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움직임과 그 한계


산림청 산하 경북 백두대간수목원
자연서식지 유사환경 야생성 길러
청주동물원 환경부 1호 거점 지정

예산·시설 한계 전면 개선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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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백두대간 수목원 호랑이숲 호랑이 야외 방사장 전경. 타 동물원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넓은 구역을 호랑이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호랑이는 다른 동물원에 전시된 호랑이에 비해 더 활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2024.5.28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국내 대다수 동물원이 동물을 비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전시하는 과거 형태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일부 동물원에서 종 보전·연구를 주 역할로 내건 실험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 "공기도 맑고 탁 트여서 또 오게 될 것 같아요."

지난 5월 28일 경북 봉화군 춘향면사무소에서 40여분 버스를 타고 가자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나왔다. 이어 수목원 내 소형버스(트램)로 20분 더 오르자 눈앞 산자락 사이로 '호랑이숲'이 펼쳐졌다.

산림청 산하인 백두대간수목원은 지난 2017년 멸종위기종인 백두산호랑이 보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수목원은 자연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인 호랑이숲을 조성해 종의 야생성을 지키고 보전을 위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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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백두대간 수목원 호랑이숲은 하루 평균 4시간씩 2쌍의 호랑이가 교대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사육사는 당일 호랑이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 야외 방사장에서의 활동이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면 내보내지 않는다. 2024.5.28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이날 만난 11살 쌍둥이 남매 호랑이는 쉬지 않고 드넓은 풀숲에서 뛰어놀았다. 쓰러져 허공을 응시하는 특징을 가진 다른 동물원의 호랑이들과 달랐다. 관람객이 수목원 호랑이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 소리칠 때면, 상주하는 안내원이 동물의 휴식을 위해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동물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관람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효과로 이어졌다. 수목원 방문객 남성일(40대)씨는 "실내동물원에서 무기력한 동물을 보면 안타까웠는데, 이곳은 트인 광경이라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청주동물원 역시 전시와 관람이 아닌 종 보전을 핵심 가치에 두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5월 청주동물원을 국내 1호 거점동물원으로 지정했다. 종 보전 활동, 야생동물 관리 경험 등에 비춰 중부권 거점동물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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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백두대간 수목원 호랑이숲은 하루 평균 4시간씩 2쌍의 호랑이가 교대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사육사는 당일 호랑이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 야외 방사장에서의 활동이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면 내보내지 않는다. 2024.5.28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청주동물원에서 이같은 역할을 잘 보여주는 건 동물별 설명푯말이었다. 지난 5월 29일 찾은 청주동물원의 얼룩말사 앞에는 '(멸종)위기근접'이라는 표식과 함께 '재미로 사냥하는 사람들과 서식지 파괴로 개체수가 줄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시 기능 이전에 종 보전에 대한 인식을 방문객들과 공유하자는 취지다.

야생동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전 적응을 돕는 '방사훈련장'도 눈에 들어왔다. 취재진이 찾은 이날 천연기념물 산양이 야생적응훈련에 한창이었다. 산양뿐 아니라 개체 수가 부쩍 줄어드는 등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을 지키기 위한 동물원의 다양한 역할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동물들을 키우고 전시하는 것은 종 보전과 관련이 없다

■ 계속되는 실험 속 "동물원 한계 명확" 지적도

전시 일변도에서 탈피하기 위한 일부 동물원의 실험이 이어지지만, 종 보전과 동물연구 등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하기엔 한계가 크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개별 동물 생태계 등 기초 연구 조사가 턱없이 부족하고, 야생과 동물원의 환경 차이가 근본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주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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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동물원 내 물새 방사장은 타 동물원의 물새 방사장과 비교해 넓고 고도도 높은 편이다. 관람객들은 이곳 방사장에 직접 접근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망원경 등으로 관찰한다.2024.5.29./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이항(한국범보전기금 대표)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종 보전 시설이라면 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배경과 위기종이 야생에서 보전되고 보호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하는 게 역할"이라며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의 경우 기존 동물원에서 넓은 공간을 확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최태규(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는 "생태계 보전은 기존 동물이 야생에서 잘 살 수 있는 환경에 초점을 두고 진행해야 한다"며 "국내 동물원들이 야생 적응에 실패한 동물들을 키우고 전시하는 것은 종 보전과 관련이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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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동물원 내 얼룩말 방사장에 얼룩말과 미니말이 함께 있다. 청주동물원은 사회적 동물인 얼룩말의 습성을 고려해 크기가 비슷한 다른 종류의 말을 합사하기로 결정했다. 2024.5.28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기존에 자리잡은 동물원의 경우에는 시설 확보, 예산 투입에 어려움이 있어 변화가 녹록지 않다.

광주 우치공원 동물원 관계자는 "공원관리사무소에서 공원과 동물원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다보니 예산을 집중해서 쓰기 어려워 가장 열악한 부분부터 순차적으로 바꿔나가는 상황"이라며 "위치상 도심공원법 규제도 받는 탓에 운영에 한계가 더 크다"고 말했다.

청주·봉화/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조수현·김지원·목은수 기자(이상 사회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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