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마약했어요” 고백이 단약으로 가는 긍정신호
마약 끊기 위해선 ‘아주 오래 천천히 앞으로’
갈망 심해지면 작은 스트레스에도 약에 손대
중독자들, 스스로 끊을 수 있다는 ‘의지’ 의심
전문가, 혼자 이겨내기 ‘불가능’ 가깝다 판단
단약 지속 위해선 그들이 고독해지지 않아야
마약을 끊어내는, ‘단약’은 마라톤과 같다. 치료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아주 오래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경쟁과 승자가 있는 마라톤과 달리 단약은 마약중독이란 병을 함께 이겨내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동료는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한걸음씩 나아간다. 실제로 우리가 만난 단약 치료 중인 마약중독자들 곁에는 대부분 이 과정을 함께하는 동료가 있었다. 그것은 가족이기도 했고 치료 및 재활전문가와 같은 외부기관이기도 했다. 또 마약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중독자들이 서로 동료가 돼주기도 했다. 그만큼 단약을 할때 ‘주변의 도움’은 필수적인 요소로 여긴다. 그래서 마약중독자가 ‘나 마약을 했다’고 주변에 투약 사실을 알리거나 ‘마약을 끊고싶다’는 도움을 요청할 때, 날선 비판보다 애정어린 응원과 관리가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야 마약중독이란 병을 극복할 수 있다.
20살때부터 마약을 시작한 김경호(가명)씨는 2년째 단약 중이다. 그는 꽤 심각한 중독자였다. 호기심에 시작한 마약은 어느새 삶의 중심이 돼버렸고 한때는 밀매상으로도 활동했을 정도다. 혼자서 마약을 끊어내려 몸부림을 쳐봤지만, 눈 떠보면 다시 약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런 세월이 몇년을 지속했다. ‘스스로 끊을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자 전문가의 도움을 찾기 시작했다. 올해 초 문을 닫은 민간 마약중독재활치료시설인 경기 다르크를 찾아간 것은 절실함이었다. 이 곳에서 그는 같은 처지의 차규성(가명)씨를 만났다. 둘은 늘 붙어다녔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갈망을 통제하기 위해 서로를 감시하고, 때론 위로하며 응원했다. 한명이 갈망이 올때, 다른 한명이 손을 붙잡고 울면서 말리는 일이 허다했다.
“갈망이 심하게 올때 한번은 술에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섞어 마셔버렸어요. 그러고, 기억이 전부 날아가버렸는데 (정신이 없는 채로) 제가 마약을 찾고 있었나봐요. 그때 규성이형이 저를 막았어요. 그러면 안된다고, 제 손을 꽉 잡으며 막았습니다.”
실제로 마약을 억눌러오다 참지 못하는 지경을 보통 ‘갈망’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갈망이 임계점에 달하면 마약중독자는 아주 작은 스트레스에도 단약을 멈춘다. 이때 갈망을 참아내지 못하고 다시 약에 손을 대면, 삶은 이전보다 더 처절하게 망가진다. 누구보다 갈망과 유혹, 그 이후 벌어질 최악의 상황을 잘 아는 주변인, ‘동료’의 존재가 절실한 이유다.
규성씨는 그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저는 (단약하다 다시 마약을 하면) 더 힘들어지는 걸 잘 아니까요. 회복하던 중에 넘어지면, 더 힘들어집니다. 그때부턴 마약을 해도 즐겁지가 않아요. 처음할 땐 즐거우려고 마약을 하거든요. 그런데 나중에는 특정 순간을 잊어버리려고, 이 괴로움을 잊기 위해 마약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마약을 한 순간부터 회복하려던 마음이 다시 올라와요. 내 자신이 한심하고, 괴로움뿐입니다. 그때부턴 고통뿐이에요.”
이는 비단 경호씨만의 일이 아니다. 취재진이 만난 마약 중독자들은 공통적으로 치료재활과정에서 ‘외부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머리로는 하고 싶지 않은데 몸이 먼저 반응하니까” “나도 모르게 다시 약에 손을 대고 있어요” 등.. 중독자들은 스스로 마약을 끊을 수 있다는 ‘의지’를 스스로 믿지 않았다.
전문가들도 마약중독을 혼자 이겨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마약중독치료 전문병원인 인천 참사랑병원의 김재성 원장은 “단약을 오래해 증상없이 유지되는 ‘관해상태’가 돼도 완치라고 보기 어려운 게 마약중독이다. 평생동안 경각심을 가지고 유지해야 하는 질환인데, 얼마든지 다시 손을 댈 수 있고 손을 대면 더 격렬하고 끔찍하게 이전에 쌓아올렸던 것을 무너지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마약중독자들이 사회로 복귀하려는 몸부림, 이 자체를 ‘의지’로 봐야한다. 주변 사람에게 마약 투약 사실을 털어놓는 것, 자조모임에 참석하는 것, 치료재활시설을 찾는 것, 본인을 처벌해달라고 자수하는 것까지. 이 모든 행위가 일종의 구호신호로, 단약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약 중독자가 단약을 지속하기 위해선 그들이 고독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재성 원장은 강조했다. “혼자 있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진심어린 지지, 애정어린 감시로 반드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