돕는 가족들이 하나씩 병을 가지고 있어요. 마음의 병이 몸으로 나타나는 거죠. 그럼에도 가족이 옆에서 꾸준히 관리를 해줘야만, 마약을 끊을 수 있어요. 내가 강해져야 아이를 도울 수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공부하고 있어요.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