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절 딛고 일어난 나의 고향… 'Blue Skies' 같은 희망의 도시" 


계산동 출생… 어릴때부터 사교성 좋아
아토피 앓아 공기 맑은 검단으로 이사
"너른 논 지나 등교" 현재 건물들 가득
서구영어마을 다니며 영어·음악 친숙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 듣고
재즈로 진로 결정… 서울예대 보컬 전공
자작곡만으로 채운 1집 '한국대중음악상'
2집까지 2년 연속 수상… '비범한' 성공
"싱어송라이터 색깔도 갖춘 게 장점인듯"
내달 2일 새앨범, 11·12일 버텀라인 공연




'한국 재즈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이름'.

올해 2월 열린 제2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 보컬 음반' 수상자로 재즈 보컬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김유진의 2집 앨범 'Extraordinary'를 선정하며 그를 소개한 문구다. 김유진은 지난해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도 1집 앨범 '한 조각 그리고 전체'로 '최우수 재즈 보컬 음반'을 수상했다.

이 부문에서 2년 연속 수상은 이례적이다. 1년 남짓한 시간을 사이에 두고 나온 1집과 2집 앨범 모두 자작곡으로 채웠다. 이 또한 재즈씬에서 신선한 시도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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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재즈클럽 버텀라인에서 만난 재즈 싱어송라이터 김유진.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앞선 정식 데뷔 앨범인 1집 '한 조각 그리고 전체'에 대한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 이유는 '이색적이다 못해 파격적이어서 패기 넘치는 신인의 당찬 출사표라 할 만하다'는 평가였다. 그의 2집 앨범 타이틀 'Extraordinary'(비범한 또는 특출난이란 뜻)처럼 남다른 등장이었다.

김유진을 만나기 전까진 '파격'이란 낱말로 그의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실제로 만나고 보니 친근함이 더 앞서는 뮤지션이었다. '아임 프롬 인천' 인터뷰 장소로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클럽인 신포동 '버텀라인'을 먼저 제안한 것도 그였다. 한국 재즈에서 변방에 가까운 인천이지만, 그 안에서 비범하면서도 친근하게 존재하는 버텀라인 같은 장소가 김유진이 이야기하고 싶은 'Extraordinary'의 진짜 의미인 듯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13일 오후 버텀라인에서 만난 김유진은 'Extraordinary'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2집 제목이자 타이틀곡인 'Extraordinary'는 19살 때부터 써온 곡이었어요. 처음에는 '내가 비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노래를 작업했는데, 곡을 쓰다 보니 '나는 이미 특별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어요. 나는 이미 하나뿐이고 그것만으로 이미 특별하다. 우리는 이미 완벽하고 이 존재 그대로 소중하다. 우리가 각자 갖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 거기서 오는 가능성,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노래예요."

김유진 1집
김유진 1집 '한 조각 그리고 전체'(왼쪽), 2집 'Extraordinary'.

김유진은 1997년 인천 계양구 계산동 중앙산부인과의원에서 태어났다. 1994년 개원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김유진의 출생 병원 연혁이 알려주는 것처럼 오래되고 안정된 계양구의 도심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 풍경도 세세히 기억하고 있다. 동네 놀이터를 주름잡던 사교성이 아주 좋은 아이였다.

"계양구 작전동에 있는 삼천리 아파트(1988년 준공)에 살았어요. 어머니와 함께 계산국민체육센터에서 수영이나 스포츠댄스를 배우고, 계양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던 기억이 오래 남아있어요. 그리고 작전동 풍림아이원 아파트(2003년 준공)로 이사해 인근 화전초등학교로 입학했어요.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친구에게도 곧잘 말을 걸고, 금방 같이 놀고, 모르는 친구 집에 가서 놀기도 하던 아이였어요. 사람 사귀길 좋아하는 지금 저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계산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계양구 옛 시가지는 남동쪽으로 부평, 북서쪽으로 서곶(현 서구), 북동쪽으로는 김포와 연결된 지역이다. 애초 '북구'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행정구역을 이뤘던 계양, 부평, 서곶은 1988년(서구)과 1995년(계양구, 부평구) 차례로 분리됐다.

1960년대 말 경인고속도로 개통과 수출공단 4단지(부평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계산동 일대는 단독·다세대와 연립주택이 대규모로 들어섰다. 김유진의 추억이 깃든 계산1동, 계산2동 지역은 1980년대 초반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지금과 같은 옛 시가지 모습을 갖췄다.

1990년대 들어 옛 시가지 동쪽인 현 계산4동과 작전동 일대 계산택지개발사업이 대대적으로 추진되면서 구청과 경찰서 등 주요 공공기관이 이 지역으로 이전하는 등 계양구의 중심지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1993년 착공해 1999년 개통한 인천도시철도 1호선은 옛 시가지를 지나는 노선(작전역~경인교대입구역~계산역~임학역)으로 건설됐다. 인천 1호선은 부평에서 계양구로 향하며 계양대로를 따라 부평삼거리에서 크게 회전하며 경명대로를 타고 북쪽(계양동)으로 이동한다.

당시 인구가 급성장하던 계산4동 지역이 아닌 주민들의 '경로 의존성'에 의해 옛 시가지를 지나는 노선을 택한 것이다. 도시개발 시기와 다소 어긋난 도시철도 노선 건설이 옛 시가지의 쇠락을 조금이나마 늦추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계양구의 각 지역이 과거 또는 현재의 '중심지'였음을 뽐내는 듯 신·구 시가지의 남북을 잇는 주요 도로들의 도로명은 각각 '주부토로' '계양대로' '장제로' 등 모두 계양구의 옛 지명이거나 현 지명이다.

