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오전 3시 20분
기상청은 파주에 호우주의보를 발령했다. 전날인 16일, 이미 호우예비특보가 예고돼 파주시청 자연재난예방팀을 비롯해 안전총괄과, 주택가, 하수도과, 농업정책과 등 유관부서들 모두 17일 새벽 상황실에 모여 비상근무 중이었다. 재난예방팀 강재경 팀장과 박용 주무관은 구름 레이더를 주시했다. 이제껏 본 적 없던 구름의 모양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까지 총 6번의 예비특보를 겪어왔던 강재경 팀장도 가로로 길게 늘어진, 검정색 구름이 파주 하늘을 덮고 있었다.
장마철마다 구름떼를 관찰해온 박용 주무관도 검정색 구름은 처음 마주했다. 구름의 색깔은 구름 속 강수의 강도를 나타낸다. 0~0.5mm는 파랑, 1~4mm는 초록, 5~9mm는 노랑, 10~25mm는 빨강, 25~60mm는 보라, 70~90mm는 짙은 남색이고, 100mm 이상이 검정색이다. 그간 강수의 강도로 봤던 구름의 색은 보라색까지였다.
문제는 당혹스러운 색깔 만큼이나, 구름의 모양은 더 낯설었다. 그동안 파주에 비를 뿌린 구름은 대개 인천, 김포에서 생성됐다. 완만한 대각선 모양으로 서서히 고양을 지나 파주를 거쳐 연천, 포천으로 향하며 태백산맥에서 소멸하는 것이 통상적인 이 지역 비구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번 구름은 달랐다. 파주 바로 옆 서해에서 구름이 생성됐고, 각도가 아주 날카로운 대각선 모양으로 정확하게 파주를 향해 있었다. 박용 주무관은 당시 구름을 이렇게 기억했다.
“구름이 날이 선 대각선 모양인 건 이례적이었습니다. 구름이 정확히 장단면 등 파주 북부만 치고 가게끔 모양이 형성돼 있었어요.”
7월 17일 오전 4시 10분
화살 같은 검은 구름떼가 빠르게 파주를 근접해왔다. 호우주의보는 호우경보로 전환됐다. 비는 더욱 거세져 시간당 최고 44mm가 기록됐다. 이정도 강수량이라면 차량 운행시 와이퍼 속도를 최대로 놓아야 겨우 운전이 가능한 수준이다. 중점 시설 위주로 상황판단 회의를 거쳐 부서별로 맡은 구역 예찰을 돌았고, 산책로·야영장 등 위험 지역엔 계속 대피 방송을 송출했다. 매뉴얼은 문제없이 작동했다. 딱 평소 장마철 정도만 비가 왔다면 말이다.
7월 17일 오전 6시
진동면, 장단면 파주시 읍면동 곳곳에서 자연재난예방팀으로 기록을 보내왔다. 시청에선 고작 시간당 4mm 정도밖에 관측되지 않았지만, 당시 진동면의 시간당 강수량은 66mm, 파평면 82.5mm, 장단면은 90mm가 기록됐다. 임진강 근처 기상청 측정기에는 시간당 100mm가 넘는 기록도 나왔다. 예방팀 전원이 여지껏 처음 보는 수치들이었다.
강재경 팀장을 비롯한 팀원 모두 ‘재난’임을 직감했다. 50년 빈도로 예측해서 설계한 하수도는 최대 70mm까지 감당할 수 있게끔 설계됐다. 90mm 넘는 비가 1~2시간만 내려도 그 많은 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같은 시각, 파주시 법원읍 가야3리의 김선주 이장은 동네 주민 송대석씨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이장님 밥 먹고 있었는데 퍽 소리가 나서 보니까 집 둑이 무너져서, 흙이 벽을 뚫고 들어왔어요. 냉장고도 밀리고...”
법원읍은 상류 지역으로 그간 상대적으로 폭우 피해가 덜했던 지역이다. 90년대 파주에서 일어난 세 차례 홍수 피해는 대부분 물이 많이 유입됐던 임진강 하류 지역에 집중돼 피해를 크게 받은 적이 없었다. 특히 큰 물난리가 났던 1999년 당시에도 시간당 60mm가 왔었다. 하지만 이번 폭우는 규모가 달랐다. 시간당 68.5mm가 쏟아졌는데 유독 상류에 집중됐다. 특히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쏟아진 게 화근이었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났고 토사가 민가 곳곳으로 쓸려 내려왔다.
