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 뭉쳐 우승까지 '첫 전국제패'… "아이들 꿈, 차근차근 이뤄가는 중"
전남 광양출신 장신 공격수… '무릎' 발목잡혀 29살에 내려놓은 선수생활
10년 넘게 유소년 가르치며 '지도자의 조언 받아들이는 태도' 적극 강조
"K리그 유스팀 활성화에 현대 축구 끊임없이 공부… 유망주 배출 도움"
대한축구협회(KFA)는 우리나라 축구의 미래인 유소년 선수들을 육성하고자 2009년부터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토너먼트 대회의 일정 성적 이상을 요구하는 입시 요강 탓에 어쩔 수 없이 창의적인 축구 대신 이기기 위한 전술을 펼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서다.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K리그 유스팀과 고교, 클럽 64개 팀은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에 참가해 고등 축구팀의 최강을 가린다.
지난 8월 경북 안동에서 열린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에선 인천유나이티드 U-18팀인 인천대건고등학교 축구부가 결승에서 평택진위FC U-18을 1-0으로 물리치고 왕좌에 올랐다. 인천대건고 축구부 최재영(41) 감독은 최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하나로 뭉쳐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인천대건고가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에서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과 2018년 이 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최재영 감독은 "이전 대회 성적이 좋지 않아 아이들과 함께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해보자'고 다짐했다"며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나 코칭 스태프가 하나의 팀으로 똘똘 뭉쳐 우승이라는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최재영 감독은 전남 광양 출신이다. 그는 광양제철초·중·고를 차례대로 졸업하며 이른바 '전남드래곤즈 성골 유스'로 성장했다. 대학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쳐 K리그 팀인 부천SK(현 제주유나이티드) 입단까지 성공했으나, 그의 프로 생활을 녹록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좋지 않았던 무릎은 선수 생활 내내 그를 괴롭혔고, 공격수인 최재영 감독의 최대 장점인 스피드를 빼앗아 버렸다. 실업리그 선수로 뛰면서 재기를 노렸지만, 4번째 무릎 수술을 받은 최재영 감독은 29살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축구화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무릎이 너무 아팠던 데다, 장점마저 사라진 선수였기 때문에 현역으로 더는 활동할 수 없게 됐다"며 "인천남고등학교 코치 자리가 공석이라는 얘기를 듣고 2012년부터 이곳에서 유소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천에 자리잡게 됐다"고 했다.
인천남고에서 성실한 태도를 인정받은 그는 이듬해부터 인천유나이티드 U-12팀 코치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생각도 했지만, K리그 유소년팀의 시스템을 배워보고 싶어 코치를 맡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결정은 최재영 감독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됐다. 3년 간 U-12팀 코치를 역임한 그는 2017년부터 인천대건고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고, 2021년 감독으로 부임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최재영 감독이 10년 넘게 유소년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지도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키가 190㎝가 넘는 장신 공격수였지만, 지도자들이 나에게 매번 적극적으로 가르치던 헤딩은 기피하는 선수였다"며 "당시에는 헤딩을 잘 못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프로 무대에 와서 보니 나의 착각이었고 선생님들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어 "키가 큰 탓에 나를 데려가는 팀은 적극적인 공중볼 경합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며 "학창시절에 제대로 연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쟁력이 없었고, 프로 무대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담담히 설명했다.
이 때문에 최재영 감독은 아이들이 강점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더 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선수 생활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술은 반드시 익혀 성장할 수 있게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인천대건고에서 뛰었던 김보섭·민성준(인천유나이티드)이나 이호재(포항스틸러스), 천성훈(대전하나시티즌), 정우영(FC 유니온 베를린) 등은 모두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춘 선수들"이라며 "처음에는 하기 싫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이고 이를 수정할 수 있어야만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토대로 그는 프로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는 선수를 만들기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획일화된 전술 속에 아이들을 뛰게 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지만, 프로 무대에서는 도태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재영 감독은 "유소년 단계에선 비슷한 나이 대의 선수들끼리만 실력을 겨루지만, 프로 무대에선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뿐 아니라 외국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야만 감독의 선택을 받아 시합에 나설 수 있다"며 "감독이 요구하면 어느 포지션에서도 뛸 수 있는 선수를 만들기 위해 고교 축구에서 최대한 다양한 포지션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대건고 축구부는 K리그 유스팀 소속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K리그 유스팀이 활성화하면서 양민혁(강원FC)이나 윤도영(대전하나시티즌) 등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선수들도 프로 무대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최재영 감독은 "K리그 유스팀이 활성화하면서 지도자들도 항상 새로운 전술이나 기술에 대해 공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현대 축구를 따라가면서 아이들을 육성하다 보니, 뛰어난 선수들이 배출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인천대건고 축구부에도 이준섭이나 한가온 선수는 앞으로 프로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꿈'을 묻는 질문에 최재영 감독은 "거창하게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는 매일 정해 놓은 것을 달성하면서 차근차근 성장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프로에 입단했을 때만 하더라도 커다란 목표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쳤다"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매일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보면 마지막에는 최종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항상 강조한다"고 했다.
최재영 감독은 "구단 등 여러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인천대건고 축구부의 첫 '전국제패'를 달성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도 좋은 성적과 함께 아이들과 필드 위에서 더 나은 경기를 해 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