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구매 장난감돈 그냥 받아
상황 설명하자 "깜빡 속아" 놀라
현금거래 많고 손 바빠 사기 취약
"훨씬 정교…" 이미 위폐 경험도


가짜지폐
가짜지폐를 가지고 지난 28일 찾은 성남 모란시장. 2024.9.28 /김지원기자 zone@keyongin.com

지난달 28일 오전 수원 팔달구 남문시장. 손님을 맞느라 분주한 한 떡집에서 5천원어치 떡을 고른 뒤 만원권 지폐를 보여주자 떡집 주인 서모(50대)씨는 스스럼없이 지폐를 받아들고 조끼주머니에 넣으려 했다.

취재진이 해당 지폐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보라고 하자 서씨는 "무슨 일이냐"며 골똘히 지폐를 쳐다봤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서씨에게 취재 상황임을 설명하며 가짜지폐라고 하자 "깜빡 속았네"라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수억원대 원화 위조지폐가 사기 행각에 동원되는 등 통화 위조 문제가 뜨거운 사회문제로 떠올랐지만 현금 거래가 활발한 전통시장은 여전히 위조지폐 범죄에 취약한 것으로 확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주한 분위기에 고령층 상인의 비율이 높다는 시장의 특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상인들이 위조지폐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시피 해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실제 경기지역은 물론 전국 곳곳 전통시장에서 위조지폐 사기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설 명절을 앞둔 지난해 1월 한 20대가 인터넷에서 구매한 컬러프린터기를 활용, 5만원권 100여장을 위조해 광명 내 전통시장에서 사기행각을 벌이다 적발됐다. 또 지난해 8월과 12월에는 대구와 청주의 전통시장에서 5만원권 위조지폐로 물건을 구매한 30대와 60대가 각각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경인일보는 온라인 마켓 등지에서 '장난감 돈', '페이크 머니'라고 검색해 구매한 5천원, 1만원, 5만원권 가짜지폐를 가지고 지난 주말 경기도 내 전통시장 몇몇 곳을 찾아가 봤다. 구매한 지폐 중 일부는 품질이 좋지 않아 가짜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지만, 진폐에 버금갈 만한 프린팅과 크기·질감을 가진 것도 있어 가뜩이나 손이 바쁜 시장통에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속을 위험이 커 보였다.

 

가짜지폐
지난 28일 찾은 수원 남문시장. 골목 하나를 돌아 청과물 가게에서 만난 70대 상인 이모씨에게 장난감 지폐 여러장을 보여주자 “구분이 쉽지 않다”며 놀란 모습을 보였다. 2024.9.28./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수원 남문시장뿐 아니라 이날 성남시 중원구 모란시장에서 만난 다수의 상인들도 장난감 지폐를 보고 가짜인 것을 쉽사리 알아차리지 못했다.

참기름과 고춧가루 등을 파는 한 방앗간 주인에게 물건 구매 의사와 함께 가짜지폐를 보여주니 의구심없이 지폐를 쥐어들려 했다. 취재 상황을 설명하자, 해당 상인은 여러 손님을 상대하는 분주한 상황에서 일일이 지폐 진위 여부를 확인할 여력이 없다고 전했다. 다른 상인들도 대부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이미 위조지폐를 경험한 상인도 만날 수 있었다. 모란시장에서 통닭을 파는 김모(40대)씨는 몇 년 전 한 포장 손님이 건넨 지폐가 의심스러워 진짜 돈이 맞냐고 물었더니 대답 없이 도망간 적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손님이 가고 난 뒤 자세히 살펴보니 가짜지폐였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날 취재진이 준비한 가짜지폐를 본 뒤 "당시 내가 받았던 위조지폐는 이것보다 훨씬 정교했다"며 "이 정도만 돼도 나이 든 상인들은 다 속을텐데 열심히 일하는 상인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예방책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조수현·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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