부모님은 김유진이 앓던 아토피성 피부염을 치료하고자 서구 검단지역으로 이사했다. 김유진은 검단신도시가 조성되기 전인 2000년대 초반 검단을 공기가 맑고 자연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기억했다. 너른 논을 지나 검단초등학교와 능내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지금은 그 길가가 모두 빌라나 아파트 상가로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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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영어마을

"검단에서 살 때 다니던 교회의 찬양단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래와 피아노를 좋아하게 됐어요. 초등학교 때 엄마에게 부탁해서 검단에 있는 서구영어마을(GEC)에 다닌 것이 결정적이었어요. 학기 중에 매주 수업을 다니면서 원어민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영어와 친해졌고요. 방과 후 수업에서도 '팝송으로 영어 배우기' 같은 수업을 꼭 들었어요. 방학 때는 역시 검단에 있는 인천영어마을(ICEV)에서 4박 5일 일정의 영어 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캠프에는 인천 전 지역에서 친구들이 왔거든요. 다양한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즐기고,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가치관은 이러한 경험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당시 불렀던 영어마을 교가, 가사, 율동까지 기억해요. (웃음)"

김유진
아주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길 좋아한 유치원 시절 김유진(가운데). /김유진 제공

김유진은 능내초등학교에서 졸업사진까지 찍고, 경기도 양주로 이사했다가 고등학교 때 김포로 왔다. 재즈와의 첫 만남은 중학교 2학년 때다. 그 장면도 정확히 기억난다고 했다. 김유진의 어머니는 주방에서 라디오를 틀어 놓고 설거지하고 있었는데, 그때 라디오에서는 노라 존스(Norah Jones)의 'Don't Know Why'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노래를 듣고 곧바로 컴퓨터를 켜서 라디오 DJ가 말해준 가수 이름을 네이버에서 검색했더니 재즈 뮤지션이라고 나오더라고요. 재즈가 뭐지? 그때부터 재즈 명반들을 찾아 듣고, 악보를 찾아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재즈 뮤지션을 꿈꾸게 됐어요. 이전에는 클래식 피아니스트, 아이돌, 작사가, 작곡가 등 음악 안에서 꿈이 계속 바뀌었는데, 재즈로 결정하게 된 것이죠."

김유진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9살 김유진. 아직 재즈와 만나기 전 학원 연주회. /김유진 제공

2016년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보컬 전공)에 입학했다. 지난해에야 뒤늦게 졸업했다. 대학 입학 후부터 1집을 발매한 2022년까지의 시기를 김유진은 "나답게 열심히 방랑했다"라고 요약했다. 또래 뮤지션보다 무대 경험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실용음악과 안에서도 모든 악기를 통틀어 재즈를 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그래서 소수끼리 뭉쳐 같이 클럽에서 합주도 해보고 웨딩 연주와 호텔 라운지 연주를 하면서 스무 살 때부터 차근차근 무대를 경험했어요."

김유진은 자작곡으로만 음반을 냈다. 영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노랫말을 쓰고 있다. 8곡을 수록한 1집 '한 조각 그리고 전체'는 각자 개인이 한 조각이고, 그 조각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메시지를 앨범 전반에 담고 있다.

9곡을 수록한 2집 'Extraordinary'의 열쇳말은 '다양성'이다. 음악적으로도 재즈의 문법 안에서 팝, 록, 라틴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언어를 융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년 연속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 보컬 음반에 선정된 이유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할까.

"처음에는 내가 왜 이 상을 받았는지 몰라 고민했어요. 너무 쟁쟁한 후보들이 있었으니까요. 제 장점을 알아야 그 장점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계속 고민했는데, 결국 제 자작곡으로 노래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재즈 뮤지션의 데뷔 앨범은 주로 재즈 스탠더드를 자기만의 색깔로 해석하는 작업이었거든요. 저는 재즈적인 색깔을 갖고 있으면서도 싱어송라이터적인 색깔도 갖고 있는 점이 제 강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김유진
지난 6월 벨로주 홍대에서 연 단독 공연 모습. /촬영 Abi raymaker, 김유진 제공

오는 10월 2일 발표할 예정인 새 앨범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1집 이후 해마다 새 음반을 발표하는 부지런한 뮤지션이다. 지금까지 낸 음반을 모두 자체 제작한 인디 뮤지션이기도 하다. 이번에 발매하는 새 앨범은 정규 앨범은 아니다.

1집과 2집에서 우리 모두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면, 새 앨범은 "조금 더 사적이고 조금 더 팝적인 음악"이라고 한다. 이번 앨범도 모두 자작곡으로 채웠다. 10월 11일과 12일 버텀라인에서 앨범 발매 기념 공연도 개최하기로 했다. 관객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공연으로 기획하고 있다.

김유진은 '인천' 하면 어떤 노래가 떠오를까. 남진의 '님과 함께'라는 답이 돌아왔다. 검단에서 살던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면서 부르던 노래라고 한다. 지금은 잃어버린 검단의 옛 풍경에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같은 가사를 절로 흥얼거릴 수 있었을까. 오래된 재즈 명곡 'Blue Skies'에서도 인천을 떠올렸다.
아임프롬인천 김유진
기사 전문 온라인

"앞으로 내 삶에 먹구름은 없을 거고, 파란 하늘만 있을 거라며 희망을 품고 부르는 노래인데, 또 그렇게 밝지만은 않은 노래예요. 인천이란 도시가 바닷가이고, 전쟁도 겪었고, 그런 힘듦이 많은 도시라는 느낌이 있어요. 그걸 딛고 일어나는 도시, 그래서 지금의 밝음이 있는 도시라는 생각에 'Blue Skies'를 떠올렸어요."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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