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자 본받아 중독자들도 벗어나자는 것
서울다르크가 바란 것이었다.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이 지난달 21일 성남 분당의 한 사무소에서 경인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은 “회복자를 모델로 한 민관협력 재활치료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이 지난달 21일 성남 분당의 한 사무소에서 경인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은 “회복자를 모델로 한 민관협력 재활치료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

2012년 다르크 들여온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

“마약중독 회복자가 운영하는 민관 협력 치료시설이 필요합니다. 민관 협력 치료재활시설을 모델로 한 중심 병원, 지역병원, 자조모임이 연결된 의료체계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을 만났다. 조성남 전 원장은 마약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37년간 마약중독 치료에 힘써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오랫동안 마약중독 치료를 연구해온 그는 이제 국가가 나서 마약중독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됐다고 강조한다. 터부시했던 민간 치료·재활시스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공공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관리하면서,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재활시설, 자조모임 등의 치료재활 네트워크를 형성해 유기적으로 마약중독 환자를 관리해야 한다는 게 요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미 마약중독을 극복해낸 ‘회복자’가 마약중독환자를 도울 수 있도록 ‘회복자 활동가’의 양성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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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남 전 원장은 지난 2012년 일본 다르크를 국내로 들여온 장본인이다. 다르크는 마약중독 회복자가 운영하는 입소형 재활시설이다. 단약 중인 이들이 모여 24시간 동안 서로를 관리감독하는 회복시설이다.

다르크는 치료할 병원, 재활할 시설 하나 제대로 없던 한국의 마약중독자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돼 왔다. 공공이 운영하는 치료재활시설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조성남 전 원장은 일본의 ‘다르크’를 왜 국내로 들여왔을까. 2004년 6월26일 세계마약퇴치의 날, 그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세미나에 참석해 일본 다르크의 마약중독 회복자 자조모임을 접하게 됐다. 이미 회복자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미국 마약중독 치료시설의 장점에 호기심을 갖고 있던터라, 회복자 자조모임과 다르크라는 일본 모델이 우리 사정에 접목할 수 있는 모델이라 생각했다.

“미국 연수 중에 교도소마다 마약중독 치료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 중이었습니다. 회복자가 치료를 돕는 활동가가 돼, 마약중독자를 상담하고 교육하는 병상이 교도소마다 200~300개씩 있더라고요. 이게 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복자 본인이 나를 본받아 단약 중인 중독자에게 같이 생활하자고 하는 게 다르크의 기본 형태거든요. 마침 제가 한국에서 약물병동 퇴소자들이 함께하는 이화모임(매주 화요일마다 만나는 모임)을 운영 중이었어요. 이화모임은 마약중독 회복자 모임인데 자조모임 형태로 발전시켰터라, 이들을 중심으로 다르크를 운영하게 됐습니다.”

당시 일본 다르크는 일본 정부가 인정한 마약중독 회복 기관으로, 공공의 손길이 뻗치지 못하는 재활치료 분야의 빈틈을 메워오고 있었다. 일본 전역에는 70곳 안팎의 다르크가 있었고 한 곳에 적게는 3~4명, 많게는 50명까지 살았다. 사정이 어려운 다르크에는 기금을 모아 지원해줄 정도로 다르크간 교류가 활발했다. 오래된 호텔을 기증받거나 주택을 얻어 생활하는 등 시설 형태도 다양했다.

조성남 전 원장은 일본 다르크를 본떠 국내에 마약중독 민간재활치료시설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서울 다르크’였다.

서울 다르크 취약점은 민간에만 의존했다는 것

서울다르크 센터장은 조 전 원장이 부곡병원에서 치료했던 회복자 A씨가 맡았다. A씨는 부곡병원에서 입원해 치료받던 3년 동안 대학교 입학,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할 만큼 회복에 전력을 쏟았다. 조 전 원장은 “A씨가 사회로 돌아가면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게 안타까웠다”며 “마침 다르크를 만들려던 때라 A씨에게 다르크 센터장을 맡아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운영 예산은 일본 다르크에서 지원받았다. “당시 운영할 만한 자금이 없었어요. 일본다르크가 3천만원을 모금해서 전달해준게 기반이 됐죠. 당시 서울 목동에 보증금 1천만원에 70만원짜리 조그만 주택 1층을 빌려서 시작했어요. 방 3개에 4명정도 수용 가능했거든요”

어렵게 시작한 서울 다르크는 순탄하게 운영되는 듯했다. A씨가 정신보건사회복지사 자격을 얻으면서 그룹홈 인가도 받았고 서울시로부터 운영비 지원도 이뤄졌다. 초창기 입소자들의 입소비(당시 인당 15~20만원)와 기부금 등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운영해왔던 것에 비하면 재정적인 상황도 눈에 띄게 나아졌다.

