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형 유산 이어갈 정책 필요
정치권 등 각계 '계승·발전' 한뜻
공무원에 수익 창출 시 인센티브
독립채산제 등 단기적 처방 조언
글로벌체육진흥센터 추진 움직임
타지역 유산사업 검토 도입 주장도
2014 인천아시안게임의 유산을 계승하고, 뒤늦게나마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시민, 체육계, 전문가, 공무원 등 각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를 치르고 남은 경기장 관리부터 지역사회 전반에 뿌리내릴 기념사업까지 추진하려면 더욱 세밀한 계획이 설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10주년'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관심 밖인지는 '또 하나의 사회'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살피면 금방 알 수 있다.
지난 19일 주요 SNS인 엑스(옛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서 '인천아시안게임' 또는 '인천AG'를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인천아시안게임 10주년에 관한 글은 올해 기준 한 건도 찾을 수 없었다. 일부 사용자가 지난 10일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10주년 기념 열린음악회' 관람권을 구하거나 경기장 활용도에 불만을 나타내는 게시글 정도만 보였다. 유튜브 검색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아시안게임 경기장 등 유형의 유산은 물론 무형의 유산조차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경기장 활용·기념사업이 핵심"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을 비롯한 경기장 활용은 수익 창출이 우선이라는 전문가가 많다. 대형 경기장은 수익을 내기 위한 노력이 없으면 무조건 운영 적자가 나는 구조인 만큼, 지속적으로 새로운 대회를 유치하는 등 '세금 먹는 하마'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문현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경기장 활용에 나서도록 하려면 반드시 수익 창출에 따른 인센티브가 뒤따라야 한다"며 "그러한 방식이 불가능하다면 해외 사례들처럼 민간 위탁업체에 넘겨 각 경기장을 일종의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매년 경기장 운영 성과를 공개해야 한다"며 "1년 동안 경기장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시민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지, 경기장 활용을 통해 정주 여건은 얼마나 좋아졌는지 등을 측정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단기적 처방을 조언했다.
지속적 기념사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인천시체육회 사무처장으로 일한 김도현 인천시체육인회 회장은 "올해가 10주년인 만큼 대회 개최와 원활한 운영에 힘썼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10주년 기념사업을 치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열린음악회 같은) 일회성 행사보다는 행사 자체의 의미를 돌아보고, 이를 발판 삼아 더 나아가는 자리가 지금이라도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인천아시안게임을 제대로 기억하고, 남겨진 경기장을 활용해 후진을 육성하는 등 인천의 체육자산을 이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지역 유산 사업은?
한국에서 대규모 국제 스포츠 대회 유산 사업의 기준이 되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경우, 정부가 이듬해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을 설립해 체육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서울올림픽 잉여금 3천110억원 등을 기반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조성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2022년 10월 서울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등 국내외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서울올림픽 레거시 포럼 2022'를 개최하는 등 현재까지도 유·무형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경우 2019년 재단법인 2018평창기념재단을 설립해 유산·기념사업, 동계스포츠 저변 확대와 발전사업, IOC 협력사업, 동계올림픽 경기장 운영 지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강원 평창군 차원에서도 2021년 평창유산재단을 설립해 학술 연구와 콘퍼런스 등 MICE 산업 육성, 평화테마파크 운영, 스포츠 전문 교육, 올림픽·평화도시 간 교류 협력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은 대회 개최 직후 감사원이 조직위원회에 약 187억원 규모 법인세 납부 처분을 내리면서 잉여금 확보가 늦어졌다. 조직위의 법인세 반환 청구 소송이 이어졌고, 대법원 확정 판결로 조직위가 승소하면서 인천시가 잉여금 가운데 168억원을 최종적으로 확보한 것이 지난해 6월이다. 아시안게임 잉여금이 묶인 기간, 인천시는 유산사업 추진도, 관련 연구나 정책 수립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체계화해야
인천아시안게임 유산사업을 체계화할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역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시 재정으로 편입된 인천아시안게임 잉여금 168억원은 각각 서구와 미추홀구에 조성할 다목적체육관 건립에 투입한다. 이를 두고 인천아시안게임의 유산을 제대로 계승하는 정책 방향이 맞느냐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
이와 달리, 지역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인천아시안게임 유산 계승·발전사업을 체계화하고, 지역 스포츠 발전 방안을 연구하는 가칭 '인천글로벌체육진흥센터' 설립 추진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센터를 통해 인천아시안게임 유치의 결정적 역할을 한 특화사업이자 아시아 스포츠 약소국 지원사업인 '비전 2014 프로그램' 등 스포츠 국제 교류를 재개하자는 구상도 있다.
오랜 기간 인천아시안게임 관련 업무에 몸담았던 한 인천시 공무원은 "그동안 법인세 반환 소송 등 여러 가지로 아시안게임 유산사업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대회 10주년을 맞았음에도 결국 인천시 차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조직위에 파견돼 의무반도핑부장을 맡았던 인천시의회 박판순(국·비례) 의원은 "인천시가 유산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것은 제약 조건이 많다"며 "국민체육진흥공단, 2018평창기념재단처럼 인천아시안게임도 유산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을 설립해 전문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박경호 차장(문체부), 김희연·변민철 기자·송윤지 수습기자(사회부), 김용국 부장·조재현 차장(사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