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자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중독’ 상태임을 인지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마약중독을 다루는 일은 우리 사회가 갖는 ‘편견’을 깨부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앞서 1편에서 24시간 마약중독자를 간병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마약중독은 범죄인 동시에 질병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도 그 때문이다.
마약을 스스로 끊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데부터 보통 중독이 시작된다. 취재진이 만난 마약중독자들과 가족, 전문가들은 그 패턴을 이렇게 설명했다. 마약을 처음 접했을 때, ‘얼마든지 내 의지로 끊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순간 중독이 시작되고 마약투약으로 초범이 됐을 때에야 ‘마약중독자가 됐다’는 걸 인지한다. 문제는 중독이 된 후에는 ‘의학적으로’ 혼자선 마약을 끊을수 없는 중독상태에 빠지는데, 우리 사회가 이를 ‘의지박약’으로 해석해버리는 것이다.
의학적 취약 상태와 의지박약은 다르다
“경찰에 처음 적발됐을 때, 그제야 제가 마약에 ‘중독’됐다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경찰에 처음 붙잡혔을 때 서정희(가명)씨는 7년째 마약을 투약하고 있었다. 검거될 때까지 숱하게 마약을 투약했음에도 그는 스스로 마약중독자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10년 전,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만난 낯선 이성의 한마디에 서정희(가명)씨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한번 해 볼래요? 기본이 좋아져요.” 그의 손에는 정체 모를 액체가 담긴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정희씨는 ‘마약’이란 걸 직감했다. 불법이란 것도 알았다. 하지만 유혹을 단칼에 끊어내지 못했다. 주사기 안의 약물이 정희씨 몸 안으로 들어오자 이상한 변화가 느껴졌다. 클럽 노래 소리에 정희씨 정신이 순간 아득해졌다.
후폭풍은 이튿날부터 시작됐다. 정희씨의 신체 리듬은 완전히 망가졌다. 환청이 들렸다. 누군가가 “마약을 했지”라고 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정희씨는 다시는 마약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한번 손을 댄 마약을 향한 욕구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외줄타기가 계속됐다. 정희씨는 결국 다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투약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6개월, 3개월, 1개월, 하루. 약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는 끊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다음 주에 또 약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사실 되게 끊고 싶었거든요. 주기가 짧아지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게 문제라고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 주에 또 약을 하고 있었어요.”
마약투약 혐의 형사 입건… 초범이었다
2021년 8월 정희씨는 결국 마약 투약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 초범이었다. 6개월여에 걸친 수사를 받고 다음해인 2022년 1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교육이수를 조건으로 기소가 유예됐다. 초범이었기 때문이다. 법망에 처음 걸렸을 뿐, 그는 마약중독 상태였다. 정희씨는 그해 3월부터 일주일에 5번씩 마약퇴치운동본부에 가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2년째 단약 중이다. 그는 단약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제 스스로 갈망을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런데 정말 몸이 제 생각과 다르게 움직여요. 한마디로 통제가 불가능한거죠.”
1년6개월 동안 마약을 했다.
투약할 때는 그게 중독인지 몰랐다.
매일같이 마약을 찾았으면서도 말이다.
오복수(가명)씨는 1년6개월 동안 마약을 했다. 투약할 때는 그게 중독인지 몰랐다. 매일같이 마약을 찾았으면서도 말이다.
복수씨는 소개팅으로 만난 이성의 권유로 먀약을 시작했다. 그도 처음엔 내 의지로 충분히,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실상은 달랐다. 복수씨는 점점 더 자주, 많은 양을 투약하게 됐다.
김재현(가명)씨도 20살 때 시작한 마약을 30년 넘도록 끊지 못했다. 마약 관련 범죄로 교도소에만 10번 넘게 수감됐다. 매번 같은 후회를 하면서도 굴레를 끊어내지 못하고 반복했다.
마약 중독자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중독’ 상태임을 인지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계속 마약을 투약하면서도 스스로가 욕구를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다 경찰에 잡힐때가 돼서야 치료가 필요한 중독상태임을 인정하게 된다.
재현씨는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말로 모든 상황을 합리화해서는 안된다”며 “자신을 속이는 게 제일 쉽다. 결국 경찰에 잡힐 때까지 마약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경찰에 잡혔을 때는 이미 약을 여러번 한 상태였다. 수사 단계에서부터 재활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마약 초범, 굴레 벗어날 골든타임
마약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 스스로 중독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정희씨와 복수씨, 재현씨 모두 마약을 시작한 계기와 투약기간 등이 다르지만, 중독임을 깨닫고 난 후 단약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게 공통점이다. 첫 투약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면, 그래서 우리가 첫 범죄라고 일컫는 ‘초범’일 때 단약의지가 가장 높아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마약중독자가 중독임을 인지하는 게 치료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마약중독자가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 즉각적인 재활치료가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재성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마약에 중독됐다는 것을 깨닫는 게 재활치료의 첫 단계”라며 “최근엔 마약 중독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지면서 중독 초기부터 병원을 찾는 이도 있다. 초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회복 효과가 상대적으로 더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