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은 뇌에 생긴 병입니다.
내가 스스로 범하는 것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
‘재발과 재범 사이’
마약은 나쁘다. 딱 한번일 뿐이라도, 마약투약은 범죄다. 그리고 마약중독은 더 큰 범죄다. 하지만 마약에 중독되고나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약을 찾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크다. 그래서 단약치료를 받고 재활을 받다가도, 홀연히 다시 마약을 투약하는 ‘재범’이 되고 만다. 그러지 않은 중독자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그래서 마약중독자와 가족, 의료진들은 재범을 ‘재발(再發)’이라고도 말한다.
병이 다시 발생했다고 표현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김재성 인천 참사랑병원 원장은 마약중독이 ‘뇌질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뇌 상태에 따라 시기 나뉘어… 지적장애 오면 세수도 못한다
“사회적으로, 또 법적인 문제와 접해있어 잊기 쉬운데, 개인의 측면에서 볼 때 이건 뇌에 생긴 병입니다. 뇌에는 어떤 것을 실행할 지, 뭐가 좋은지 등을 담당하는 보상체계가 있는데, 마약을 한번만 투약해도 뭘 하고 싶다, 사용하고 싶다 같은 보상체계가 완전히 뒤바뀌어지는 거에요. 오로지 약물만을 원하고 그래서 강박적으로 약물만 사용하게 되고, 이게 중독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필로폰은 앞쪽 뇌를 망가뜨립니다.
앞뇌를 ‘녹인다’고 표현하는데
인지·충동·억제·계획·실행을 담당하는 뇌가 사라지면
감정조절이 안되고 의욕이 안 생겨요.
뇌가 오로지 ‘약물’만을 원하는 일종의 강박증세가 나타나면 몸의 부작용들이 나타난다. “국내에서 많이 하는 마약이 필로폰인데, 이건 앞쪽 뇌를 망가뜨립니다. ‘앞뇌를 녹인다’라고 표현하는데, 인지·충동억제·계획·실행 등을 담당하는 앞뇌가 사라지면, 감정조절이 안되고 의욕이 안 생겨요. 심지어 세수하러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질 만큼. 멀쩡한 사람에게서 지적능력이 떨어져 일상생활이 안되는, 지적장애까지 나타나니까요.”
그래서 마약중독은 치료를 받고 있어도 다시 마약을 투약하는, ‘재발’을 피하기가 어렵다.
“뇌가 얼마나 손상됐는가에 따라 초기와 중기, 말기로 구분할 수 있어요. 초기는 갈망은 있지만 다시 마약을 하는 그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은 해요. 그러다가 한번씩 갈망이 세게 올수도 있구요. 뇌가 손상되고 인지기능이 떨어져 지적장애까지 온다면 유의미한 치료계획을 수립하기가 어렵고, 스스로 노력을 해도 그 의미가 발휘되기가 어려워요. 이런게 말기죠. 중기는 그 중간쯤의 상태구요.”
“일단 100일을 집중치료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해서 고비를 넘기면 1년까지도 가요. 1년이 될때까진 주마다 1번 혹은 2주에 1번 외래진료를 받으며 추적관찰을 합니다. 안정기라고 부를 수 있는 건 3년이 지나면서부터인데, 증상이 평생 동일한 건 아닙니다. 이정도면 뇌 기능이 회복되고 갈망이 심하지 않아 혹시 갈망이 와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난이도가 낮아진다고 보죠. 5년이 지나면 지역사회 회복자 모임도 나가고 1개월에 한번 정도 진료를 보러 와도 돼요. 하지만 단약을 오래했다고 해도 완치라고 보기 어려워요. 다시 손대면 더 격렬해지고, 더 끔찍하게 이전에 쌓아올렸던 것을 먹어치우게 되거든요. 그래서 마약중독은 완치한다는 개념보다, 평생 경각심을 가지고 유지해야 하는 질환입니다.”
완치 찍는 깃발 없다, 평생 쉬지 않고 달리는 게임
이와 같이 마약중독은 재발이 필연적이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2023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마약 재범사범은 5천933명(2020년), 5천916명(2021년), 6천436명(2022년), 9천58명(2023년)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다른 죄목과 비교해봐도 마약사범은 유독 재범이 많다. 출소한 지 3년 이내에 다시 교정시설에 수용되는 비율(재복역률)을 기준으로 살펴봤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사범 재복역률은 31.9%다. 전체 수형자 재복역률(22.5%)보다 높은 수치다. 전체 수형자의 재복역률이 24.6%(2021년), 23.8%(2022년)를 기록할때도 마약사범은 각각 42.1%(2021년), 36.3%(2022년)였다.