그러던 중 2022년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다르크 운영을 A씨에게 오롯이 맡겼던 게 화근이 됐다. A씨의 알코올중독이 재발한 것. 그런데 마약중독환자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그를, 그 안에서 관리감독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다르크라는 조직 자체가 금 가기 시작했다.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이 지난달 21일 성남 분당의 한 사무소에서 경인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은 “회복자를 모델로 한 민관협력 재활치료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이 지난달 21일 성남 분당의 한 사무소에서 경인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은 “회복자를 모델로 한 민관협력 재활치료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

민간 운영하고 관리·감독은 공공 몫 되어야

이렇게 서울 다르크의 존폐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조성남 전 원장은 문제점을 이렇게 기억한다.

A씨에게 혼자 맡겨 둔게 잘못된 거 였어요. 자조모임을 매주 하는데 이 친구가 소홀해지는 게 눈에 보였는데.. 제가 그때 법무병원장 맡아서 공주로 내려가 서울로 올라오기가 힘들어지며 연락 빈도도 줄었죠. 처음에는 열심히 조직을 이끌어갔는데… 그래서 감독을 철저히 해야합니다.”

결국 서울다르크는 문을 닫았다. 그 즈음 공교롭게도 경기도와 경남 김해에 각각 다르크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경기다르크의 경우 마약중독에 대한 지역사회의 혐오와 편견에 부딪혀 운영이 쉽지 않았고, 올해 초 끝내 문을 닫았다.

다르크의 문제점은 ‘민간’에만 의존한 재활치료시설이라는 데서 비롯됐다. 운영 주체인 회복자는 분명 입소자의 재활을 돕고 제대로 감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회복자 역시 평생 관리해야 하는 환자의 범주 안에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같은 경험을 통해 조성남 전 원장은 민관이 협력해 재활치료시설을 운영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조성남 전 원장은 마약중독 재활치료시설 운영은 민간이, 관리감독은 공공에서 해야한다고 언급했다. 비록 서울다르크와 같이 실패사례가 있지만, 여전히 회복자가 마약중독환자를 돕는 활동가가 돼야 한다는 의견도 변함이 없다. 눈빛만 봐도 갈망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건 경험해본 이들만 갖는 노하우다. 실제로 정부 지정 마약중독 회복 시설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회복자를 센터장으로 두고 있다.

회복자는 경험 있기에 치료 전문가 자격 있다

“(비록 사건이 있었지만) 회복자를 중독치료의 전문가로 양성해야 합니다. 의료진, 상담가 등 전문가가 회복자가 될수는 없지만, 회복자를 전문가로 만들 수 있거든요. 회복자는 마약 투약 경험, 관련 지식이 있으니 재활센터에 꼭 필요한 사람이죠. 회복자를 활동가로 양성해 센터를 운영하되, 예산 등 전반적인 운영과 감독을 공공에서 개입해 지원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그는 공공이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는 기본 인프라가 구축되면, 병원과 재활시설, 자조모임 등 치료회복을 위한 네트워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조성남 전 원장은 다음달부터 서울 은평병원에 들어설 서울마약관리센터의 수장으로 다시 마약치료 전선에 선다.그는 이 곳에서 마약중독치료 네트워크를 실험할 계획이다.

재활치료시설 간 네트워킹이 필요합니다. 현재 민간의 그룹홈을 (공공이 지원하는) 재활센터로 만들고, 지역에 있는 의원급 병원과도 연계할 계획입니다. (마약중독자가) 지역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고 갈망 등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면 바로 은평병원으로 입원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거죠. 중심병원 하나를 두고 지역병원들이 연결된 하나의 의료공동체이죠. 세미나를 통해 중독환자 치료 노하우를 공유하고, 직원 및 전문가 양성 교육, 회복자 교육 시스템도 만들고 자조모임까지 공유하는 체계를 만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