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사법기관, 마약사건 ‘범죄·질병’ 인식
치료 병행한 처벌 염두하는 경향 짙어져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처분 늘어나는 추세
마약중독자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은 수사·사법기관이다. 특히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마약사건을 접하며 마약중독이 범죄이면서, 동시에 ‘질병’이라는 인식도 함께 하고 있다.
이는 마약투약 사범을 두고 법 집행의 수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최근들어 수사와 재판 단계 모두에서 치료를 병행한 처벌을 염두해 판단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마약투약사범을 치료재활시설로 연계하는 제도는 치료조건부 기소유예, 한국마약퇴치본부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 보호관찰소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등 3가지다. 말 그대로 치료를 받고 마약퇴치 교육을 이수한다는 조건 하에 기소를 유예한다는 것이다.
이미 수사단계에서부터 ‘치료재활’에 방점을 찍은 사법제도들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 시행건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은 지난 2013년 140명였던 데 비해 지난해 1천87명으로, 10년 사이 8배 가까이 늘어났다. 보호관찰소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처분도 최근 3년간 194명(2021년), 281명(2022년), 439명(2023년)으로 증가했다.
사안이 중해 기소가 돼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재판 진행 중에도 치료재활이 연계된 사법제도는 작동한다.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 법원의 치료명령제도가 대표적이다. 먼저 치료감호는 검찰이 청구하는데, 재판부가 필요성을 따져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치료감호는 마약중독자를 감호(구금)해 치료를 행하는 조처다. 치료명령제도는 법원이 기소유예 판결에 대한 조건으로 피고인을 치료시설과 연계하는 처분이다.
문제는 치료재활을 조건으로, 다시 사회로 나온 마약중독자들이 정작 치료재활을 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전무하다는 데 있다.
사회 나온 중독자들 치료재활 인프라 전무
정부 지정 치료보호기관 작년 25곳 그쳐
수사과정 중 검찰 의뢰 사례 극히 드물어
공공 개입하는 치료재활센터 확충 바람직
정부지정 마약중독 치료보호기관은 지난해 기준 25곳에 그쳤다. 이중 치료를 진행한 곳은 9곳 뿐이고, 총 641명에 대해서만 치료보호가 이뤄졌다. 지난해 마약 사범(2만7천611명) 가운데 2%만이 정부 지정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
이때문에 수사과정 중 검찰이 의뢰한 마약중독자 치료보호 사례는 극히 드물다. 최근 5년간 검찰이 의뢰한 입원 치료는 3명, 외래는 53명에 그쳤다. 치료조건부 기소유예의 경우 집행률 자체가 매년 낮다. 지난 2021년 22명이었던 마약류 사범 치료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은 2022년 14명, 지난해 14명을 기록했다.
인천지검 마약특수부 출신 법무법인온강 배한진 변호사는 치료조건부 기소유예 시행 건수가 유독 많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마약중독으로 입건된 경우 수사단계에서 (치료재활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검사가 할 수 있는 제도가 치료조건부 기소유예입니다. 지정된 25개 병원 중 무상치료를 받는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한다는 건데, 제대로 활용이 되지 않고 있죠. 실제로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은 2곳 밖에 되질 않아 대기가 엄청 길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장기간 마약중독 피의자를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구요. 사실 검사입장에선 처벌하면 끝나는 문제인데, (제도가 있다고 해도) 집행하는 데는 아무래도 관심이 덜하죠. 법원에서도 치료감호청구나 치료명령제도가 있어요. 이것도 실질적인 운영이 안되는 게, 중독정도나 재범가능성을 입증해야 하거든요. 이것 역시 하나의 수사이고 사실 번거롭죠. 또 공주교도소에 치료보호감옥이 있긴 하지만, 전국에 딱 한 곳 뿐이니 쏠림현상이 심합니다.”
올해 4월 대검찰청과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은 마약류 단순 투약사범에 대한 사법 치료 재활 시설 연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초범이거나 단약 의지가 강한 마약 투약사범에 한해 재활 기회를 준다는 취지다. 이미 사법기관도 마약중독을 질병으로 대하는 인식은 나아졌다. 이미 치료재활을 통해 마약사범을 교화하는 사법제도 또한 마련돼 있다. 현실에서 집행할 수 없을 뿐이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나 약국도 마련해놓지 않고, 성급하게 처방전만 주는 꼴이다.
배한진 변호사는 공공이 개입하는 치료재활센터 확충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수사와 재판과 연계해 치료재활센터를 활용하면 단약을 해야만 하는 ‘강제성’이 부여되기 때문에 치료에 효과적일 수 있어요. 보통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으려고, 또는 집행유예 선고 전까지 구속되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거든요. 처분이 나거나 선고가 나면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그 이후에도 계속 강제적인 절차를 통해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운영이 효율적이어야 하는데, 민간에만 맡기면 그 관리를 잘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