그러나 수사·사법기관은 마약중독자의 재발을 재범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초범이었던 마약중독자에 한해 치료 및 교육을 조건으로 한 기소유예를 확대하는 추세지만, 다시 적발됐을 땐 처벌을 가중한다. 그래서 단약치료 및 재활 등 회복 중이던 마약중독자가 재범이 되면 치료와 재활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우리가 1편을 통해 만난 마약중독자 준희의 어머니 이경선씨도 자녀가 재범으로 결국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걱정이 컸다.
환각상태로 교도소행, 무한 굴레 도는 것
2만8천 명 걸린 병인데 병상은 100개뿐
치료 순서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재발하는 게 루틴
‘재범’이라고 교도소에 아이들 또 보내는 것
“마약중독자들 누구든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어해요. 그게 마음대로 안될 뿐입니다. 교도소도 치료되지 않은 채 무조건 넣어버리니 환각상태인 경우가 많아요. 지난해 2만8천명이 검거됐다는데, 마약치료병동은 100병상 뿐이래요. 모두 심각한 상태인데, 국내 치료시설은 거의 없습니다. 서울만 해도 3군데 정도 밖에 치료받을 데가 없고, 예약 잡으려면 2~3개월은 기다려야 해요. 이거 기다리다가 그 사이에 또 재발하는 게 루틴입니다. 그러면 재범이라고 교도소에 보내요. 이런 아이들이 너무 많고 불쌍해 돕고싶어서 오죽하면 재활공부도 시작했겠어요.”
치료를 받고 싶어도 마땅한 시설이 없어 받지 못해 재범이 되면 결국에 전과자가 되고, 사회로 다시 나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악순환이 계속되면 어렵게 치료를 받더라도 꾸준히 관리를 하는 일조차 어려워지고, 중독에선 더더욱 헤어나올 수 없게 되는 굴레다.
해독 과정 거쳐 금단증상 완화하는 게 우선 순위
“해외 여러나라엔 약물법원을 따로 두고 있어요. 치료가 우선시되기 때문에 치료조건부로 전과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치료받고 싶어도 치료시설이 없으니, 교도소 보내는게 어찌보면 쉬운 일이 된거죠. 문제는 그렇게 되면 한국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일할수도 없어요. 범죄경력조회가 뜨거든요. 어떤 중독자는 완치가 되고 다시 학원 강사로 일을 나갔는데, 중독자였던 게 소문이 나서 해고됐어요. 그렇게 할수 있는 일이 없다보니 기초수급자도 많고, 그러면 결국 다시 약에 손대는.. 한국에선 일단 가두는 게 최고라는 식이 여전히 통하니 검거율은 1위지만 치료율은 꼴찌인 겁니다.”
이때문에 마약사범 수도 최근들어 폭증하고 있다. 지난해 마약사범은 2만7천611명으로, 4년 전에 비해 1만1천567명 늘었다.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이러한 지표들이 결국 마약중독자에 대한 치료재활이 절실한 이유다.
마약중독자에 대한 치료재활은 해독 과정을 거쳐 금단 증상을 완화하는 게 우선이라는 게 공통의 목소리다.
그 과정에서 갈망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마약 중독자들은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마음은 하고 싶지 않은데, 몸이 먼저 반응해요” “30분만 참으면 되거든요. 딱, 30분만. 갈망이 왔을 때 그때 잠시 참아내면 약을 원하는 주기가 길어지고…” “재발할 수 있죠. 그 순간을 지혜롭게 잘 대처하면 교만해지지 않고 오래도록 단약을 할 수 있어요” “단약 n년째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사람은 있어도, 마약을 완전히 끊었다고 하는 이는 없을 거에요. 단약 중에도 갈망이 생기거든요.”
막을 수 없는 재발, 하지만 그것 또한 치료의 과정
취재진이 만난 마약 중독자들은 단약이 담배, 술을 끊어내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봤다. 어떤 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끊어내는 게 아니라, 재발을 막기 위해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진도 ‘재발은 치료의 과정’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마약중독자에 대한 적절한 조처는 치료와 처벌 그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 마약중독은 범법 행위임은 틀림없다. 다만 치료 재활을 거쳐야만 중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재성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치료재활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단약을 하면 금단 증상이 심해 몸이 괴롭고 결국 다시 마약을 찾게 됩니다. 마약중독은 가족, 친구에게도 숨기고 싶은 문제이지만, 의료진에게만큼은 마약중독으로 겪는 어려움을 소상히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재발하지 않도록 돕겠습니다. 마약중독은 의학적인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명백한 질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