7월 17일 오전 8시
한차례 폭풍 같은 빗줄기가 파주를 훑고 갔다. 출근 시간에 이르자 간신히 진정됐다. 적성면 등 일부 지역에선 아직 시간당 20mm 정도 비가 내리긴 했지만 대부분 지역은 소강상태가 됐다. 다행히 해가 나면서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풀어졌다. 오후 1시를 기점으로는 호우경보도 해제됐다.
강재경 팀장은 관계 부서 직원들과 함께 복구 작업에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차례 비가 쓸고 지나갔으니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7월 17일 오후 4시 10분
잦아들었던 비구름이 다시 파주 북부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기상청은 또다시 호우주의보를 발효했다. 시간당 강수량은 파평면 24mm, 조리읍 21.5mm, 진동면 19mm 등 비구름이 재차 꿈틀대기 시작했다.
박용 주무관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미 새벽에 내린 비로 파주 북단에 주거지역으로 향하는 당동IC가 침수됐고 복구작업을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주무관은 가용할 수 있는 배수펌프를 활용해서 당동IC에 고인 물을 퍼냈다. 오후 5시를 기점으로 IC 통행은 재개됐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7월 17일 오후 8시 30분
장단면, 진동면에 시간당 4~50mm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시각 기상청에선 다시 호우경보를 발령했다. 새벽 내내 폭우로 인한 피해 복구가 안 된 지역들은 또 쏟아지는 비에 상황이 악화됐다.
열심히 물을 퍼낸 당동IC도 다시 비에 잠겼다. 재차 통제를 시작했다. 강재경 팀장은 곳곳에서 들어오는 피해 신고를 파악하며 관계 부서에 안내하기 바빴다.
7월 18일 오전 0시
하루를 꼬박 시청에서 비상근무를 해야 했다. 자정이 넘어서도 파주시에는 500여 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는데,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하천 범람이었다. 파주시 하천은 서해안의 물때에 따라 달라진다. 파주시에서 세 차례 큰 홍수가 발생했던 1996, 1998, 1999년 모두 많은 비가 오는 상황에 밀물까지 겹쳐 하천이 범람했다.
다행히 이 시기에 물때는 저점이었다. 당시 근무했던 파주시 공무원들은 입을 모아 “운이 좋았다”라고 말한다. 하천과 강이 낮은 수위 상태였기 때문에 거세게 오는 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7월 18일 오전 3시 50분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경보들이 울리기 시작했다. 하천 홍수 범람 경보였다. 아무리 낮은 수위의 하천도 수 시간째 들이붓는 폭우로 불어난 수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문산천, 갈곡천, 동문천, 놀노천 인근에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파주시는 이 시간을 기점으로 비상 3단계를 발령했다. ‘비상 3단계 격상’은 자연재해를 의미한다. 시는 가용 인력을 최대한으로 동원했다. 본청 뿐 아니라 각 읍면동까지 나서 주민들의 대피 지원에 나섰다.
박용 주무관에겐 새벽 6시까지 당동IC의 물을 퍼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곳이 막히면 파주의 물류 차들의 발이 묶인다. 시민들의 출퇴근 길도 마찬가지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비가 내리는 양보다 더 빨리 배수펌프가 IC에 찬 물을 빼야 했다. 박 주무관과 용역 업체들은 모두가 달려들어 물을 퍼냈다.
7월 18일 오전 6시
비는 다시 시간당 10mm 이내로 떨어졌다.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당동 IC도 통행이 재개됐다. 그러나 안심할 순 없었다. 모두 언제 또 비가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틀에 걸친 폭우로 파주시내 피해신고는 수백건에 달했다. 열심히 대비했지만, 결국 자연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통제, 대피, 배수 외엔 없었고 그마저도 역부족이었다.
오후 1~2시쯤이 돼서야 비가 완전히 그쳤다. 해가 났지만 파주시는 비상 3단계를 풀지 않았다. 이전같으면 좀 더 빨리 풀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누구도 더 이상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후 4시가 되자 기상청은 기상특보 발효를 해제했다. 이에 맞춰 파주시도 비상 3단계를 해제했다.
17일 오전 4시부터 18일 오후 4시까지 36시간 동안 벌어진 두 차례의 폭우로 파주시는 도로 등 공공시설 피해 212건이 발생했고, 주택, 차량 침수 등 사유 시설 661건이 발생했다. 그 피해액만 69억 1천8백여만원이 넘었다.
악몽같던 여름밤의 폭우는 그쳤지만, 이상기후가 남긴 상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